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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11월 22일 / _ / 壬戌
제 목 함흥에서 민란이 일어나다
날 씨 맑고 바람이 불었다.
내 용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외웠다. 『감정록』을 정리하였다. 저녁 이후에 화재 옹이 새 달력 한 권을 보내왔다. 서울에서 인편이 왔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 바로 가서 소식을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난달에 함흥에서도 민란이 일어나 도백이 먼저 세 사람을 참수하고 나중에 임금에게 보고하였으며, 또 잡아 가둔 사람이 70여 명이며, 조정에서는 이삼현(李參鉉)을 안핵사(按覈使)로 뽑아 보냈다고 한다. 시 한 수를 읊고 술을 한 잔 마시기를 밤이 깊도록 하였다. 5언절구․7언절구․5언율시․7언율시 각 1수씩을 얻었다.

얼음 같이 말끔한 매화 섣달을 맞이하고
술 취한 버드나무 모진 추위를 녹이네
화재 영감 가슴 바다에는
글의 파도가 끝없이 출렁이네

주인은 풍당(馮唐)이 늙었음을 아까워하였고
사신 간 사람은 범숙(范叔)이 추운 것을 불쌍히 여겼지
텅 빈 천지를 배회하며 길게 휘파람 부니
외로운 배는 큰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네

자라 등에는 세 산이 떠 있는데
초연히 그 위에 누워 있노라
푸른 대는 비파 소리를 내고
흰 눈은 신선 사는 집을 짓네

술기운은 가슴을 기르고
시의 향기 얼굴을 빛나게 하네
풍류로 보내는 바다 속 집에서는
시 한수 읊으니 술 한 잔이 돌아오네

위수 가의 노인이 서쪽으로 왔을 땐 생각이 있어
여든의 고령에도 마음을 임금과 뜻이 통하였네
짝지어 고향으로 돌아갈 땐 청춘 시절이더니
장사들의 슬픈 노래 백발이이라네
까닭 없이 미쳤다가 마구 술을 마시고
강개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시를 짓네
바라노니 그대여 늦었다고 근심말고
더욱 힘써서 넓은 마음으로 단련하시길
닭이 울어서야 돌아와 잤다.

이미지

원문

二十二日
晴且風。 晨 梳, 誦戡定錄。 夕後 華翁送新蓂一冊。 想有便也。 隨卽往叩消息 則去月 咸興亦起民亂 道伯先斬後啓三人, 且捉囚七十餘人, 朝廷以李參鉉按覈使出送。 一詠一觴 至遙夜, 得五絶七絶 五律七律各一。
冰梅迎臘候 麴柳禦獰寒 華翁胸海裏 汪汪動文瀾
主人可惜馮唐老 行者堪憐范叔寒 曠宇裵回長我嘯 孤舟莫入大瀛瀾
鰲背三山泛 翛然坦臥頹 綠筠調琴瑟 白雪築瓊臺
酒暈頤心肺 詩香賁頰腮 風流湖海宅 一詠一觴回
渭叟西來我有思 高年八十際風期 還鄕好伴靑春節 壯士悲歌白髮時
無故猖狂仍縱酒 不勝忼慨自爲詩 請君遮莫憂遲莫 益勵恢恢利器持
鷄唱還宿。

주석

풍당(馮唐) :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 낭중서장(郞中署長)이 되어 백수(白首)가 되도록 하급 관료에 머물렀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여 현량(賢良)을 구하자, 풍당이 천거되었는데 당시 나이가 아흔 살 남짓이었으므로 다시 벼슬을 할 수 없었다. 『사기』에 열전이 있다. 범숙이 ... 여겼지 : 범숙은 전국 시대 범수(范睢)으로, 범수의 자가 숙이다. 범수가 일찍이 위(魏)나라 수가(須賈)의 문객으로 있다가 진(秦)나라로 망명해서 이름을 장록(將祿)으로 고치고 재상의 지위에 올랐는데, 수가가 진나라에 사신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범수가 일부러 허름한 행색으로 그를 만나자, 수가가 말하길, “범숙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춥게 지낸단 말인가.” 하고는 명주 솜옷을 입혀 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사기』「범수열전(范睢列傳)」 위수 가의 노인이 ... 통하였네 : 위수가의 노인이란 은나라 때의 강태공(姜太公)일고 불리는 여상(呂尙)을 가리킨다. 그가 나이 80세에 위수 가에서 낚시질하다가 나중에 문왕이 된 서백(西伯)을 만났다는 고사를 두고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