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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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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9월 21일 / _ / 壬戌
제 목 김후근을 방문하다.
날 씨 _
내 용
머리털이 갑자기 다 빠져 장차 대머리가 되겠다. 형세가 그렇기는 하지만 마음속으론 걱정되어 즐겁지 않았다. 마침내 오늘부터는 날마다 머리를 빗기로 작정하였다. 개령(開寧)현감을 지낸 김후근(金厚根)을 방문하였다. 그 또한 민란으로 인해 견책을 받아 지난 6월에 이곳으로 유배와 있었다. 첫눈에 마치 오래된 친구 같아서 백발을 서로 안타까워하였다. 그는 글을 잘 지었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였으며, 성격이 소략하고 단순하며 여유가 있어서 곤궁한데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좋게 여기는 사람이라 할 만하였다. 저녁에 시를 지어 보여주며 화답시를 요구하는데 저버릴 수가 없어서 급히 세 수를 지어 보냈다.

한가로운 집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
오연(傲然)히 시를 읊는 창주에선 뜻이 도로 교만하네
즐기기엔 옛 서적을 궁구하는 것 만한 것이 없으니
이를 잊고 어찌 꼭 맑은 밤에 밖에 서 있으리오
벼슬길에 다툼이 있어 부침이 많으니
통달한 선비는 무단히 멀리 조수(潮水)를 건너지
곤궁함에 처해서도 공부하면 자득함을 누리리니
시정(詩情)과 술 취미 둘 다 풍요로우리

이곳은 청허하여 시끄러운 저자와 아주 떨어져 있어
한가로이 지내는 이 교만한 귀인보다 낫다네
궁벽한 객지에서 풍격 높은 벗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속세에서야 달 좋은 밤 즐기기도 어려웠지
짧아진 귀밑머리에 백설이 날린들 무슨 걱정이리오
노쇠한 얼굴이지만 기쁨이 남아 홍조를 띄네
강호와 조정은 서로 잊고 사는 처지
가슴 속에 쌓인 넉넉함을 그 누가 알리

들판에 살아도 즐거워 들썩이니
사람들은 선비가 교만하다고 서로 삐죽거리네
웃노니 영고성쇠가 한바탕 꿈이라
홀연히 사람과 사물이 가을밤에 속했네
절로 차고 이우는 달을 무심히 바라보니
세월은 항상 드나드는 조수와 같네
올곧은 길은 원래 용납되기 어려운 법
이제는 마음 상하고 애통한 일 모두 잊었다네
밤에 『주역』을 외웠다.

이미지

원문

二十一日
頭髮忽盡落 將成禿翁, 勢之使然 而心則懼懼不樂。 遂自是日定日梳。 訪金開寧【厚根】, 亦以民亂蒙恩譴 去六月來配。 一見如舊 白髮相憐 善屬文好飮酒 疎簡優閒 可謂困而亨吉者也。 夕投韻要和 不可孤, 草草二三首構送之。
閒囱不到一塵囂 嘯傲滄州意反驕 玩樂莫如窮古籍 渾忘何必立淸宵
名途有競多翻浪 達士無端遠涉潮 處困工夫亨自得 詩情酒趣兩相饒
境界淸虛絶市囂 閒人還勝貴人驕 窮途未易高風友 塵世誠難好月宵
短鬂何愁飄白雪 衰顔剩喜帶紅潮 江湖廊廟相忘地 誰識胸中蘊蓄饒
棲身畎畝樂囂囂 多口交諞士也驕 笑矣榮枯渾一夢 忽然人物屬秋宵
達觀自由盈虧月 逆旅常如出入潮 直道元來容不得 至今傷衋蓋寬饒
夜誦

주석

김후근(金厚根) : 생몰년 미상. 1862년(철종 13) 개령현감으로 재직 중에 민란이 일어났는데, 난이 진압된 뒤 임자도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창주(滄州) : 경치 좋은 물가를 가리키는데, 은자(隱者)가 사는 곳을 지칭하며, 시골을 지칭하기도 한다. 맑은 밤에 밖에 서 있으리오 : 당 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오랫동안 고향의 가족들과 헤어져 있음을 한하여 지은 시인 (한별(恨別))에, “집 생각에 달빛 아래 거닐며 맑은 밤에 섰고, 아우 생각엔 구름 쳐다보며 대낮에 조노라.[思家步月淸宵立 憶弟看雲白日眠]”한 시가 있는데, 여기서는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