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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6월 12일 / _ / 壬戌
제 목 감옥에 들어가다
날 씨 _
내 용
어사가 진주에 도착하였다. 마침내 감옥에 들어갔다. 곽사유도 같이 들어갔다. 벗 박숙연(朴淑然 : 수익受益)과 벗 이대윤(李大允 : 명권命權) 등 여러 벗들도 모두 안핵사(按覈使) 박규수(朴珪壽)의 무고(誣告)로 인해 체포되어 유배되는 곤액을 당하였다. 저물녘에 이웃에 사는 박문서(朴文瑞)(상채(尙采)) ․ 박장서(朴章瑞)(상호(尙顥)) ․ 권가원(權可遠)(익◆(翼◆)) ․ 이선화(李善和)(□□)와 집안 조카 대진(大鎭) 등 여러 사람이 삼목낭두(三木囊頭)로 일시에 나란히 구류되었다. 진주와 단성현 인사들 중 줄줄이 구속된 사람을 다 기록할 수도 없다. 사태가 비참함이 초(楚)나라의 감옥에 갇힌 억울함이나 한(漢)나라의 감옥에 갇힌 화보다 더욱 컸다. 진주 목사 정면조(鄭冕朝)가 아전을 보내어 위로를 전하고 아울러 제호탕(醍醐湯)을 보내왔다. 저녁 식사 후에 정언이 와서, 영남 선무사 이삼현(李參鉉)에게 무고를 당한 사람들을 잡아들이라는 엄한 왕명이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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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二日
御史, 遂入圓扉。 士維亦同。 朴友淑然【受益】, 李友大允【命權】諸益 皆 以按覈使朴珪壽誣告見逮 方遭刺配之戹。 日暮 隣居朴文瑞【尙采】 朴章瑞【尙顥】, 權可遠【翼▣】, 李善和【 】 族姪大鎭諸人 皆三木襄頭 一時拜繫, 人士鉤連見逮者 不可殫記, 爻象愁慘 浮於獄之怨 錮之禍。 主牧鄭冕朝遣吏致慰 兼送醍醐湯。 夕後 正言來告 被誣於宣撫使李參鉉 有嚴旨拿處之奇。

주석

안핵사(按覈使) 박규수(朴珪壽) : 1807 ~1876. 본관은 반남이며 자는 환경(桓卿)·환경(瓛卿), 호는 환재(桓齋)·환재(瓛齋)이다.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손자로, 그의 실학사상을 계승하였다. 1848년(헌종 14) 증광문과에 급제하였고, 1854년 경상좌도 암행어사로 민정을 시찰했고 1862년 2월 진주민란의 안핵사로 임명되어 실정을 보고하였다. 벼슬은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삼목 낭두(三木囊頭) : 죄인이 형구(刑具)를 착용한 모양을 말한다. 삼목(三木)은 죄인의 목ㆍ손ㆍ발에 채우는 3개의 형틀, 낭두(囊頭)는 자루로 머리를 뒤집어 씌우는 것. 『후한서(後漢書)』 권67 「당고열전(黨錮列傳)-범방(范滂)」 정면조(鄭冕朝) : 1813~1863. 본관은 동래이며, 자는 양중(養中), 호(號)는 석천(石川)이다. 기성(基成)의 아들로 1858년(철종9) 식년문과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여 승지를 역임하였다.1862년 3월에 진주 목사로 부임하여 같은 해에 떠났다. 제호탕 : 오매육ㆍ사인ㆍ백단향ㆍ초과 따위를 곱게 가루로 만들어 꿀에 재워 끓였다가 냉수에 타서 마시는 청량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