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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9월 29일 / _ / 壬戌
제 목 설 세개를 다듬다
날 씨 흐림.
내 용
흐림. 새벽에 머리를 빗고『주역』을 외웠다. 세 가지 설(「양제마치설」 ․ 「삼과변 」․ 「시자설」 : 역자주)을 다듬었다. 양제마치설풀에는 양제와 마치가 있다. 양제는 기운을 보하고 마치는 체한 것을 없애준다. 이 식물은 하늘이 베풀어 내고 땅이 자라게 한 것으로 뿌리는 깊고 잎은 무성하다. 그 성질은 음양을 온전히 갖추었고, 그 맛은 따뜻하고 차가움을 두루 갖추고 있어 각각 기혈(氣血)에 따라 보(補)하기도 하고 사(瀉)하기도 함으로써 그 효과를 나타내기를 마치 불은 마른 데로 가고 물은 습한 데로 흐르듯 하다.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를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를 친하여 각각 그 비슷한 종류를 따라 음양이 조화(調和)되어 조화(造化)를 알선(斡旋)한다. 그리하여 그 올바른 도를 도우며 천지의 마땅함을 북돋우어 이 백성들의 질병의 고통을 치료하고 이 세상을 장수할 수 있는 곳으로 끌어 올려 각각 그 성명(性命)을 바루어 각자가 마침내 그 삶을 이루게 한다.이제 양제는 마른 불 성질을 타고 났으므로 양(陽)에 속하여 능히 기운을 보하고, 마치는 나면서 습한 물의 이치를 갖추었으므로 음에 속하여 능히 피를 조절하여 비위(脾胃)의 기혈이 흐르게 한다. 올라가는 불의 성질과 내려가는 물의 성질이 청탁을 나누어 이롭게 하여 능히 조절하고 보하며 또 소통을 잘 하게 하니, 이런 기이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바로 음양 이기의 자연스러운 신비한 조화이다. 비록 그러하나 참으로 천지에 참여하고 화육(化育)을 돕는 성인이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온갖 풀을 맛보고 각가지 맛을 분류하여, 양제가 기를 보하고 마치가 막힌 것을 없앰을 알아서 책으로 써 세상에 남겨 후세 사람들이 무성한 금교(金蕎)를 캐고 쾌쾌한 현륙(莧陸)을 거두어 그 기운을 보하고 그 막힌 것을 뚫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유독 양제와 마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밖에 용뇌(龍腦) ․ 용안(龍眼) ․ 용간(龍肝) ․ 용담(龍膽) ․ 오두(烏頭) ․ 오훼(烏喙) ․ 오매(烏昧) ․ 오약(烏藥) ․ 구척(狗脊) ․ 우슬(牛膝) ․ 계두(鷄頭) ․ 계장(鷄腸) ․ 계관(鷄冠) ․ 봉선(鳳仙) ․ 학슬(鶴蝨) ․ 준치(蹲鴟) ․ 견우(牽牛) ․ 녹각(鹿角) ․ 예장(鱧腸) ․ 사함(蛇含) 등 여러 종류의 식물들도 새나 짐승의 형상을 빌지 않은 것이 없다. 처음에 호칭이나 이름을 붙이고, 이를 확대하여 같은 종류에 적용해 나갔다. 차고 더움과 허하고 실한 근간에 따라 그 따뜻하고 서늘하며, 보하고 사하는 효과를 책임진 것이 모두 양제가 기를 보하고 마치가 체한 것을 없애는 것과 같이 하였으니, 위대하도다. 성인이 만세토록 태평할 수 있는 신묘한 공덕과 교화의 은택을 열었음이여!처음에는 버려지는 물건이 없게 모두 거두어서 아울러 기르고, 모든 사물을 널리 모아 알맞게 이루어 줌에 빠뜨리지 않고 각각 그 쓰임에 나아가게 하여 모두 다 그 공업(功業)을 이룰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양제와 마치같이 미천한 풀뿌리들도 이롭게 쓰임을 당하고 이름과 호칭을 드러낼 수 있게 하지 않았던가! 