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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2+KSM-WM.1823.4728-20100731.900110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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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26년 1월 13일 / 純祖26 / 丙戌
제 목 도연의 안처중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었다고 소문으로 듣다.
날 씨 맑다.
내 용
도연의 안처중(安處重)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었다고 소문으로 들었다. 6촌형 낙연(洛淵)씨가 나에게 그의 외구(外舅) 변공(卞公)의 금상(琴祥)이 다가오는데 그때 사용할 제문을 지어달라기에 짓기를, 아! 나아가 문안을 드리고 가르침을 받은 지가 이미 3년이 지났습니다. 물러나서 궤장(几杖)을 봉양하지 못한 지가 또한 3년입니다. 마음에 쌓인 슬픔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밤마다 잠자리에 들 때면 울고 싶지 않을 때가 일찍이 없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 소자의 마음이었으며 정리(情理)가 스스로 그러하였습니다. 두 집은 원래부터 친구로 맺은 돈독한 사이였는데 거기에 혼인으로 친척관계가 거듭 맺어지니 인연은 더욱 공고하게 되었습니다. 공께서 생존하실 적에 저의 아버님과 끊임없이 왕래하시며 마음을 나누고 술잔에 정을 담아 서로가 권하며 좋은 관계를 다져 왔습니다. 이른바 조라넝쿨이 소나무에 얽히고 갈대가 옥수(玉樹)에 의지하듯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서 그때 저는 공을 모시었고 또한 관생(舘甥)이 되면서 사랑은 더욱 깊었고 두터웠습니다. 비록 거리가 다소 멀어도 소식은 항상 이어져 승봉(承奉)함이 많아지므로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하였으며 근신함을 언제나 간절하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공께서는 인자하시고 후덕하시어 둔하고 어리석은 저를 내치지 않으시니 감격한 저는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힘쓰기를 어느 날인들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보잘 것 없는 마음으로 미수백년(眉壽百年)하시기 바랐는데 가르침을 남겨두고 어찌 그리 급하게 가시었고 삼년세월 어이 그리 빠릅니까. 아! 외로운 소자(小子)는 불행하게도 지낸 해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었습니다. 어리석고 완고하여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비루한 삶을 살면서 가난하여 제대로 제사 한번 제대로 모시지 못하였고 어리석어 간고(幹蠱)의 책임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만약에 공께서 계셨다면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경경재구(嬛嬛在疚)한 처지에서 벗어날 방책을 가르쳐 주시었을 것이며 가르침을 받은 저는 쇄쇄인아(瑣瑣姻婭)의 정의에 의지하였을 것입니다. 저가 복이 없어 아버님께서 하세하시고 공께서도 역시 저를 버리시니 저는 어이하리까? 저는 어이해야 합니까? 이제부터 어디에서 공의 모습, 공의 말씀, 보고 듣고 하오리까. 바라건대 저의 아버님과 저승에서라도 만나시어 살았을 적 못다 한 정 한량없이 누리소서. 가슴 가득한 저의 애모(哀慕)의 정은 어이하오리까? 아!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오호! 통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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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三日
晴。聞道淵安處重遭其外艱云。再從兄洛淵氏爲其外舅卞公之琹祥來。余記情其文曰。嗚呼。進不承警咳於門已三年矣。退不奉几杖於家亦三年矣。臨風悽愾不能爲懷每中夜就枕。未嘗不不欲泣。而涕漣漣者。固小子情理之自然也。以兩家合下契舊之篤。重昵姻婭之好方。公在世先考亦在源源之訪憧憧之往情緖綢繆醻酢如響。是所謂蔦蘿附栢蒹葭倚玉。時余侍從公以館甥之故。愛余甚厚。又雖地步稍間。然信息相繼。承奉多時。休慽同勤警飭尤切。皆公之仁厚盛德。不以我愚蒙顓眛而踈斥之也。肆余感激銘佩何日可忘。區區尙冀眉壽百年。以畢餘敎。豈謂不淑蘧逌三霜之速也。於乎哀孤小子不天去歲。又見慈父之棄背頑喘如潺不死猶存。貧幾違侍奠之節。愚不任幹蠱之責。公若在是。則誨我恤我。可以紓嬛嬛在疚之懷。可以依瑣瑣姻婭之誼。而小子不祿。先考下世。公已亦棄我矣。小子何爲小子何爲。從今以往更不能承公警咳几杖之儀則。其將與我先考從遊於地下。以盡夫在世未了之誼爲小子以先夫與處哀慕之懷。於乎哀哉於乎慟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