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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11월 7일 / _ / 壬戌
제 목 백낙천의 시에 차운하다
날 씨 눈이 오는데다 매우 춥고 바람까지 불었다.
내 용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 상경과 『서경』 4권을 읽었다. 당나라 사람의 시를 보다가 백낙천(白樂天)이 회포를 적은 시에,

길흉화복은 까닭이 있어 오는 것이니
그 까닭을 깊이 알되 근심하지 말아라
불길이 윤택한 집을 태우는 것은 보았으나
풍랑이 빈 배를 뒤집었다는 말은 못 들었다네
명예는 공번된 것이니 많이 가지지 말며
이익은 몸을 망치는 것이라 구하지 않아야 하리
다만 박과 달라 먹지 않기 어렵지만
대강 만족하게 알고 그만 둠이 어떠랴
라고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내가 이 시를 차운하노라.

막힌 것을 푸는 것은 하늘이지 내가 할 것 아니니
편안히 받아들일 뿐 근심하지 말아야하리
잠시 금곡에서 부호를 누린다 해도
천년의 높은 풍모는 맥주(麥舟)에 있다네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도 세상에 이름 남기니
반산재 우뚝하여도 복은 구하지도 않았지
가련하게도 속세에서 남에게 굽신거리는 자들은
이리저리 세상일에 빠져 잠시 쉬지 못하네
밤에 글을 외웠다.

이미지

원문

七日
雪, 且酷寒而風。 晨 梳, 誦上經四卷。 觀人詩, 至樂天書懷篇曰,
吉凶禍福有來由 但欲深知不欲憂 只見火光燒潤屋 未聞風浪覆虛舟
名惟公器無多取 利是身灾合小求 唯異匏瓜難不食 大都知足便宜休
此眞至論也。 予當次之。
通塞由天不自由 只宜安受勿宜憂 片時豪富唉金谷 千載高風有麥舟
一釣竿垂名滿世 半山齋屹福無求 堪憐俗下夸毗子 汨汨營營未暫休
夜誦。

주석

백낙천(白樂天)이 회포를 적은 시 : 백낙천(772-846)은 당(唐)나라 때 시인으로 본명은 거이(居易)이며, 낙천은 그의 자다. 본문에 인용된 시는 「감흥(感興)」이라는 제목의 두 수 중 한 수이다. 금곡(金谷) : 금곡은 진(晉)나라 부호(富豪) 석숭(石崇)의 원(園)이름인데, 석숭이 “손님을 위해 팥죽을 대접하면서 한 번 호흡하는 사이에 마련하게 하였다.〔爲客作豆粥 咄嗟便辦〕”는 기록이 『진서(晉書)』 권33〈석숭열전(石崇列傳)〉에 보인다. 맥주(麥舟) : 맥주는 ‘보리를 실은 배’라는 뜻이다. 송(宋)나라 때 범중엄(范仲淹)이 아들 범순인(范純仁)을 고소(姑蘇)로 보내 보리 500곡(斛)을 배로 싣고 오게 했는데, 범순인이 도중에 장례비용이 없어 곤경에 처한 아버지의 벗 석만경(石曼卿)을 만나 보리를 실은 배를 주고 오자 범중엄이 흡족해하였다 한다. 『냉재야화(冷齊夜話)』 권10 낚시대 ... 이름 남기니 : 송(宋) 나라 대복고(戴復古)가 후한(後漢)의 은사(隱士) 엄자릉(嚴子陵)의 고사를 소재로 읊은 시 ‘조대(釣臺)’에, “어떤 일에도 욕심 없이 오직 하나의 낚싯대뿐, 삼공의 자리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고 말고. 평소 광무제를 잘못 알고 지낸 탓에, 세상 가득 허명을 야기했을 뿐이라오.[萬事無心一釣竿 三公不換此江山 平生誤識劉文叔 惹起虛名滿世間]”라는 내용이 나온다. 『석병시집(石屛詩集)』 권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