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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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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622년 6월 26일 / 光海14 / 壬戌
날 씨 비오다.
내 용
이른 아침에 10여 명이 말을 나란히 하여 유현(流峴)을 넘었다. 두 곳에 앉아서 절구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六月朝陰閉不開, 一行山路好歸來. 登登領畧尋眞趣, 知是仙徒向杭台." 말을 세워두고 학정(鶴亭)에서 묵었다. 여귀재(汝歸齋)에 들어가서 아침밥을 먹은 후에 여러 군(君)들과 함께 무릉(武陵)에 올라가 앉아서 오래 머물렀다. 홍류동(紅流洞)에 들어가 두 명의 소년을 만났는데 곧 신안(新安) 사람으로 해인(海印)에서 독서하는 자였다. 나가서 추로주(秋露酒) 한 잔을 마시고 취적봉(吹笛峯)에 올라갔는데 여러 군들 중에 혹은 눕거나 혹은 앉아서 옷을 씻는(濯纓) 자도 있었고 세수를 하는(漱石) 사람도 있었다. 내가 10년 전 이곳에 온 것을 회상하니 느끼는 바가 있어서 성(聲)자로 운을 얻어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俯仰頻驚歲屢更, 十年來往一筇聲. 幸携耐友尋陳迹, 却對高僧話舊情. 四顧微茫心萬理, 重遊彷佛夢三生. 臨高落日時傾耳, 雲際如聞子晉笙." 비가 내려 옷을 적시니 급히 채찍질하여 절로 들어갔다. 저물녘에 첨지(僉知)가 많이 취해 올라 왔다. 적광전(寂光殿)에 들어가니 승도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함께 농담을 하고 그 자리를 파했다. 선당(禪堂)에서 묵었다. 첨지의 시에 차운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石逕嵾巖步步危, 短筇行色故遲遲. 探眞此地誰先我, 欲向孤雲酹一巵." 또 차운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眞源自與凡區隔, 上界何浿羽客邀. 風引暮鍾雲際落, 壑生靈籟靜中消. 山僧弊凋君休問, 映月寒潭酌以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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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卄六日。
早朝。十餘員連轡踰流峴。坐二處咏絶句。六月朝陰〔雲〕閉不開。一行山路好歸來。登登領畧尋眞趣。知是仙徒向杭台。歇馬住鶴亭。入汝歸齋朝飯■■■〔謁先生〕後。與諸君先上坐武陵移時。入紅流洞。遇二少年。乃新安人讀書於海印者也。出飮秋露一盃。上吹笛峯。諸君或臥或坐 有濯纓者有漱石者。余追思十年前來此。有感。得聲字韻。俯仰頻驚歲屢更。十年來往一筇聲。幸携耐友尋陳迹。却對高僧話舊情。四顧微茫心萬理。重遊彷佛夢三生。臨高落日時傾耳。雲際如聞子晉笙。行雨沾衣促鞭入寺。黃昏僉知大醉上來。入寂光殿聚緇徒焚消極謔而罷。宿禪堂。次僉知韻。石逕嵾巖步步危。短筇行色故遲遲。探眞此地誰先我。欲向孤雲酹一巵。又。眞源自與凡區隔。上界何浿羽客邀。風引■■〔暮鍾〕雲際落。壑生靈籟靜中消。山僧弊凋君休問。映月寒潭酌以瓢。【此二首當在宿禪堂下】

주석

탁영(濯纓):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유자(孺子)가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하셨다.” 하였다. 즉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초탈하게 살아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수석(漱石): 진(晉)나라 손초(孫楚)를 가리킨다. 그가 장차 숨어 살려고 하면서,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하련다.〔枕石漱流〕”라고 말해야 할 것을 “물을 베고 돌로 양치질하련다.〔枕流漱石〕”라고 잘못 말했는데, 왕제(王濟)가 그 말을 듣고서 잘못을 지적하자 손초가 “물을 베는 것은 ‘속진에 찌든 귀를 씻어 내기 위함이요〔洗其耳〕’, 돌로 양치질하는 것은 ‘연화(煙火)에 물든 치아의 때를 갈아서 없애려 함이다.〔礪其齒〕’”라고 대답했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排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