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치재일록(癡齋日錄) > 01권 > 1631년 > 4월 >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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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31년 4월 17일 / 仁祖9 / 辛未
내 용
새벽에 여러 선비들이 내려와 정서(呈書)하였는데 다만 자허(子虛)만 면책되고 나머지는 면책 받지 못하였다. 알성(謁聖)후에 홍업(洪業) 등을 불러 벌로써 강(講)을 하고자 하였는데 방백(方伯)가 일이 바빠서 급히 떠나니 3명의 선비가 책을 가지고 쫓아가 점을 찍은 곳을 모두 강(講)하여 면책 받았다. 우촌(牛村)의 선비가 정서(呈書)한 것에서 다만 쌀 10두(斗), 백필(白筆) 3자루, 송묵(松墨) 3정(丁)을 지급하였다. 들으니 박종형(朴宗衡)오익환(吳益熀)과 같은 때에 잡혀간 사람들 모두 죄를 용서받아 돌아오게 되었으며 성주(星州)사람 박흔(朴欣)은 승복(承服)하여 사형을 당하고 읍호(邑號)는 성산(星山)으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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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十七日。
平明諸生下呈書。則只免子虛餘不聽。謁聖后。招洪業等。欲爲罰講。行忙出去。三生挾冊追去。住點處皆講免。牛村生呈書。只給米十斗白筆三柄松墨三丁。聞朴宗衡吳益熀。一時拿去者。皆見原下來。星州朴欣承服正刑。降號星山云。

주석

들으니 박종형(朴宗衡)~성산(星山)으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성지도(成至道)의 반란을 의미한다. 사건의 전개와 그 처리 과정은 󰡔인조실록󰡕 24권 9년 2월 3일 첫 번째 기사, 󰡔인조실록󰡕 24권 9년 4월 8일 첫 번째 기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