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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1년 12월 19일 / 純祖1 / 辛酉
날 씨 약간 흐리다.
내 용
도정 대부(都正大父)가 와서 만났는데, 곧 "너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하고 물었다. 내가 "『시경(詩經)』의 「송(頌)」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도정 대부가 말하기를, "학문의 도에 어려운 것이 없다. 그 본심을 지키고, 그 깊은 뜻을 익히며, 차분히 힘을 기울여 체득하고, 푹 젖어 자세히 살핀다면 책의 은미함은 이에 많은 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이런 방법으로 책을 읽었다. 비록 곁에 있는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소란스러워도 마치 들리지 않는 듯했다. 사람들이 간혹 ‘네가 글을 하냐!’하고 비웃더라도, 들리지 않는 듯하였다. 이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네가 독서를 싫어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내 마음이 정해졌느냐, 정해지지 않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옛날 선배들이 ‘사람이 학문을 함은 어디든 힘을 쏟지 않음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참으로 그러하다. 지금 너는 위로 홀어머니와 몹시 연로한 조부가 계시니, 마땅히 정성과 공경을 다해야 하고, 능히 봉양의 예절을 다해야 한다. 이 또한 학문이다. 이것을 미루어 모든 일에 적용하면 어느 곳인들 힘을 쓸 곳이 아니겠느냐! 반드시 힘쓰고 힘쓰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비록 문사(文思)는 부족했으나, 행실은 실로 고인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서, 내가 매양 특별히 기대했었다.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밖에서 곡을 하고, 네 아버지를 장사지낼 때는 내가 직접 가서 곡을 하였다. 소상(小祥) 때는 내 마음이 너무 슬퍼서 직접 가서 곡을 하고 싶지 않았고, 대상(大祥) 때는 내 집을 강 밖으로 옮겼기 때문에 또 올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한탄스러웠다. 이제 담제(禫祭) 날이 멀지 않다고 들었다. 내가 마땅히 애사(哀辭)라도 지어서 보내야 하니, 너는 받아서 제사상에 올리도록 하여라. 애사는 죽은 사람만을 위해 짓는 것만이 아니고, 또한 후손들이 마음에 새길 바탕이 된다."라고 하였다. 나는 감사하게 여기고 물러났다. 밤에 계부(季父)가 대부(大父)에게 아뢰기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일컫는 늑명서(勒名書)는 반드시 류해(柳海)가 한 일일 것입니다. 낌새가 불안합니다."라고 하였다. 대부(大父)가 말하기를 "나는 류해와 별다른 원한이 없고, 그 역시 원망이 없다. 문장(門長)이 된 이후로 나를 능욕하며 반드시 역적이라 일컬으니, 가소롭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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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九日【辛酉】。
薄陰。都正大父來見因問曰。汝讀何書。對曰。詩頌也。曰。學問之道無難。守其本心。玩其深意。優遊以體之。涵遊以察之。書之微 肆不待多言而知也。我少時以此法讀書。雖在傍者喧囂雜沓。若不聞也。人或非笑曰。汝爲文耶。亦若不聞也。是故我得至今見效耳。聞汝讀書厭煩。故言及。然亦在吾心之定不定如何耳。又曰。古之先軰有言。人之爲學。無地非用功處。此說信矣。今汝上有偏親及篤老之祖父。宜盡其誠敬。克盡奉養之節。此亦學也。推而至於千百事。何處非用工之地乎。須勗哉勗哉。又曰。爾父生時。雖乏文思。行誼實無愧古人。吾每奇待之, 及其喪也。吾自外哭之。及其葬也。吾自力往哭焉。小祥。則吾心慽慽。自不欲來哭。大祥。則搬寓於江外。故又不得來。是用慨慨。今聞禫日不遠。吾當爲哀辭以送之。汝受以展于卓上也。哀辭非但爲死人作。亦爲後孫佩服之資也。余感謝而退。夜季父白大父曰。村人皆謂勒名書。必是海所爲。氣象遑遑矣。大父曰。吾則與海別無嫌怨。渠亦不怨。自爲門長以後。辱我必稱逆賊。可笑。

주석

늑명서(勒名書) : 이름을 기록하는 문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