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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23.4728-20100731.900110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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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26년 3월 1일 / 純祖26 / 丙戌
제 목 율리의 여러 어른들과 망천의 족숙 공범씨가 와서 함께 술을 마시며 재미있게 이야기 하다.
날 씨 초하루 가랑비가 내리다.
내 용
율리의 여러 어른들과 망천의 족숙 공범(公範)씨가 와서 함께 술을 마시며 재미있게 이야기 하다가 끝났다. 가휴(可畦) 조선생(趙先生)이 지난 달 25일 속수서원(涑水書院)에 배향하였다 한다. 입재(立齋) 정선생(鄭先生)의 권조(權厝)를 지난 달 27일 이황령(二黃嶺)에서 행하였다고 한다. 정선생 묘는 몇 해 전에 황령사(黃嶺寺) 왼쪽 기슭에 있었으나 보호관리가 미치지 못한지 몇 년이 되었다. 금년 정월 초에 황령사 중들이 밤을 틈타 몰래 산소를 범해 놓은 광경이 참혹하고 놀라웠다. 이런 사실을 관가에 보고하고 황령사의 중을 잡아드려 엄히 다스릴 것을 요구하면서 사림(士林)이 크게 일어나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황령에 다시 산지를 정하여 이장을 하는데 선생의 자손 모두는 천연두에 걸려 치료중이라 산에 올 수가 없음으로서 임시방법을 썼다. 또 이때에 중들이 의성 비안(比安)의 용흥사(龍興寺) 뒤에 있는 김참봉(金參奉)의 3대의 무덤을 부셨다고 한다. 아! 우리의 정도가 행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고 저 불교의 법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오직 공의 도학(道學)과 문장이 영남에서 짝을 이룰만한 분이 없는데 보잘 것 없는 머리 깍은 중들이 감히 선생의 분묘를 범하는 것은 의관을 갖춘 선비가 차마 들을 수 없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어찌 우리 도가 어그러져 가는지 세속이 날로 심하게 변하여 하루, 한 달이 달라지니 세상이 화목치 않아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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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三月
初一日
朔細雨。栗里諸宗丈輞川族叔公範氏來會。以如干酒饌團話而罷。可畦趙先生。去月二十五日。妥享于涑水書院云。立齋鄭先生權曆。以去月二十七日。行于二黃嶺云。鄭先生墓。年前入于黃嶺寺左麓。外無故守護迨近數年矣。今年正元初。右寺緇徒乘夜潛犯。縱不露和景色慘駭。右僧拘齒咸獄報營嚴治。士林大起於必殺。山地更定于二黃嶺。而先生之子若孫。俱以未痘。故忌山底痘患玆用權禮矣。又是時。僧徒破比安龍興寺後。金參奉墓三代墳云。噫。吾東正道不謂不行。彼佛餘法不謂不禁。而窃惟兩公之道學文章。方爲嶺以南宗匹。則幺麽髡頭之敢犯墳墓者。不但爲冠儀服儒者之所不忍聞切。豈非斯道之欠典而世俗之日甚一日月異而世不同者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