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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9월 11일 / _ / 壬戌
제 목 정언이 떠나다.
날 씨 _
내 용
정언이 돌아가겠다고 하여, 쓸쓸하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마침내 같이 배를 타고 점화암(點化巖)으로 갔다. 이대윤 형과 김도천, 그리고 주인 박윤량이 함께 따라와 술을 사주어서 마음껏 마시고 근심을 날려버렸다. 새벽에 나왔는데 해가 이미 기울었다. 곧 정언을 포구에서 보내며 장서(章瑞)에게 편지를 부쳤다. 미친 짓을 한 나 때문에 푸른 관복을 입고 조정에서 벼슬하던 사람이 이 무슨 곤액이란 말인가? 서울과 지방을 뛰어다니다가 더러운 진창길에 자빠지고 바다 속 섬과 험한 강으로 떠돌며 풍상과 험한 장기(瘴氣)를 무릅쓰고 다니니, 사람이 쇠나 돌이 아닌데 어찌 버텨 나갈 수 있을까? 내가 평소에 기대하고 바라던 장래와 애지중지하며 보호하려던 뜻이 어떠하였던가? 그런데 지금은 어지럽고 위급한 지경에 내팽개쳐져 있으니, 초심을 저버림이 아아 이보다 더함이 없구나. 차라리 팽함(彭咸)을 따라 하고 싶으나 그러지도 못하니, 미련하기가 심하고 심하도다. 맹세하는 시를 지어 대략 속마음을 드러내어 주었다.

죽음이 가까운 60의 나이에도 아직도 미쳐서
어찌 속히 죽지 않고 허물만 쌓는가
감옥에서 거의 죽을 뻔한 재앙은 내가 저지른 것인데
형부(刑部)에서 문초당하는 화가 아들에게 미쳤네
예로부터 유배형 받은 이 수없이 많았지만
천지간에 어려운 것은 이런 이별이로다
운명이로다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원망하랴
조심하고 더욱 힘써 세한의 자태를 지키리라

부끄러워라 아비 되어 아비노릇 하지 못하고
임금에게 죄를 지어 형벌 받고 있으니
아홉 번 넘어지고 열 번 자빠진들 나야 당연하지만
천신만고하는 너는 무엇이란 말이냐
대궐은 멀고 깊으나 진실은 밝게 전해지리니
뱃길 위험한데 부디 몸조심 하여라
오늘 너를 보내며 한없이 바라노니
반드시 우척(憂慽)으로부터 옥성(玉成)하여라

너의 끝없이 원대한 뜻 이루어지면
온 나라 사람들이 다투어 진기한 보배라고 칭송하리라
스무 살 청춘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삼천권의 서책이 속에 들어있는 너
아비야 잘못되어 우환이 비롯되었다만
자식이야 무슨 죄 있어 궁액(窮厄)이 따르는가
어리석고 미련한 이 아비야 곧 죽지 않을 것이니
내가 늙었다고 너무 염려 말아라

부자간에 어찌하여 아득한 타향에서 이별하는가
하늘에 해도 빛을 잃고 푸른 섬도 슬퍼하네
함께 있을 땐 용나무 잎이 필 때라 견딜 만 하였는데
이별은 왜 하필 국화 필 무렵인가
조정에서 그 누가 상서로운 기린의 중요함을 알리오만
천지간에 한없는 것이 자식 사랑인 것을
소 같이 미련하고 눈먼 아비가 어찌 누를 끼쳤던가
기억하고 저버리지 말아라이 죄인의 기도를
이대윤 ․ 김도천 ․ 박윤량과 함께 임자도 진으로 돌아오려 하는데 밤 조수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 주점에서 기다렸다. 나는 술에 취해 잠이 한창 깊이 들었는데 곁에 있던 사람이 흔들어 깨웠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달빛이 땅에 가득하고 물빛은 하늘에 잇닿아 있었다. 드디어 함께 배에 오르니 호탕하기가 마치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몰아가는 듯하여 흥과 운치가 절로 일어나 어느덧 이별의 고통을 잊었다. 여관에 돌아오니 이미 한 밤중이었다.

이미지

원문

十一日
正言言歸 不勝凄鬱, 遂同舟往點化巖大允兄與道天, 主人朴允良幷隨之 賖酒通飮蕩愁。 秣馬䭜僕 日已昃矣, 卽送正言于浦上, 付書章瑞。 緣余猖狂 靑袍朝士 此何戹哉? 馳驟鄕 顚仆塗泥 漂泊于海島江潭之險 觸冒于風霜瘴霧之沴, 人非鐵石 何以枝梧? 余平日期待倚望之遠 愛重保護之意 顧何如 而今乃抛擲於拂亂危迫之地 辜負初心 吁亦極矣。 寧學彭咸而不可得 頑甚頑甚。 遂矢詩 略發中情而貽之。
殘年六十尙癲癡 胡不遄歸只積疵 幾死圓扉殃自俺 嚴勘大理禍延兒
古今何限遭流竄 天地難爲此別離 命矣夫誰尤且怨 慎旃冞勵歲寒姿
深慚爲父不能慈 全蔽天明罪罟罹 九倒十顚卬有以 千辛万苦汝何斯
金門邃遠誠昭格 木道傾危力護持 今日送歸無限冀 須從憂慽玉成之
爲汝無疆遠大期 國人爭道席珍奇 靑春二十登臚榜 黃卷三千蘊腹笥
父也不良憂患始 兒乎何罪戹窮隨 冥頑應未居然去 莫以吾衰過慮爲
天倫何事別天涯 白日無光碧嶼悲 提挈可堪榕葉(山片) 分張又況菊花時
朝廷誰識祥麟重 天地無窮舐犢私 牛爺瞽父何曾累 念哉休負戾人祈
將與大允 道天 允良 還于鎭, 夕潮未生 留待酒店。 余醉眠方濃 傍人攪起, 開戶視之 月色滿地 水光接天。 遂相與登舟 浩浩如憑虛御風 興致自生 渾忘離恨之苦 歸泊旅館 夜已央矣。

주석

팽함(彭咸) : 은(殷) 나라의 현대부(賢大夫)로서 그 임금을 간하였으나 듣지 않자 물에 빠져 죽었음. 세한의 자태 : 『논어』「자한」편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자신을 겨울 소나무에 비유하였다. 우척(憂慽)으로부터 옥성(玉成)하여라. :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궁과 걱정 속에 처하게 함은 그대를 옥으로 이루어 주려 함이로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는 말이 있다. 옥성은‘훌륭한 인물이 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