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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23.4728-20100731.900110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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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29년 4월 10일 / 純祖29 / 己丑
날 씨 비가 내리다.
내 용
이 시기에 곡물 값이 점점 내려갔다. 대개 정월 초 일기가 좋지 않아 보리갈이가 쌓인 눈 때문에 좀 늦어지자 인심이 흉흉하고 두려워하여 곡식을 깊이 감추어 시장에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쌀 한 되의 값이 18~9엽에 이르렀다. 그 후 날씨가 화창하고 좋아지면서 보리갈이와 수확이 끝남에 우수에 얼음이 풀리듯 이에 맞춰 인심이 크게 풀려 곡물 값도 점점 내려가 쌀 한 되에 도리어 16,15,14엽에 이르게 되었고 또 남쪽 지방의 보리농사도 풍년이 되었다. 내동의 동네 돈 일곱냥을 일가 가운데 빈궁한 집에다 주었는데 그 가운데 9촌 아저씨 낙동댁(洛東宅)이 돈을 더 받고자 하였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자 괴동의 춘양 할아버지와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이미 판 고정봉(高挺峰)의 소나무를 괴동(槐洞)의 한 사나이에게 아무도 몰래 팔았다. 그들의 마음 씀이 이렇게 불량스러우니 문중의 재물이 남아날리 없고 남아나지 않는 것도 이런 사람들 때문이니 이런 일들을 자손에게 자세히 전하여 앞으로 잊지 않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 남은 한은 재사(齋舍)를 건립하는데 물자가 부족함에도 이 같이 불초한 일이 일어났으니 부끄럽고 한스럽다. 이 해 2월 사이에 눈이 내리는 날이 평년과 달라 곡식 값이 극도로 올랐기 때문에 인심이 흉흉하여졌고 쌀 한 되 값이 1전 8,9엽까지 치솟아 곡식을 사고자하여도 쌀을 구할 길이 없었다. 나중에는 보리농사가 날씨가 화창하고 순조로워져 3월 그믐에서 4월 초 순에 이르러서는 부곡(富穀)과 무곡(貿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쌀 한 되 값이 도리어 14~5엽이 되었고 가을 보리농사가 큰 풍년이 되어 봄보리 농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적절한 시기에 비가 알맞게 내려 봄물이 많아져 모내기가 순조로울 것이니 가을농사는 풍년이 짐작된다하겠다.

이미지

원문

十日
雨。是時穀價漸退蓋正初日氣不佳麥耕拘於積雪遲晼人心洶懼如穀米深藏不出故米一升價至十八九葉矣厥後日氣和調麥耕收畢雨水的中人心大解穀價至時漸下米一升還爲十六十五十四葉又下道秋麥大登。以內洞錢七兩設族中貧窮者其中九寸叔洛東宅欲其多受而不得白地生臆與槐洞春陽族祖暗爲附同潛賣高挺峯已賣之松于槐洞村漢蓋其設心俱爲不良而門物之無餘以此人之故也。傳于子孫不可忘其餘恨方營建齋舍物才不足而有如是不肖之擧加恨可恨是歲二月三月之間雪候乖常谷價極隆。故人心洶洶一升米至一錢八九葉而買谷者無路得米矣末梢麥耕後日氣調順至三月晦間四月初旬富谷貿谷一時狼籍一升米價還爲十四五葉秋牟麥極豊春牟不甚大端注秧趁期春水方生秋事占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