아, 지금의 세상에서는 산림에서 독서하는 선비들이 모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일생토록 부지런히 애써 노력하여 문장 짓고 학문을 하며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한 번 펴지도 못하고 끝내 풀과 나무가 시들어 없어지듯 함을 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냥 묻히고 이름에 후세에 일컬어지지 못하는 것이 양제와 마치만도 못하게 되니, 식자들이 눈물 흘림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 날의 시대에 만일 다시 훌륭한 의원의 재상이 되기를 바라는 이가 있어 임금의 덕을 돈독하게 도우고 백성의 법을 공경하게 화합하게 하며 음양을 조화시켜 다스리고 천지를 공경하고 밝혀, 옥촉(玉燭)이 이 나라에 밝게 빛나고 금고(金膏)가 자도(紫都)에 넘쳐나게 하며, 암혈에 사는 선비들을 찾고 산림에 묻혀있는 선비들에게 빛이 비치게 하여 등용되어 밝게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없게 하며, 한 가지 기예와 한 가지 재능이 있거나 한 마디 말이나 행실을 잘하는 사람들까지도 빠짐없이 기르고 재목으로 만들어 세상에 쓰이는 자질과 적용될 수 있는 그릇으로 갖춘다면, 그때 국가의 원기를 보하고 답답하게 막힌 백성들의 감정을 없앰이, 양제와 마치가 보하고 없애는 것과 비교하면 개미집과 태산, 길바닥에 고인 물과 강하와 같은 차이가 나지 않겠는가?식물로 인해 느낌이 있어 하찮은 생각이 우연히 여기에 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붓가는 대로 기록하노라. 삼과변오늘날 모과[木瓜]와 참외[甘瓜]와 여주[苦瓜]가 있는데, 하나는 나무에 달리는 외[瓜]이고 둘은 풀에 달리는 외이다. 이들을 또한 그 이치를 논변해서 그에 대한 느낌을 부쳐볼 수 있고 초목을 살펴서 구별할 수가 있다.가지와 잎이 크고 무성하기를 바라고 뿌리를 북돋워 주어 열매를 먹는다. 열매로 말하자면 그 공로는 한 과에 돌아가지만 그를 나누면 똑 같이 셋에 있다.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생겨날 이치가 아마 거의 없어질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단맛은 곧 흙의 맛으로 비위(脾胃)의 바탕으로서 바로 육부(六府)에서는 토(土)며 오덕(五德) 중에는 신(信)에 해당한다. 사람은 땅[土]이 아니면 살 수가 없고, 백성은 믿음[信]이 없으면 설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단맛이란 것이 오장(五臟)의 근본으로 온 몸이 이를 바탕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번성한 큰 오이와 작은 오이도 그 실재는 단 맛도 있고 쓴 것도 있는 것은 또 어째서인가? 일반적으로 쓴맛은 위로 타오르는 불의 맛으로 바로 흙이 내는 단맛의 어머니이다. 이것이 없다면 심장이 어찌 조화를 부릴 수 있겠으며, 비장이 어찌 능히 살릴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단맛이 있으면 쓴맛이 있는 것은 실로 천지가 낳고 기르는 큰 덕이다. 한 이치가 유행하여 풀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나무에도 또한 외[모과]가 있어 그 맛이 시다. 신맛은 나무[直]의 맛인데, 이로부터 비토(脾土)가 왕모(王母)에게서 복을 받는다. 그렇다면 시다고 하거나 쓰다고 하는 것은 곧 단맛이 살리고 조화를 일으키는 본원인 것이다. 