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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10월 21일 / _ / 壬戌
제 목 조해악에게 편지쓰다
날 씨 비가 닭이 울 때부터 내리더니 아침에 그쳤다가 다시 내렸다. 종일 구름이 잔뜩 끼었다.
내 용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외웠다. 조해악(趙海嶽)에게 드리는 편지.천지가 내친 촌사람으로 임자도에 와 있는 죄인 김 아무개는 해악 선생 안전에 삼가 편지를 드립니다.삼가 들으니, 이곳은 바로 선생께서 거쳐 가셨던 혜주(惠州)로, 남은 향기가 이 바다지방에 서기로 뭉쳐있고 힐향(肸蠁:명성)이 무성하며, 남기신 작품은 남쪽 지방 사람들의 상자에 보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옛 사람들의 말에, ‘현인이 지나간 땅에는 산천초목이 모두 정채(精采)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 이를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날마다 창주옹(滄洲翁)의 후손들과 함께 노닐다가, 선생께서 손수 쓰신 묵적(墨蹟)인 소첩자로 된 시문 한두 장을 얻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른바 ‘한 조각 무늬로 칠무(七霧)의 무늬를 알 수 있으며 한 조각 삶은 고기로도 아홉 솥에 있는 고기 맛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손을 씻고 향을 사르고 몇 번이고 다시 살펴보니 이는 결단코 속세의 사람 기운이 아니라 분명히 소동파의 골수(骨髓)였습니다. 반달이 있는 가을과 같이 정채롭고 신비함은 완미하면 즐겁게 되고, 즐기다보면 그 맛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마음과 정신이 작품 속으로 달려가기를 마치 목마르고 굶주린 것 같이 하였으나 그 경지를 거슬러 올라갈 방법이 없어 다만 망양지탄(望洋之嘆)을 할 뿐이었습니다.비록 그러하기는 합니다만, 사람이 서로 계합(契合)하는 것은 마음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지 반드시 얼굴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진대, 어찌 꼭 대면하는데 급급하겠습니까? 청컨대, 지금부터 계속하여 영원히 천리 멀리 떨어져 있으나 정신적으로 교분을 맺는다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 이니, 이 어찌 천만 다행함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한스러운 것은, 함께 한 세상을 살면서 흰머리가 분분하고 늙어 머리가 다 빠지는 지경까지 이른 지금에야 겨우 후대의 자운(子雲)이요 오늘의 한유(韓愈)로 문장과 풍도를 크게 떨치는 명성이 선생 같은 분이 계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심하도다. 바닷가에 사는 변변치 못한 사람의 고루하고 견문 없음이여. 즉시 책심문(責沈文) 한 편을 지어서 기어가서라도 찾아뵙고 사례(謝禮)해야 마음에 족하겠으나 죄를 지어 갇혀있으니 어찌하겠습니까? 갇혀있음이 비록 지극히 황송하오나, 만일 이러한 복역이 없었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끝내 선생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역이 어찌 복이 아니라고 알겠습니까? 방옹(放翁)의 시에, ‘가을 터럭[秋毫]도 임금이 내리지 않은 것이 있는가?’라고 하였지요. 아아, 가을 터럭 하나에도 오히려 느낌이 이러할 진대, 하물며 대방가(大方家)이며 대맹주(大盟主)로 뇌뢰낙락(磊磊落落)한 호걸의 선비를 알게 된 것이겠습니까? 