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병황일록(金秉璜日錄) > 1권 > 1880년 > 3월 >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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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78.4717-20100731.00631020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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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0년 3월 1일 / 高宗17 / 庚辰
제 목 축동으로 문상을 가다.
날 씨 흐리고 비 내리다.
내 용
흐리고 비가 내린 것은 1 ․ 2소의 방문이 공정함을 무시하고 사사로움을 따랐기 때문에 하늘이 위세를 크게 떨쳐 결국 두 장소의 방을 뒤집어엎으려 한 것이리라. 또한 과일을 택정한 임금의 건단이 이처럼 엄정하였더라면 무릇 나도 팔도 전역에 녹명을 노래하며 다닐 선비가 된 것을 어느 누군들 기뻐하니 않았겠는가. 덕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기를 기다린다면 장시관들을 아울러 머나먼 척박한 지역으로 정배 보내는 영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어제 삼일제에서는 대과 2인을 뽑았고, 초시 48인, 상격 50인이었다. 그리고 종숙주께서도 대과 초시에 입참되었다. 오후에 축동으로 문상을 갔다. 영전 곁에 엎드려 곡을 하니 눈물이 하염없었다. 객관에서 초상과 종상을 치룰 범절이 아마도 대책이 없을 것 같기에 10민의 돈을 헤아려 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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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一日【戊辰】
陰而雨。以一二所榜之蔑公循私。天威大震。竟覆兩所榜。又擇科日乾斷。若是之嚴。凡我八域歌鹿之士孰不欣喜。而竢見德化之成。試官并遠悪地定配。次令下昨日製取。大科二人。初試四十八人。賞格五十人。而從叔主參大科初試。不勝奇幸。頗慰寂寞。若無六月會試。叔豈能入格耶。預賀萬萬。午後出畜洞問喪。伏哭靈侧有淚。無從客館初終之莭。似是沒策。故推十緍銅仰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