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 > 01권 > 1921년 > 11월 >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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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3+KSM-WM.1920.4717-20110630.00631020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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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921년 11월 2일 / 辛酉
제 목 유연당 문중회의에 가다.
날 씨 맑고 춥다. 바람이 크게 불고 추위가 심하다.
내 용
억지로 일어나 유연당(悠然堂) 문중회의에 가려고 가마를 타고 예천에 이르러 자동차를 탔다. 오전에 영주에 내려가서 조언(朝彦) 씨와 노소 여러 사람을 시가에서 만나 같이 정자에 갔는데, 얼마 뒤에 오계(梧溪)에서 온 노소 6, 7명과 감현(甘縣)의 여러 사람이 다 도착하였다. 대개 오늘의 행사는 파주(坡州) 족형의 편지 가운데 김포(金浦) 산소는 중환(重煥) 태가 여러 사람이 다 그 자리와 토지문서를 빼앗아가 서울 묘사에 지내는데 주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미 수년이고 또한 양주(楊州) 산소는 사토로 봉분이 전복되어 석상이 무너져 오미와 오계 두 마을에서 유생들을 정해 개척하기로 한 일 때문이다. 나의 뜻은 양주 산소는 반드시 실전되어 이내 티끌과 흙이 되는 것에 이를 것이니 이장하는 것은 비록 매우 온당하지 않는 것이지만 대지로 옮겨 받드는 것이 정으로 보나 예로 보나 합당할 듯하다. 또 몇 년 식 유생을 정해서 이 자본을 갖추는 것은 크게는 자손들의 고질병이 되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이로써 발론하니 모두 좋다고 말하였다. 오계(梧溪)의 노인들이 오히려 많이 갔지만 뜻은 다시 통하였다고 한다. 타 지역의 본성으로 모인 자들 삼십 여명이 술과 고기를 먹고 흥건하게 취하도록 마시면서 낮밤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삼경 후에 박경란(朴景蘭) 형 집에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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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二日【丁酉】
晴寒。強起作悠然堂門會。乘轎至醴泉搭自動車。午前下榮州。逢朝彦氏老小數人於市街。同往亭所。小頃梧溪老小六七人及甘縣諸员俱到。蓋今行以坡州族兄書中。金浦山所。重煥台盡奪其位土付之書。京墓祀酒果行祀者。已數年。且楊州山所。沙覄封墳。石人頹臥。故兩村定儒生開拓事也。吾意則楊州山所必至失傳。乃已塵土。緬襄。雖甚未妥。移奉大枝。情禮似合。又念幾年式定儒生具資斧。大爲子孫之痼瘼。而不可堪也。以此發論。皆曰便好。而梧溪老成尙多去。議更通云。他本姓會者。三十餘人。酒肉淋漓。暢叙日夜。三更後。宿於朴兄景蘭家。大風寒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