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 > 01권 > 1920년 > 3월 > 23일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WM.1920.4717-20110630.006310200068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920년 3월 23일 / 庚申
제 목 풍산 순사가 와서 주재소 설치 경비를 요구하다.
날 씨 흐리다.
내 용
풍산 순사 가운데 한일순사 4인이 면소에 왔으니, 장차 본면의 주재소를 설치하는데 전에 정한 경비가 부족해서이다. 그래서 다시 4~5 면 중의 26집을 가려 뽑았고, 우리 집에는 다시 100환이 더하여졌는데, 사면하려 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해 또 합 400환에 날인했다. 돈을 내어줄 방도를 생각해보건대 매우 계책이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우리 집에서 점심과 술과 안주를 대접했다. 임시처소가 편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저숙과 종일 언쟁을 벌이다가 결국에는 나주사랑으로 정해졌다. 저녁에 사사키 김순사가 야상정에게 내려갔다. 권두용이 그대로 나주댁에 머물러 있다가 이로부터 사람으로 하여금 손쓸 겨를이 없게 하니 탄식할만하다. 풍서에서는 임시처소를 지곡으로 설치했는데 이미 월초에 노동강당에 나가서 주재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지

원문

二十三日【己巳】
陰。豊山巡查。韓日四人來面所。將設本面住在所。而前定經費不足。故更抄四五等面中二十六家。而於吾更加百圜。辭免不得。又捺章合四百圜也。言念出給之道。極甚沒䇿。奈何奈何。吾家饋午饒酒饌。以臨時處所之難便。與海底叔終日争詰。畢竟以羅州舍廊爲定。乘夕佐佐木金巡查下去野上鼎權斗用仍留在羅州宅。自兹以往。令人措手不得。可歎可歎。豊西枝谷爲設。而已於月初出住鲁東講堂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