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 > 02권 > 1923년 > 12월 >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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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3+KSM-WM.1920.4717-20110630.00631020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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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923년 12월 23일 / 癸亥
제 목 돌아온 헌아를 통해 맹규의 병소식을 듣다.
날 씨 맑다.
내 용
헌아(憲兒)가 저물녘에 잘 돌아왔으니 기쁘고 시원함이 매우 컸다. 또한 듣기에 아중(阿仲) 및 두 여식과 두 조카도 모두 편안하고, 중군은 우선 객지에서의 허비를 면했으며 장차 28일 상간에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지보(知保) 사가(査家)에서 하인을 보내왔으니 감사했다. 종가에서 의양(宜湯)에 갔다가 오는 인편을 통해 순백(淳伯) 형의 편지를 받았다. 아이의 입을 통해 듣기에 오산(吳山) 이숙(姨叔)은 잘 다스리고 견뎌서 여타 병이 더치지 않았으나, 밀양군〔密郡〕의 맹규(孟圭)종은 묵은 병이 허약해진 틈을 타서 발작하여 대구병원(大邱病院)에 실려 갔는데 이제 막 조섭하고 치료하고 있지만 우선 효과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가 대구에 있었을 때 자주 문병을 갔었는데 맹규가 나를 보고 싶은 생각에 눈물짓기를 그지없게 했다고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심골(心骨)을 녹아내리게 했다. 그 집의 일은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르러야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부채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다가 단지 두 어린 아이만 있고, 또 하물며 늙으신 부모님의 슬하에서 이러한 상황을 수습할 사람도 없는데다가 당내 여러 집안에서도 믿을만한 사람이 없으니 이 사람의 병증의 원인과 결과가 일찍이 이에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화기(火氣)가 들어 추운 날인데도 문을 열고 앉아 있다고 하니 증세가 매우 위중한 것이다. 어찌하고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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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卄三日【丙午】
晴。憲兒乘暮利還。欣豁甚大。且聞阿仲及二女․兩姪俱安。仲君姑免客費。將以卄八間歸家云。知保査家送。可感。宗家宜湯便。見淳伯兄書。聞於口。吳山姨叔能理遣無添。而密郡孟圭從。宿愼闯發。舁到大邱病院。方在調治。姑無其效。渠之在時。頻頻往诊。思欲見我。垂涙不已云。令人心骨欲消。而其家事。將未知稅駕何地。積债如山。只有二髧兒。且况篤老下。無人収拾。堂內諸家。無人可恃。病之源委。未甞不由此也。以火氣開戶以坐云。症甚危重。奈何奈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