아아, 세상 사람들은 한갓 단맛이 이로운 줄만 알지 쓴맛이 조절하는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단맛으로 입을 즐겁게 하는 데만 힘쓰고 신만이 명철하게 하는 데는 힘을 쓰지 않는다. 이것은 말단을 추구하느라 근본을 저버리는 것이요, 흐름을 따라가느라 본원을 잊은 꼴이니, 어찌 이래서야 되겠는가?대저 빈천이란 부귀의 바탕이며, 우환은 안락의 본원이다. 빈천의 아픔과 어려움이 없다면 부귀를 어디에서 만들겠으며, 우환의 쓰라림[辛酸]이 없다면 안락인들 어찌 오래 누릴 수 있겠는가? 이것이 같은 한 가지 이치임에도 풀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모두 같은 외[瓜]이지만 단맛이 있고 쓴맛이 있다. 군자가 사물을 봄에 어찌 나무와 풀을 취하고 버림이 있으며, 취미가 같고 다름을 가려서 사랑하고 미워함을 치우치게 할 것이 있겠는가? 아아, 세상이 부박(浮薄)한 지 오래되었다. 악착(齷齪)함을 숭상하여 각박함을 오로지 일삼는다. 천지가 모두 한 곳에서 났는데 부귀를 달게 여겨 즐기는 사람은 고통 받는 형제들에게는 문득 교만하게 대하고, 현달함을 달게 여기는 사람은 궁핍하여 고생하는 동포를 바로 업신여긴다. 풍속은 날로 투박(渝薄)함으로 치닫고 습상(習尙 : 습관과 숭상하는 것)이 극도로 무너지는 것이 모두 감(甘)이란 한 자 속에 배어 있다. 묘당(廟堂)에서는 오로지 입에 단 말로 아첨하기만 일삼고, 입에 쓴 바른 말은 모두 입 다물고 있다. 재상이 되어서는 오직 살지고 단 음식으로 보신하기만 힘쓸 뿐,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사정은 생각지 않는다. 한 세상을 도도하게 사는 꿋꿋한 절개를 가진 높은 풍모와 신산을 겪는 선비들의 돈독한 행동은 마침 창기(娼妓) 집의 예설(禮說)과 월(越)나라 사람들의 장보(章甫)가 되는데 만족하는데 그치게 되었을 뿐이니, 탄식할 만한 일이 아닌가? 날마다 화재 옹의 술에 취하여 여러 번 화재 옹의 뜻을 어겼기에, 마침내 나의 형편과 거리낌을 잊고 한 번 취한 붓을 들고 써서 통달한 사람이 한 번 보고 웃을 거리로 삼는다.""시자설(柿子說)과일에는 감이 있는데, 여기에도 두 가지 품종이 있다. 하나는 고종시(高種柿)이고 하나는 반시(盤柿)이다. 그 물성이 비록 모든 물품과 같은 듯 하지만, 천지 만물의 정을 여기서도 볼 수가 있다. 『주역』에 이르기를, "모든 과실과 초목이 다 껍질이 터진다.[百果草木 皆甲拆]"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만물이 퍼져 형성된다.[品物流形]"라고 하였다. 이것은 온갖 과실과 초목이 천지의 자생(資生)하는 이치를 부여받아 체득하여 퍼지고 형성되지 않은 것이 없다. 형태에 따라 만물[品彙]로 나누어지는데, 만물에는 높고 낮은 차이가 있다. 형체는 넓고 높음에 따라 각각 그 이름을 얻으니, 이름이 붙는 것은 실로 속일 수가 없다.지금 저 같은 감인데도 몸체가 길고 끝이 뾰족한 것을 고종시라고 하고, 모양이 작고 넓적한 것을 반시라고 하는데, 이로부터 형상을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다. 아아, 사람이 한 태(胎) 속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떤 이는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도적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용이라고 불리고 하나는 개라고 불린다. 이것은 본디 부여받은 기질(氣質)이 절로 맑고 흐리며 순수하고 박잡하여 고르지 않음이 있고, 습상의 변화와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이 있어서 거리를 멀게 한 것이다. 