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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23.4728-20100731.900110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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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40년 2월 1일 / 憲宗6 / 庚子
제 목 일식
내 용
낮에 일식이 있었다. 새로운 왕이 등극한 초기에는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선정을 목마르게 기다리는데 오히려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과 왕실(王室)의 친척들은 권세를 부리고 농사는 해마다 흉년이며 부역은 번거롭고 힘이 들었다. 홍수와 가뭄이 조화롭지 않으며, 일식과 월식이 번갈아 일어나니 이 무슨 조짐이 생기려고 먼저 알려 주는지 실로 어지러운 내 생각이 들 뿐이다. 작년 봄부터 우리 고을 향교와 향약소의 수임(首任)과 부임(副任)이 직무를 나누어 맡았다. 지금 우산(愚山)의 정상진(鄭相晋) 참봉이 향사당(鄕射堂)에서 투패(投牌)를 하였는데, 이창석(李蒼石)선생으로부터 유래된 옛 법규의 뜻을 하루아침에 어긋나게 할 수 없다하여 이를 저지하였다. 이때에 서울 지방에서 천주교가 크게 일어나니 이를 사악하다하여 형벌로 다스려 무수한 사람이 죽었다. 대개 사학(邪學)의 유래는 지난 정조(正祖) 신유(辛酉)년간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서양 국학으로 유혹한 이래 그 종교의 법이 오륜을 무시하고 주인은 오직 하느님을 주인으로 삼아 존천경천(尊天敬天)이라하니 이는 하늘을 우습게 여기고 하늘을 더럽히는 것이었다. 그러한 폐단이 장차 짐승과 오랑캐의 영역까지 이르러 나라가 나라 같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마땅히 윤음(綸音)을 간행하여 전국에 반포하여 사악한 기세를 통렬하게 배척하였으나 재상 가운데서 이를 범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영남에 한 사람도 사학(邪學)을 범한 사람이 없는 것은 대개 공맹(孔孟)의 유풍과 선현의 가르침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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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月
初一日
壬戌陽。午時日有蝕之。新王繼照之初。一國引領。而大臣尙權。戚里用勢。事連凶。賦役煩重。水旱不調。日月薄食。此何兆朕之先告也。實訌予懷。自昨年春。有本邑校院鄕首副任分任事矣。今愚山鄭參奉相晋氏投牌於鄕射堂。以李蒼石先生由來古規一朝不可睽違之意。沮之。是時。邪學大熾於畿內。刑殺無數。大抵邪學由來者。昔正宗朝辛酉年間有耶蘇者。誘西洋國學以來。其法無五倫。所主者只以天爲主。稱以尊天敬天。而其實則慢天褻天也。其弊將不知至於禽獸夷狄之域而國不國矣。故今當宁刊行綸音。輪告八方。痛斥邪氣。而卿宰或有犯之者云。嶺南一無犯邪之人。槩知鄒魯之遺風。先賢之餘韻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