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 > 02권 > 1924년 > 1월 >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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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3+KSM-WM.1920.4717-20110630.00631020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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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924년 1월 4일 / 甲子
제 목 김지섭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듣다.
날 씨 맑다.
내 용
은좌(殷佐)가 찾아왔다. 헌아(憲兒)가 오(梧) ‧ 암(岩) 두 곳에 성묘 갔다. 아계(阿季) 부자가 군으로 들어갔다. 성아(聖兒)는 하회(河回) 학교로 떠났다. 후사리(後寺里)의 판교(板橋) 김실(金室)이 만삭의 몸으로 다시 초례(醮禮)일을 택정하여 오늘 재가례(再嫁禮)를 행한다고 하니 우습기도 하고 괴의하기도 했다. 저녁에 듣기에 지섭(祉變)이 과연 1월 5일 (음력 11월 29일)에 니주바시〔二重橋〕에서 폭탄을 던졌다가 당장 체포가 되어 감옥에 갇힌 지 달포 남짓 되었으나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옥중에서부터 그의 아우인 희섭(禧變)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태연하며 조금도 힘든 기미의 말이 없었고, 분개하며 말한 뜻이 사람으로 하여금 기운을 돋우었으니 진실로 담대한 남아이다. 또한 역수(易水)를 건너는 비분강개한 의사(義士) 형경(荊卿)과 비교해도 덜하지 않으니 창창대해의 역사(力士)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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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四日【己巳】
晴。殷佐來見。憲兒省墓■〔于〕兩處。阿季父子入聖兒河校後寺板橋金室。以受胎之晩。更擇醮日。今日行再嫁禮。可笑可恠耳。夕聞祉變。果於一月■■〔五日。陰至卄九也〕。二重橋投爆。當场逮捕。牢囚月餘。未布。而自獄中付書於其弟禧變。晏如少無幾微語。憤慨辭意。令人增氣。眞膽男。亦不讓於渡荊卿。滄海力士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