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정섭일록(金鼎燮日錄) > 01권 > 1920년 > 4월 >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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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3+KSM-WM.1920.4717-20110630.00631020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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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920년 4월 22일 / 庚申
제 목 사람들과 병산서원에 가다.
날 씨 맑고 덥다.
내 용
중대사 중 가운데 월은이라 호 한 자가 바로 회은의 손승이다. 등촉계로 시주를 청하기에 손아의 이름을 써서 1엔의 돈을 주다. 병산서원 도회석에서 편지를 보내 전갈을 했기 때문에 젊은이 3인을 데리고 병산으로 가다. 도유 4~50명과 풍산의 노소 수십 명이 입교당에서 재회를 하고 있었다. 풍산에서 사과를 하고 서원 문을 열고자 했지만 전임은 다만 이수정씨 한 사람 뿐이었다. 개좌를 재촉하여 삼임을 냈는데, 그 뜻이 도유와 하상의 우리 문중을 낭패스럽게 했다. 그러나 서원문을 닫은 자는 누구이며, 거리낌 없이 문을 열고자 하면 이는 과연 체모와 예의에 맞는 것인가? 도유와 면 중에서는 물러나면서 하상에 가서 두 문중이 화해한 뒤에 구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일부로 오후까지 지연시켰지만 하상에서는 끝내 오지 않았다. 풍산에서는 호통을 쳐서 장무가 급히 천망(薦望)하는 문서를 올렸는데, 하상에서 공판하는 자 두서너 명이 주소(厨所)에 있으면서 장무를 잡아 두어 천 번을 불러도 나오지 않으니, 이에 풍산의 노소가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일제히 나와 돌아갔다. 잠시 후에 하상의 여러 사람들이 비로소 도착했는데 도유들이 객을 대하는 것이 무례하다고 하여 그로 하여금 벌하기를 청하였다. 벌목은 정성이 얕으면 먼저 원(院)에서 모두 중벌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본손 제원들과 면·도의 여러 벗들이 축출되었다. 입교당에서 묵었는데, 강산이 아름다워서 잠시 시름스럽게 칩거한 뒤끝에 쾌창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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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卄二日【丁酉】
卄二日。中䑓寺僧。月隐爲號者。卽晦隠孫僧也。以燈燭禊施主來請。書孫兒名付以一円錢。晴而熱。屛院道會席。貽書傳喝。故率年少三人往屛山。道儒四五十。豊山老少數十名。齋會立教堂豊山謝過。欲開院門。而前任則只李洙挺氏一人而已。■■〔促開〕坐 方出三任。其意使之良貝道儒及河上吾門。然閉院門者誰也。而肆然欲開。是果軆禮耶。道儒及面中退托。往請河上兩門保合後區處爲宜。故故遲延至午後。河上終不來。豊山咆喝。掌務急上薦紙。河上供辦者數三人在厨所。挽置掌務。千呼不出。於是豊山老少。不勝其憤。一齋出歸。有頃河上諸人始到。道儒以待客之無禮。使之請罰。罰目則誠淺先院合施重罰。因逐出本孫諸員與面道諸益。宿立教堂。江山明麗。足爲愁蟄餘快暢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