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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23.4728-20100731.900110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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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36년 3월 0일 / 憲宗2 / 丙申
제 목 당숙모를 전촌 박사공 선조의 묘소가 있는 청룡 산자락에 장사를 지내는데 산 아래에 사는 동네 사람들과 소송이 벌어지다.
내 용
당숙모(堂叔母)를 전촌(錢村) 박사공(博士公) 선조의 묘소가 있는 청룡 산자락에 장사를 지내는데 산 아래에 사는 동네 사람들과 소송이 벌어졌다. 마을과의 거리가 2백보나 되어 마을사람들이 패소하였다. 율리에 사는 일가 홍택연(洪宅淵)이 지금 상중(喪中)에 있었고, 또 아내가 없어 진주(晋州) 마진(麻津)에 옮겨가 살고 있었다. 뜻밖에 며칠 전에 그 아내의 장지를 몰래 파내어 전촌(錢村)마을 뒷산 박사공 묘소의 몇 걸음아래 그의 아내를 몰래 묻었다. 대개 지난해 홍우표(洪禹標)가 파내어 간 자리보다 더 가까운 곳인데, 그것을 계획한 것은 망천(輞川)을 마음에 두고 우표(禹標)가 지난번 실행하지 못한 계획에 설욕하기 위해 한 짓이다. 은밀하게 영향을 미친 사람은 우표(禹標)씨, 익표(益標)씨, 덕연(德淵)씨지만 그것을 행동한 사람, 그것을 도운 사람 모두가 책임을 면할 수 없거늘 마침내 일가끼리 소송이 일어나고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래서 스스로 파내다니 가소롭고 가소롭도다. 나이 젊은 사람이 무지하여 망령되고 어긋난 행동을 분별없이 하다가 주위에서 비방을 듣게 되고, 마을과 문중(門中)에서 꾸지람을 받게 되니 한탄스럽다. 5월에 이르도록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았으니 모내기가 늦은 것은 면할 수 없었지만, 8월에 이르러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 하루 밤새에 선채로 이삭이 패지 않았고, 산골짜기의 농사는 이른 한파로 모두 말라버렸다, 바닷가 농사는 더욱 심한 피해를 입었고, 목화는 삼년 연속 흉년이 되었는데 올해가 더욱더 심하니 얼고 굶주릴 걱정을 정녕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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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三月
日。葬堂叔母主於錢村博士先祖靑龍麓。與山下洞居人有訟事。步數爲二百步。故村人落科。栗里族人洪宅淵方在憂中。又無室家。移接于晋州麻津矣。不意日前暗掘其妻。葬偸埋於錢村後博士公墓下數尺許。蓋昨年洪禹標掘去加近之地。其設計則啣於輞川而欲爲雪恥於禹標未售之計。而暗中射影者。果禹標益標悳淵氏。然爲之者助之者不得辭其責。而畢竟立訟落科。囚禁自掘。可笑可笑。而年少之人。無知妄作。設此乖擧。得謗左右。受責閤門。可歎。至于五月。不雨。未免晩種。至于八月。寒風一夜。直立未發。峽農大殺。海邊尤甚。木花自三年連凶之餘。及今尤甚。凍餒之患。不翅丁寧。自秋及冬。大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