착한 일을 함이 모두 같지 않아도 모두 덕으로 돌리고, 악한 일을 함도 다 같지 않지만 모두 흉함으로 돌린다. 덕이 있는 이라 하고 흉한이라 함에 사람이 감히 그 형상을 피해가지 못하니, 형상이 드러남에 이름은 이에 달려 있는 것이다. 대저 이름은 실상의 손님이요 실상은 이름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이름이 스스로 실상을 따르니, 이름이 드러나는 것은 실로 속이지 못한다. 비록 한 마디 말의 은미함과 한 가지 행동의 세세함도 선과 악을 행하는 기미가 되고 점점 쌓여 지극하게 되지 않음이 없으니, 형이상(形而上)이든 형이하(形而下)이던 자연적으로 종류가 나뉘어 각각 그 드러나는 것을 따라 이름을 얻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감의 끝이 높고 뾰족한 것을 고종시라고 하고 넓적한 것을 반시라고 하는 것만큼 분명한 것은 없다. 아아, 일곱 가지 좋은 점을 가진 아름다운 나무의 같은 붉은 열매를 높다[高]라고도 하고 넓적하다[盤]이라고도 하는 것이 비록 보통 일인 것 같지만, 이 또한 어찌 이름을 돌아보고 그 뜻을 생각하는데 조그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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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九日
陰。 晨 梳, 誦。 修飾三說
羊蹄馬齒說
草有羊蹄馬齒 羊蹄補氣 馬齒消滯。 其物也 莫不天施地生 根深葉茂, 性全陰陽 味具溫涼 各隨氣血 而能補瀉。 以秦其功 如火之就燥 水之流濕,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各從其類 而陰陽調和 造化斡旋 輔相其道 財成其宜 毉斯民之疾苦 蹄斯世於壽域, 各正性命 各遂其生也。 今羊蹄 稟得燥火之性 故屬乎陽而能補氣, 馬齒 生備濕水之理 故屬乎陰而能調血 使之流注脾胃之氣血而升降水火。 分利淸濁 旣能調補 且善消導 輒收奇功異效者 乃陰陽理氣之自然神化也。 雖然苟非參天地贊化育之聖人 其孰能嘗百草 分百味 知羊蹄之補氣 馬齒之消滯 而著書垂世 俾後人採金蕎之離離 收莧陸之夬夬 補其氣而消其滯哉? 不獨羊蹄馬齒爲然也。 其他龍腦 龍眼 龍肝 龍膽 烏頭 烏喙 烏昧 烏藥 狗脊 牛膝 雞頭 雞腸 雞冠 鳳仙 鶴蝨 蹲鴟 牽牛 鹿角 鱧腸 蛇含等諸般物種 無不借鳥獸之象 而肇錫号名 引而伸之 觸類而長之 隨其寒熱虛實之根株而責其溫涼補瀉之功效者 皆如羊蹄之補氣 馬齒之消滯, 大哉聖人爲万歲開泰平之神功化澤也。 初无棄物而俱收幷畜 廣採衆彙而曲成不遺 各迪其用 咸得其功 能使羊馬之微荄賤品 利見需用 得顯号名。 嗟今之世 讀書林下者 凡幾人矣, 終年閱歲 矻矻孜孜 績文種學 懷瑾抱瑜 不得一售於世 而終未免草亡木卒之歸 遂乃埋沒而名不稱於後者 曾羊馬之不若也 可勝識者之淚哉。 居今之世 若復有願爲良醫之宰相 篤棐君德 式和民則 燮理陰陽 寅亮天地 耀玉燭於靑丘 溢金膏於紫都 搜羅巖穴之士 來章山林之彦 莫不登庸而揚顯之, 至使一藝一能之人 一言一行之善 亦莫不育養而作成之 以備需世之姿 適用之器 則其補國家之元氣 消民情之鬱滯者 其視羊蹄之補 馬齒之消 豈不若丘垤之泰山 行潦之河海也哉? 因物有感 草茅之念 偶然及此, 遂信筆記之云爾
三瓜辯
今有木瓜甘瓜苦瓜 而一則木瓜 二則草瓜 是爲物也 亦可得以辯其理而寓其感矣。 侯草木而區別 冀枝葉之峻茂 培根食實, 實以論之 則其功歸一瓜 而分之則等厥有三。 三者闕一 生之理或幾乎息矣。 何者? 甘卽稼穡之味 脾胃之原 而乃六府之土 五德之信也。 人非土不生 民無信不立, 則甘之爲味也 其非五臟之主本而百體之所以資化者乎? 緜緜瓜瓞 其實有甘有苦者 抑又何也? 蓋苦是炎上之味 而乃土甘之母也。 無是 則心焉得化化乎 脾安能生生乎? 是以有甘 則有苦實 惟天地生生之大德 而一理流行 有草有木 有木亦有瓜。 厥味也 酸酸, 是曲直之味 而自是脾土之受福王母。 