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 > 02권 > 1922년 > 3월 >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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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3+KSM-WM.1920.4717-20110630.00631020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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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922년 3월 17일 / 壬戌
제 목 후군의 편지를 받다.
날 씨 맑고 따뜻하다.
내 용
면소로부터 후군(厚君)이 13일에 보낸 편지를 받아 보니 질부의 근행이 그날이어서 오후에 차가 출발하여 물봉으로 보냈다. 운아가 고등학교시험을 보러 가는 일로 안동 예천 영주 봉화 네 고을의 5․6학년급 100여명이 일제히 떨어지고 홀로 이 한 아이만 4학년급으로 과연 우뚝히 합격하였다고 하니 우리 집안이 생맥이 16년 동안 없다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젖먹이 같은 아이가 따라가는 사람도 없이 스스로 판별할 수 있으니 사랑스럽고 기특하다. 또 김후성(金後醒)의 편지를 받았는데 모스크바에 있는 아우가 근래에 돌아와 길성(吉省)에 살면서 편안히 있다는 소식을 알았으니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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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七日【辛亥】
晴㬉。自面所得見厚君十三日發書。則姪婦覲行其日。午後車發送勿峰運兒高㝳校試驗看事。四郡五六年級■■〔幾百〕人。一齊沒落。獨此一兒以四年■〔級〕。果■嵬參合格云。吾家之生脉在此者。無渠十六年。如乳下物無人隨去。自能办得。奇爱奇特也。又見金後醒書。知莫斯科弟信。近還住吉省安音。可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