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 > 02권 > 1923년 > 8월 >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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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3+KSM-WM.1920.4717-20110630.00631020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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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923년 8월 2일 / 癸亥
제 목 배를 타고 부용대 아래를 지나며 기암괴석을 보다.
날 씨 흐리고 비가 왕래하다가 낮에 조금 개다. 빗발이 또 때로 쏟아지다.
내 용
강이 크게 넘쳐흐르는 것이 또한 장관이었다. 「강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다〔觀漲〕」라는 율시 한 수를 읊었다.
점심식사 후 해가 나왔다. 형호(衡湖)를 거쳐서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는데, 우리 집의 가마와 말이 마침 와 있었다. 다시 강을 건너 하회(河回)로 향했다. 강이 몹시 세차게 흘러 가장 아래쪽 나루에 배를 대고 사공 4명이 있는 힘껏 닻줄을 끌어당기며 부용대(芙蓉臺)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절벽의 아래에서 기괴하고 층층이 쌓인 바위를 올려다보니 곳곳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일대 장관이라 이를만했다. 대저 이번에 간 청유(淸遊)는 평생에 가장 좋은 기억이 되어 마음에 매우 기쁘고 흡족 할 것이다. 길을 돌려 외가댁으로 가니 구씨(舅氏)께서 율원(栗園)에 계셨는데 물 때문에 막혀 통할 수 없었다. 응관(應貫) 종이 집에 도착하여 못 가게 붙들었으나 경민(景民)씨와 더불어 기어이 출발했다. 비를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오니 피곤하여 기력을 떨칠 수 없었다. 일본(日本) 도쿄〔東京〕의 지진 재앙에 대해 신문이 온 편으로 물어보니 사망자가 30만 명이고 물적 손해도 50억만 원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신문사에 대한 단속이 비상하여 진실한 보도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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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二日【戊子】
陰雨往來。午小霽。江流大漲。亦壯觀也。吟觀漲一律。午饒後日出。欲自衡湖以歸。吾家轎馬適至。復渡江向河回。江流滾汨。泊舟於最下津。篙工四人。極力引纜。溯上於蓉䑓。絶壁之下。仰觀奇恠層岩。在在刻字。■■■■■■■〔可謂一大壮観也〕。大抵今行淸遊。冠絶平生。心甚歡洽矣。回到外宅。舅氏在栗園。阻水不通。雨脚又時灑。應貫從到底挽執。而與景民氏。期於發歸。冒雨歸家。困憊莫振。日本东京震災來問新聞。則死者三十萬。損害五十億萬円。而自後新聞社。取締非常。不能實報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