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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9월 4일 / _ / 壬戌
제 목 임자도에 도착하다.
날 씨 _
내 용
석양 무렵에 뱃길이 열려 임자도에 도착하였다. 율시 두 수를 지어 근심을 덜었다.

바다 한 모퉁이에 임자도 떠 있는데
외로이 배 한 척 석양 무렵에 닿았네
하늘 바람 나그네 보내니 큰 파도 갈라지고
진법으로 사람을 막아두는 해옥(蟹屋:게딱지처럼 작은 집)은 거칠어라
모두가 임금의 은혜로 이 몸 죽지 않았으니
어느 곳인들 임금의 땅 아니랴 상심할 것 없다네
아들이야 무슨 죄로 험난함을 당하는가
세상에 부끄러운 것은 좋은 아비 못 됨일세

늘그막에 세상살이에 어두워
무단히 날뛰다가 황량한 섬에 갇혔네
시세에 마음 상해 뗏목타고 떠나려던 성인을 사모하
속세를 피해 떠나니 격경양을 도리어 부끄러워하네
떠도는 인생 궁하고 통하는 시절이 절로 있으니
대지에는 본래 네 땅 내 땅이 따로 없는 것
낯선 땅에서 한가하게 사는 것도 임금의 은혜이니
지금부터 영원히 즐겨 숨어서 살리라
진문(鎭門) 밖 박윤량(朴允良)의 집을 살 주인집으로 정하였다. 앉아 있는데 벗 이대윤(李大允)이 넘어질 듯이 달려와 악수를 하며 서로 기뻐하였다. 이대윤은 초옥(樵獄:민란과 관련한 옥사)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다가 간신히 살아서 지난 7월에 이미 이곳에 왔고, 그의 재종형은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초괴(樵魁:민란의 수괴)라고 모함을 당해 강진의 고금도(古今島)로 쫓겨났다.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 마음이 매우 힘들 것이다. 나와 이대윤은 지난 6월 진주 감옥에서 같이 환난을 당하였는데, 또 이처럼 하늘 끝으로 같이 떨어졌으니, 일이 우연이 아니라 실로 인연의 업보가 있다 하겠다. 마침내 밤낮으로 함께 거처하였다. 또 한 사람이 찾아와 만났으니 바로 진주 조창(潮倉)에 살던 김도천(金道天)이었다. 그는 선주(船主)로서 경채(京債:지방 사람이 서울 사람에게 진 빚)를 횡령하고 나라 곡식 수천 석으로 대신 납부하였다가 지난 3월 이 곳으로 자배(刺配)되었다고 하였다.

이미지

원문

四日
夕陽 船通 到泊荏子島。 得二律撥閔。
荏子島浮海一方 孤舟來泊趂斜陽 天風送客鯨波裂 鎭法關人蟹屋荒
摠是君恩身不死 莫非王土處無傷 家兒何罪蒙艱險 慚愧人間未父良
白首全瞢涉世方 無端猖蹶竟投荒 傷時感慕乘桴聖 避俗還羞擊磬襄
浮生自有窮通限 大地元無此爾疆 別界偸閒猶聖賜 從今永矣好潛藏
定居停主人于鎭門外朴允良家。 坐定, 李友大允顚捯趕來 握手相歡。 蓋橫罹於樵獄 幾死艱生, 去七月 已泊于此。 厥再從兄 以瀛州學士 搆陷於樵魁 放逐於江津古今島, 彼何人斯 其心孔艱。 余與大允 去六月同患難於犴, 又此同淪落於天涯 事非偶然 實有緣業。 遂與之日夜同處。 又一人來見 乃晉州潮倉金道天也。 以船主負逋債 換作國穀數千石 坐此, 去三月刺配於此云爾。

주석

뗏목타고 떠나려던 성인 : 『논어』「공야장(公冶長) 」편에, “공자가 말하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는구나.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다.[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성인은 공자를 가리킨다. 속세를 ... 부끄러워하네. :『논어』「미자(微子)」에, “..소사 양과 경을 치던 양은 바다로 들어갔다.[少師陽 擊磬襄 入於海]”라는 구절이 있는데, ‘격경양’이란 ‘경쇠(磬)를 치던 음악가 양’이란 사람을 가리킨다. 당시 예가 무너지자 음악을 담당하던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간 상황을 이르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