이에 이 복역의 소득이 적지 않음을 더욱 알게 됩니다. 성상께서 내려주심은 무엇이든지 넉넉하지 않음이 없습니다.아아, 선생께서는 옥을 품고 계시면서도 갈 길을 벗어나 이 좁은 곳으로 흘러 와 계시게 되어, 한 번도 그 훌륭한 재능을 펴보지 못하고 말아 간직하고 자신을 숨기셨습니다. 큰 이름과 성가(聲價)를 당세에 화려하게 떨치지 못하시고 도리어 굽어 속세의 악착같은 절구질에 욕을 당하셨으며, 뭇 여자들이 미인을 시기하고 잡초가 유란(幽蘭)을 질투하여 강가나 바닷가에서 말라서 초췌하게 만들어 끝내는 궁핍하여 존재할 수 없도록 하였으니, 양식 있는 이들의 눈물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나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하늘에 달린 일이요, 이롭고 이롭지 않음은 때에 달린 일이니 어찌 족히 가는 길에 손익이 되겠습니까? 저 또한 굴원을 애도하는 사람입니다. 지난 9월 초에 고매하신 선생께서 지나가셨던 곳으로 뒤따라 왔습니다만, 죄는 산처럼 큰데 문장과 학식은 아주 형편없어서 마침내 아직도 향기가 남아있는 산수와 향내 나는 수풀 언덕이 욕되게 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탄식할 만합니다.이에 옛 사람을 사모하여 편지로서 집지(執贄)하는 의리로 삼아, 감히 황당하고 잡스러운 말로 우러러 얼음 병과 물과 거울처럼 깨끗한 선생을 더럽힙니다. 바라건대 허수(虛受)하시는 성대한 도량으로 만일 비루하다고 멀리 버리지 않으시고 특별히 ‘천지방창 해연기생(天池放傖 海(田+耎)寄生)’이라는 8자를 큰 글씨로 써 주시어 저의 집을 화사하게 하고 그 면모가 빛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신다면 매화의 향기와 대나무의 절개, 난초와 향초의 향기가 마음을 허락하는 이웃에게 사방으로 퍼져, 귀양 온 사람을 넉넉하게 하여 그 신묘한 솜씨를 전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론 푸른 갈대에 흰 이슬이 내리는 감회를 위로하시고, 한편으로는 봉래(蓬萊) 낭풍(閬風)의 인연을 이어주신다면 하늘이 내리는 행운이며 행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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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一日
雨自鷄鳴更作 朝止, 仍復密雲終日 晨 梳, 誦 寄贈趙海士岳書。 天地放傖 荏子島累人謹控海士嶽先生詞案下。 竊聞此地 乃先生經過惠州也。 遺薌剩馥 凝瑞海國 肸蠁穠郁 留作南服人篋笥琬琰矣。 古人有言曰 賢人所過之地 山川草木 皆有精采, 其斯之謂乎。 日與滄洲翁雲仍遊 得先生手墨 小帖子 詩文一二㢧, 觀正 所謂片斑, 可以知七霧之文 一臠 可以知九鼎之味者也。 盥手(爇火)薌 璧拱圭復 斷非煙火人口氣 而分明是百坡翁骨髓。 半輪秋精神 玩而爲樂 樂而忘味 神迬心馳 如渴如飢 溯洄從之末由也已, 只切 望洋之歎而已。 雖然 人之交契 以心不以面, 又何必汲汲乎面哉? 請繼自今永托千里神交 則庶幾不虛過一生矣, 豈不萬幸? 第恨生幷一世 至白紛紛老禿頭 而今却纔䎹得了 當今有後子雲韓愈 丕振文章樹風 聲如先生者, 甚矣, 海(田+耎)鯫生之固陋無聞也。 卽欲足責沈文一篇 匍匐晉謝 而其於縲絏 何? 縲絏雖極悚惶 而倘無是役 幾乎沒齒 而終不得聞也, 然則是役也 安知非福也? 放翁詩曰 秋豪何者非君賜, 噫 秋豪猶感 矧矣得大方家 大盟主 落落磊磊 豪杰士乎? 於是乎益覺是役之所得不貲 聖上攸賜 無往而不優優如也。 嗟乎, 先生懷瑾抱瑜而倀倀棲屑於窄窄小區宇 未能一售其利器而券藏韜晦 大名長価 不得振耀乎當世 顧乃屈而辱之於塵冗齷齪之臼 衆女妬蛾眉 菉葹嫉幽蘭 使之槁枯憔悴於江潭海島之濆 而畢竟窮乏不能存 可耐有識之淚哉? 然遇不遇天也 利不利時也 何足損益於道哉? 某也亦弔屈原人耳。 去九月之初 追躡高人轍迹 但罪辜如山而文識蔑毫 遂使留香之泉石 流芳之林皐 未免羞辱之歸, 是可嘆咄。 用慕古人以書爲贄之義 敢以荒唐蕕醜之說 仰塵冰壺水鑑之下, 幸望以虛受之盛量 倘不以鄙卑而遐遺之 特惠天池放傖海(田+耎)寄生八大字 侈我室而光其顔, 梅竹香節 蘭蕙四芳 衿期鄰富遷客而傳其神 一以慰蒼葭白露之懷 一以注蓬萊閬風之緣 天天幸幸。

