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六日【己酉】
陰。法興高川板橋三處客發歸。海坪下隷告歸。而忙未答聖儀兄書。與一淸從作省墓行。洛淵大漲。沙㾗盡沒。船行甚危。艱関渡去至瀰川。川漲不能渡。不得已而訪大也谷權都事家。午火後得轎夫。冒雨濟川省墓。後投武陵純夫兄家留宿。困憊特甚。
陰。法興高川板橋三處客發歸。海坪下隷告歸。而忙未答聖儀兄書。與一淸從作省墓行。洛淵大漲。沙㾗盡沒。船行甚危。艱関渡去至瀰川。川漲不能渡。不得已而訪大也谷權都事家。午火後得轎夫。冒雨濟川省墓。後投武陵純夫兄家留宿。困憊特甚。
날 짜 | 1879년 4월 6일 / 高宗16 / 己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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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일청종과 성묘를 나서다 |
날 씨 | 흐리다. |
내 용 |
법흥, 고천, 판교 등 3곳 손님이 돌아갔다. 해평 하인이 떠났으나 바빠서 성의 형의 편지에 답신하지 못했다. 일청종과 성묘를 나섰다. 낙연의 물이 크게 불고 모래밭이 모두 사라져서 뱃길이 매우 위험하였다. 갖은 고생을 하며 건너가 미천에 도착했다. 내가 불어 건너갈 수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대야곡 권도사집을 방문하였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가마꾼을 구해 비를 무릅쓰고 내를 건너 성묘하였다. 그뒤 무릉 순부형집에 의지해 유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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