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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23.4728-20100731.900110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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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28년 1월 0일 / 純祖28 / 戊子
제 목 가뭄이 들어 흉년이 되다.
내 용
3월 달부터 5월 달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5월 스무날 무렵에 비로소 비가 왔는데 옮겨 심은 보리가 흉년이었고, 가을 벼도 흉년이었던 것은 병충해로 모두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목화(木花)는 풍년이었지만 콩은 흉년이 크게 들었고 메밀은 풍년이었다. 기축년 봄의 세금 이 34두(斗) 1승(升)이었다. 산택재(山澤齋) 오른쪽에 있던 문광공의 사당을 용궁의 훤평(喧坪)으로 이건한 다음 15일에 사당을 철거하여 다음날 16일에 각파의 여러 일가들이 실어 갔다. 작년 12월에 전촌(錢村)에 사는 선달(先達) 손철갑(孫哲甲)이 율리에 사는 일가 상주인 홍씨와 재산관계로 혐의가 있어서 저녁 무렵에 술주정을 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조상들을 핍박하였다. 도덕이 날로 무너져 인심을 측량하기 어렵다지만 어찌 이보다 심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온 문중이 대재사(大齋舍)에 모여 당장에 잡아다가 치죄하려하니 그 놈이 아주 완악하게 거절하여 저녁때가 되어서야 억지로 데리고 왔다. 온갖 말로 꾸며 여기저기 둘러대고 하는 완악한 모양이 비할 데가 없으니 통탄스럽고 통탄스럽다. 우리 일가는 끝내 한마디도 치죄하지 못하고 관가에 고발할 생각으로 덧없이 물러나니 옛적 우리 홍씨의 기상이 일찍이 이와 같은 적이 없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렇게 기세와 위엄이 무너져 기상이 쇠미하게 되었으니 서글픈 마음을 이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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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戊子
自三月後至五月。不雨。五月念間。移種麥凶。秋禾坐損蟲損。木花大登。太大凶。木麥大登。
正月
山澤齋文匡公廟宇移建于喧坪。次十五日破宇。十六日各派諸宗輸去。昨年臘月。錢村孫先達哲甲栗里宗人洪淵喪主。有財上之嫌。乘暮酗酒極。口悖辱語。逼其先。世道日降。人心叵測。豈有極於此者乎。一門齊會于大齋舍。方欲捉來治罪。而右漢百般頑拒。及暮强到其矣。飾言徛語頑狀無比。可痛可痛。吾宗竟無一言。治罪之擧。乃以呈官之意憮然自退。言念古昔吾洪氣數曾無若是。乃至於今日。風稜預沒。氣數衰灰。不勝忱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