然則曰酸曰苦 卽惟甘之生化本源也。 噫, 世之人徒知甘之爲利而不知苦之爲節, 但務甘之悅口而不務酸之作哲 則是趍末而遺本也 逐流而忘源也。 惡乎其可哉。 大抵貧賤者 富貴之根基也, 憂患者 安樂之本源也。 非貧賤之疾苦 則富貴從安所做來乎, 非憂患之辛酸 則安樂亦何以永終哉? 同是一理而有草有木 均是一種而有甘有苦 ,君子觀物 有何草木之取舍乎, 何擇趣味之同異 而偏其愛憎乎? 嗟乎, 世之浮薄 久矣。 齷齪是尙 剗刻專事。 天地一胞䏩 而甘樂 富貴者 便驕疾苦之兄弟, 甘心顯達者 輒侮窮酸之同胞。 風俗日趨渝薄 習尙將極敗壞者 無非甘一字胚胎也。 在廟堂則專事甘口之諂諛而都噤苦心之諫諍, 爲宰衡則惟務肥甘之奉身而罔念疾苦之民情, 滔滔一世 苦節之高風 酸儒之篤行 適足爲娼家之禮說 人之章甫而止耳 可勝歎哉? 日醉華翁酒 重違華翁意, 遂忘形忘諱而一揮醉墨 庸備達人一笑之資也。
柿子說
果有柿子 而亦有二品, 一則高種 一則盤, 其爲物也 雖若凡彙 而天地萬物之情 亦可得以見矣。 曰 百果草木 皆甲拆, 又曰 品物流形, 蓋百果草木莫不稟天地資生之理 而軆以流形 形以分品, 品有上下 形隨廣高 而各得其名 名之所寓 實不得誣矣。 今夫同一柿子 而軆長而高尖者 謂之高種 形矮而盤廣者 謂之盤者, 自是因是形象而命名焉而已。 噫, 人有一胎生成 而或謂惠 或謂盜, 且一稱龍 一稱狗, 此固氣質之稟 自有淸濁粹駁之不齊 而習尙之移 形氣之私 有以間而遠之也。 爲善不同 同歸于德, 爲惡不同 同歸于凶, 曰德曰凶 人莫敢逃其形, 形之所著 名言在玆。 大抵名者 實之賓也 實者 名之主也。 實之所存 名自隨之, 名之所顯 實莫欺焉。 雖一言之微 一行之細 無不爲善惡之幾 而積漸之極, 形而上 形而下者 自然彙分 各隨其著顯者而得号名也 莫不若柿子之高尖者謂高種, 廣者謂之盤也。 嗚呼, 七絶佳木 一種朱實 曰高曰盤者 雖若尋常 亦豈非顧名思義之一助也哉?

주석

양제와 마치 : 원문은 양제(羊蹄 : 양 발굽)과 마제(馬齒 : 말 이빨)이다. 양제는 소루쟁이의 한자식 표현이고 마치는 쇠비름의 한자식 표현이다. 그러나 식물의 이름에 동물의 신체부위를 사용하는 것을 색다르게 보고 이를 채택하였다고 보아서, 여기서는 그 의미를 살리려고 해당 식물의 한글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원문대로 썼다. 불은 마른 데로 ... 종류를 따라 : 이 구절은 『주역』「건괘(乾卦)」(문언(文言))의, “같은 소리가 서로 응하며, 같은 기가 서로 구하여, 물은 습한 데로 흐르며, 불은 건조한 데로 나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며, 바람은 범을 따르는지라.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다 보게 된다.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를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를 친하여 각각 그 비슷한 종류를 따르게 된다.[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라는 말에서 따왔다. 올바른 도를 도우며 천지의 마땅함을 북돋우어 : 『주역』「태괘(태(泰)卦)」(대상)에는, “천지의 도를 북돋우고, 천지의 일을 도와 백성을 좌우한다.[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말을 서로 바꾸었다. 금교(金蕎) : 금교맥(金蕎麥)이라고도 하는데, 마제(소루쟁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쾌쾌한 현륙(莧陸) : 현륙은 비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주역』「쾌괘(夬卦)」(구오효)에, “현륙을 끊듯이 결단하면 바른 도에 허물이 없다.(莧陸夬夬 中行无咎)”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 이 부분의 원문은 ‘회근악유(懷瑾握瑜)’이다. 