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병황일록(金秉璜日錄) > 1권 > 1878년 > 3월 >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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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78.4717-20100731.00631020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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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8년 3월 9일 / 高宗15 / 戊寅
제 목 빙모를 문병하다
날 씨 아침에 비가 내리다.
내 용
함안(咸安) 종에게 혼수함을 봉하게 하고 두 하인을 보냈다. 빙모를 문병하기 위해 하남에 하인을 보냈다. 저녁에 빙모가 회복되었다는 악옹의 편지를 받았다. 지난달 24일에 보낸 용동(龍洞) 사장령의 답장도 함께 받았다. 팔도 유생들이 서원 복원(復院) 일로 상소를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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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九日【己未】
自朝雨。使咸安從封婚需凾。治送就慶及莫述兩漢。以聘母問病次。送伻河南。終日雨甚。夕伏承岳翁書。內患尋已復常云。何慰如之。因便承龍洞查丈令答疏。乃前月廿四日出。而旅中安信也。慰喜沒量。夾紙所敎。多感多感。時毛自岳翁書中得見。而三南社米四萬石以度支事右閤丈奏劄云。國用之罄渴。從此可認矣。柒室之憂。已無可言。而異船之來往無常。亦曷故焉。都下人心或不波沸耶。八道儒疏以復院事。前月廿四日伏閤。疏首成百源爲之。其翌改差。月沙后李周翼爲之云。此政大同之議論也。天意或可因此感動否。雖在罪蟄中。不無側耳之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