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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23.4728-20100731.900110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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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25년 2월 21일 / 純祖25 / 乙酉
제 목 예가씨가 와서 공범씨랑 종일 놀다.
날 씨 맑다.
내 용
예가(禮可)씨가 와서 공범(公範)씨랑 종일 놀다가 예가씨는 돌아가고 공범씨는 하루를 묵었다. 여러 아이들을 데리고 율리에 가서 우거진 뽕나무 십여 그루를 캐다가 집 앞에 심었다. 이 날 망천과 율리의 두 종가 어른과 소재를 옮겨가며 토론한 것은 대개 삼국시대(三國時代)의 통기(統紀)를 논급하였는데 사마광(司馬光)이 위(魏)나라를 한(漢)나라의 정통으로 기록한 것이 의리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은 되나, 대개 한나라가 건국된 지 400여년 넘었고 나는 천년 뒤의 사람으로 오히려 촉나라를 생각하고 위나라를 질타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면 역사를 공정하게 집필하는 선비로서 떳떳한 법도와 도리를 버려두고 계책을 쓰겠는가? 이런 까닭에 회암(晦菴)은 강목(綱目)에서 존한척위(尊漢斥魏)로 대의를 잡은 것이다. 두보는 시 ‘백제성 영안궁에서 세상을 떠났다’라는 구절은 뜻있는 선비의 강개한 뜻은 천추에 길이 남을 도리가 될 것이다. 이 날의 모임은 대개 호계 일가 여성(與成)이 풍기(豊基)에서 다투다 모욕한 일이 있어 이 일을 문경(聞慶)관아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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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一日
晴。禮可氏遊來。公範氏終日。而禮可氏歸。公範氏一宿。與諸童往栗里。採叢桑十數種種于垈前。是日與二宗丈。移景所討者。蓋三國時事而論及統紀。或以爲司馬氏之以授正亦非背義。而未之思也已矣。蓋之爲。已四百有餘歲。而余於千載之下。尙有懷蜀叱之情。而况秉簡執公之士。爲斁常敗綱之計乎。玆故晦菴綱目所以扶大義於尊之際。而杜工部詩有崩年亦在永安宮之句。志士慷慨之情同一揆於千秋之上矣。是日之會。蓋以虎溪宗氏之與成在豐爭詰冒辱事。自此發通于聞慶官之之爲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