이는 『초사(楚辭)』 권4 9장 「회사(懷沙)」에, “옷 속에 옥을 품고 손에 옥 지녔어도 고달픈 상태에서 보여 줄 길 전혀 없네.(懷瑾握瑜兮 窮不知所示)”라는 말에서 차용한 것으로,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훌륭한 의원의 재상 : 여기서 ‘훌륭한 의원’이란 훌륭한 임금을 나타낸다. 백성의 .. 화합하게 하며 : 『『서경』(書經)』 「군아(君牙)」에, “백성의 법을 공경하여 화하게 한다.(式和民則)”라는 말이 있다. 음양을 .. 공경하고 밝혀 : 『『서경』(書經)』 「주관(周官)」에, “음양을 조화시켜 다스리다[燮理陰陽]”와 “천지를 공경하고 밝히다[寅亮天地]” 라는 말이 있는데, 재상(宰相)이 천도(天道)를 받들어서 임금을 보좌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옥촉(玉燭) : 사철의 기후가 고르고 날씨가 화창하여 일월(日月)이 환히 비침. 즉 밝은 임금의 덕택으로 천하가 태평함을 상징한다. 금고(金膏)가 자도(紫都)에 넘쳐나게 하며 : 금고는 금등(金燈)을 밝히는 기름이란 뜻으로, 태평성대의 기운을 상징한다. 자도는 옥황상제가 사는 궁궐인데, 여기서는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한다. 육부(六府)의 .. 신(信) : 육부는 수(水)ㆍ화(火)ㆍ금(金)ㆍ목(木)ㆍ토(土)ㆍ곡(穀)을 가리키고, 오덕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을 말한다. 번성한 큰 오이와 작은 오이 : 이 말은『시경(詩經)』 「대아(大雅)」(면(緜))편의, “번성한 큰 오이 작은 오이(緜緜瓜瓞)”라는 말을 차용하였다. 쓴맛은 .. 어머니이다. : 『書經』「홍범(洪範)에, 오행(五行) 중에 “물은 짠맛을 만들고, 불은 쓴맛을 만들고, 나무는 신맛을 만들고, 쇠는 매운맛을 만들고, 곡식을 생산하는 흙은 단맛을 만든다.[潤下作鹹 炎上作苦 曲直作酸 從革作辛 稼穡作甘]”라는 말이 있다. 비토(脾土) : 음양오행 이론에서 신체의 오장의 하나인 비는 오행의 토에 속하므로 이를 붙여 말한 것이다. 간은 목, 심장은 화, 폐는 금, 신장은 수에 속한다고 본다. 비토(脾土)가 .. 복을 받는다. : 비토는 방위로 보면 중앙에 속하므로, 중도를 행한다고 볼 수 있다. 『주역』「진(晉)」괘에, “육이는 나아가는 것이 근심하는 듯하나 바르게 하면 길하리니 이 큰 복을 그 왕모로부터 받으리라. 상전(象傳)에 이르길, 큰 복을 받는다 함은 중용을 지키고 바르기 때문이다.(六二 晋如-愁如 貞 吉 受玆介福于其王母 象曰 受玆介福 以中正也)”라는 말이 있다. 월(越)나라 사람들의 장보(章甫) : 장보는 유자(儒者)들이 쓰는 모자이다. 이 말은 귀중한 것이 쓸모 없이 되었다는 뜻으로, 『장자』「소요유」에, “송나라 사람이 장보를 가지고 월나라에 갔었는데, 월나라 사람은 단발을 하고 문신을 하여 쓸 데가 없었다.(宋人資章甫 適諸越 越人短髮文身 無所用之”라는 말이 있다. 『주역』에 이르기를, .. 하였다. : 앞에 인용된 것은 「해괘(解卦)」 단전(彖傳)에 나오는 말이고, 뒤에 인용문은 「건괘(乾卦)」 단전에 나오는 말이다. 일곱 가지 좋은 점을 가진 아름다운 나무 : 원문은 칠절가목(七絶佳木)인데, 칠절이란 감의 일곱 가지 좋은 점을 가리킨다. 『본초(本草)』 권 30 「과부(果部) 시(柿)」첫째 수명이 긴 것, 둘째 잎이 풍성하여 그늘이 짙은 것, 셋째 새의 둥우리가 없는 것, 넷째 좀이나 벌레가 없는 것, 다섯째 단풍 들었을 때의 아름다운 잎, 여섯째 먹음직스러운 고운 열매, 일곱째 낙엽(落葉)이 매우 비대(肥大)하여 글씨를 쓸 수 있는 점을 칠절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