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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6+KSM-WM.1796.4717-20140630.00811020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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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01년 3월 15일 / 純祖1 / 辛酉
내 용
강물이 크게 흘러 넘쳤다. 마침내 선공(舡工)에게 명하여 인금(仁今)의 입구에 배를 옮겨 대라고 하였다. 대부(大父)와 권 장(權丈)이 돌아와 권 장이 곧 작별하고 갔다. 밤에 일꾼을 먹이고 이어서 운구(運柩)하였다. 모랫길이 통하지 않아 언덕길을 따라 갔으니 나는 거기에 따라갔다. 병산(屛山) 절벽 아래에 이르자 달이 이미 서쪽으로 졌다. 병산서원(屛山書院) 아래 묘지기와 장무(掌務) 여러 놈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일꾼들이 술이 부족하다고 성내며 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계부(季父)가 말하기를, "내가 월래(月來) 놈에게 명하여 술 일곱 동이를 빚으라고 했으니 산 아래에 이르면 실컷 마시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이 한마디에 배에 올랐다. 다 건너고 나니 일제히 "곧장 곡중(谷中)에 가서 행상(行喪)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각 동소(洞所)에서 이르지 않았다고 한다. 점점 인촌(仁村)에 가까워지자 깜깜한 가운데 시내의 물소리가 시끄러웠다. 촌닭이 새벽에 울고 또 개 짖는 소리가 곳곳에 들려 나왔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월래가 가져올 술이 오지 않자 이때 일꾼들이 일제히 성을 내었다. 마침내 운상(運喪)이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의 뒤를 치면서 올라가려고 했다. 계부가 큰 소리를 그들을 그만두게 하고 말하기를, "차라리 운상을 못할지언정 어찌 집 뒤를 칠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누차 달래면서 마침내 느릿느릿 일동(一洞)으로 향했다. 산길이 위험하고 기울어져 있어서 비록 짐이 없는 사람도 올라가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상꾼(喪軍)들이 모두 튼튼했기 때문에 무사히 정구(停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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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五日【辛卯】。
江水大漲。遂命舡工移舟泊仁今口。大父與權丈還。權丈卽別去。夜饗軍仍運柩。以沙路不通沿岸而行。余隨焉。到屛山絶壁下。月已西揷。院邸廟直掌務諸漢皆來謁。軍人以酒不足。怒不欲行。季父曰。吾命月來漢。使釀七甕。到山下當大飮耳。遂一辭入舡。渡畢齊聲直抵谷中行喪之善。各洞所不及云。漸近仁村。暝色中溪流聒耳。村鷄唱曉。又聞吠犬聲處處出矣。到山下月來酒不及來矣。於是軍皆憤恚。遂運喪欲衝居人屋後而上。季父大聲止之曰。寧不可運喪。豈可衝屋後乎。累次曉諭。遂迤向一洞。山路危側。雖無負人上去極難。而以喪軍皆實。故得無事停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