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병황일록(金秉璜日錄) > 1권 > 1880년 > 7월 >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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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78.4717-20100731.00631020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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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0년 7월 7일 / 高宗17 / 庚辰
제 목 종숙 및 광평숙주의 동당시 소식을 듣다.
날 씨 맑다.
내 용
아침에 칠석 천신 차례를 지냈다. 옹천 하인이 온 편으로 고숙 부자분의 편지를 받아서 집안 모든 제절이 평안하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매우 위로되고 매우 위로되었다. 즉시 답장을 써서 그 하인 편으로 되돌려 보냈다. 저녁 후에 종숙주 및 광평숙주께서 오셔서 동당시에 관해 물었는데, 동당 회시의 상시관이 상서 김병덕이고 시권을 거두어 춘당대에 나갔고, 세자께서 친히 왕림하셔서 탁방했다고 하셨으니, 매우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영남 측은 다섯 명이 대과에 발탁되었으나 그 중 아는 사람은 다만 하계 이중두 한사람 뿐이었다. 대저 이 형의 과거 운수는 어찌도 이리 술술 잘 풀리는 것일까? 경 공부한지 20여년에 시험을 치른 모두들 가운데 대․소과에 합격한 자들이 기특하고 장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을 이길 수 없을 뿐이었다. 두 숙부는 낙방했으니 어찌 집에서 운수 본 것이 헛되었을 것이며, 무슨 운이 이리도 크게 막혔을까? 다만 아무 탈 없이 잘 도착하셨다고 했다. 책문은 ‘예악(禮樂)’이었다고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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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七日【癸酉】
晴。朝行七夕薦新禮。瓮泉伻來。伏承姑叔兩代之書。審大都平安。多慰多慰。卽修答送伻。夕後從叔主及廣城叔主之來問。東會上試金尙書炳德而收卷詣春塘坮。世子親自擢榜云。甚公無私可知。然嶺之則五人大◘。而其中知名者只下漢李中斗一人而已也。大抵此兄科數何如是㤗通也。治經二十餘年。以製俱中大小科者不◘奇壯耳。二叔敗歸。豈徒自家數也。大關門運者也。歎且奈何。只無撓利税。可幸策問禮樂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