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 > 02권 > 1922년 > 7월 >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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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3+KSM-WM.1920.4717-20110630.00631020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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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922년 7월 16일 / 壬戌
제 목 병산서원에서 유람을 청하러 온 일행들이 오다.
날 씨 맑고 풍경이 좋았다.
내 용
오늘은 임술년 가을 7월 기망일(16일)이다. 괴정의 차로 변에 다시 가마를 보냈으나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최실의 내행이 혹 출발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저녁이 되려 할 즈음에 막 병산서원에서 유람을 청하러 온 일행들이 왔다. 듣기에 여아와 세 숙질들은 독차를 사서 괴정에 도착했다고 하기에 또 가마를 보내어 그 모자를 데리고 왔으니 떨어져 지내던 뒤 끝에 온 근친이었으니 그 기쁨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리고 성술이 먼저 도착했고 그의 형은 며칠 후에 출발해 올 것이라 했다. 부득이하게 저녁을 재빨리 먹고는 가마를 타고 병산으로 향했는데 함께 간 사람은 경민 씨였다. 달빛은 비록 좋으나 밤이 늦은 후에 간신히 도착하였고, 구씨 및 노인 네다섯 명 및 동료 여덟아홉 명이 모여 있었다. 곧 그들과 더불어 일제히 강가로 갔는데, 퉁소 연주자와 가수가 배 안으로 따라 들어와 판을 깔고 자리를 펴고는 닭 우는 새벽까지 배를 띄우고 그 가락을 들었다. 퉁소와 노랫소리가 번갈아가며 화창하고 술잔과 음식 소반이 낭자하니 거의 소선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하룻밤 청유는 평생의 기억에서 최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만 운자를 내어 시를 각기 다 짓지 못했으니 탄식했다. 잠시 입교당 서재에서 묵고는 아침식사를 하고 개를 삶아 융성이 대접을 해 주니 감사했다. 대저 올해의 기망에는 듣기에 각국에서도 매우 성대히 치렀고 중국의 적벽으로의 유람을 즐기러 가려던 조선인 수천 명이 총독부의 허락을 받고 들어갔으며 여러 도와 대처에서도 갑절 사람들로 붐볐으며 군읍촌항에 이르러서도 종종 잔치가 벌어졌으니 천고의 소동파가 자못 적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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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六日【戊寅】
即壬戌之秋七月旣望也。晴而景好。再送轎於槐亭車路傍。而不遇空還。崔室之行。或未發耶。日將夕。方作屛山請遊之行矣。聞女阿三叔姪。買獨車抵槐亭。又送轎率來其母子。濶餘來覲。其喜可量。而聖戌先到。其兄數日後發來云。不得已促夕飯。乘轎向屛山。伴行者景敏氏也。月色雖好。更深後艱關以抵。則舅氏及老成四五員及儕流八九人來會矣。即與之齊往江上。簫者歌客隨來舡中。亘板布席。至鷄鳴泛舟聽■所之。簫歌迭唱。杯盘狼藉。殆不譲於蘇仙。而一夜淸遊。冠絶平生。然只拈䪨各未成。可歎。暫宿立教堂西齋。朝飯。烹狗盛供。可感。大抵今年旣望。聞各國甚盛。行樂中州赤壁之遊。鮮人幾千。得緫督府認許入去。諸■〔道〕大處。一倍稠匝。至於郡邑村巷。往往供辦。千古東坡。頗不寂寥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