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간정일록(艱貞日錄) > 1권 > 1862년 > 6월 >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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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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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6월 4일 / _ / 壬戌
제 목 이인명이 나를 잡아오라 하다
날 씨 _
내 용
어사(御史) 이인명(李寅命)이 간사한 아전들의 모함으로 좌복(左腹)에 들어 진주의 진교(鎭校)들을 보내 나를 잡아오게 하였다. 창졸간이라 장정들이 부족하여 내려가지 못하였다. 정언은 어둠을 무릅쓰고 먼저 갔다.

이미지

원문

初四日
御史李寅命 以姦胥胥讒入于左腹, 送晉州鎭校推捉 倉猝乏丁 未克下去。 正言冒昏先去。

주석

이인명(李寅命) : 1819~?.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기영(祈永)이다. 1858년(철종9)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62년 경상우도 암행어사로 나갔다. 그 후 여러 청환직을 거쳐 이조 판서와 예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복제의 개혁으로 소매의 폭을 줄인 척수의를 입으라는 영에 반대상소를 했다가 만경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좌복(左腹)에 들어 : 어진 사람을 해치기 위하여 간사한 말로 참소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명이괘(明夷卦) 」육사효(六四爻)의 상(象)에 이르기를, “왼쪽 배로 들어감은 마음과 뜻을 얻은 것이다.[入于左腹 獲心意也]” 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전(傳)에 이르기를, “왼쪽 배로 들어갔다는 것은 사벽(邪僻)한 길로 군주에게 들어가서 그 마음과 뜻을 얻음을 이른다.”고 하였다. 여기서는 참언에 걸려든 것을 말한다. 정언 : 김인섭(1827~1903)을 말함. 김인섭의 자는 성부, 호 단계, 모 죽산 박씨, 1846년 대과 급제, 1852년 사간원정언에 임명, 1863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