주석

조해악(趙海嶽) : 앞에 나온 조희룡을 가리킨다. 혜주(惠州) : 중국의 지명으로, 송 나라 소식(蘇軾)이 왕안석(王安石)의 화를 당하여 그곳으로 귀양 간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귀양살이하는 곳을 흔히 혜주라 한다. 창주옹(滄洲翁)의 후손들 : 찬주는 물가의 수려한 경치를 뜻하는 말인데, 남조 제(南朝齊)의 시인 사조(謝朓)가 선성 태수(宣城太守)로 나가서 창주의 정취를 마음껏 누렸던 고사가 유명하다. 여기서도 자신이 있는 곳의 수려한 경치를 지칭하는 말이다. 자운(子雲) :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인 양웅(揚雄)의 자(字)다. 박학 다재(博學多才)하여 『태현경(太玄經)』을 지었으며, 『논어』를 본따 『법언(法言)』13편을 지었다. 한유(韓愈) : 당(唐)의 사상가이며 문장가로 자(字)는 퇴지(退之)이다. 유학(儒學)을 옹호하고 불교를 배척하였으며,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을 위주로 하던 당시의 문풍(文風)을 바로잡고 고문(古文)을 제창하여,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책침문(責沈文) : 섭공 침(葉公沈)이 공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자로(子路)에게 물은 고사(故事)가 있는데, 송(宋) 나라 진형중(陳瑩中)이 정명도(程明道)를 알지 못하고 범순부(范淳夫)에게 물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어 책침문(責沈文)을 지었다. 즉 당시의 현자를 알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비유로 쓰인다. 방옹(放翁) : 남송 때의 시인인 육유(陸游)의 호이다. 뇌뢰락락(磊磊落落) : 뜻이 고상하고 원대하여 잗단 일에 구애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옥을 품고 :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인물들을 말한다. 『초사(楚辭)』 권4 9장 「회사(懷沙)」에, “옷 속에 옥을 품고 손에 옥 지녔어도 고달픈 상태에서 보여 줄 길 전혀 없네.[懷瑾握瑜兮 窮不知所示]”라 하였다. 저 또한 ... 사람입니다. : 굴원은 초(楚)나라의 충신으로 모함을 받아 상수(湘水)가로 귀양을 가서 물에 빠져 죽었다. 한(漢) 나라 때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였던 가의(賈誼)가 또한 모함을 받고 쫓겨난 뒤 상수를 건널 때 백여 년 전 멱라(汨羅)에 빠져 죽은 굴원을 애도하면서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은 것이 유명하다. 여기서는 자신도 억울하게 귀양살이하고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푸른 ... 감회 : 사람을 구하고자 하나 얻을 수 없다는 뜻으로, 『시경(詩經)』 「진풍(秦風)」(겸가(蒹葭))에, “갈대가 푸르니 흰 이슬이 비로소 서리가 되었구나.(蒹葭蒼蒼 白露爲霜 )”라고 한 데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는 상대방과 사귀고 싶어하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나타낸 말이다. 봉래(蓬萊) 낭풍(閬風)의 인연 : 봉래산은 바다에 있는 신선이 산다는 산이고, 낭풍은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는 역시 신선이 산다는 곳이다. 여기서는 상대방과 자신을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