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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일수록(客日隨錄)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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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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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서-일기
내용분류: 개인-생활-일기
작성주체 류기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작성시기 1870
형태사항 크기: 24.7 X 17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1책 62면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객일수록(客日隨錄)
『객일수록(客日隨錄)』은 전주 류씨(全州柳氏) 문중의 류기호(柳基鎬,)가 쓴 필사본 형태의 일기이다. 흥선대원군의 사액서원 훼철 정책 시행으로 훼철된 안동시 풍산읍에 있던 임천서원(臨川書院)의 복설(復設)을 위해 사액(賜額)을 요구하는 상소 인원이 되어 서울에 왕래한 일과 그로 인해 유배를 당한 일을 기록하였다. 류기호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보(鞏甫), 호는 석은(石隱)이며, 부는 류치효(柳致孝), 조는 수정재(壽靜齋) 류정문(柳鼎文)이다. 안동의 전주 류씨 세거지인 박곡(朴谷)에서 생장했고 임천서원 복설의 상소로 관동의 김화(金化)로 유배를 갔다가 그 후에 다시 평안도 선천(宣川)으로 유배를 당해 그곳에서 전염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류기호(柳基鎬, 1823∼1886)1870년 윤10월 15일부터 1871년 1월 15일까지 임천서원(臨川書院) 사액 상소 사건의 전말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자료
개괄
『객일수록(客日隨錄)』은 전주 류씨(全州柳氏) 문중의 류기호(柳基鎬, 1823∼1886)가 쓴 필사본 형태의 일기이다. 총 62면의 필사본이다. 표지는 누락되었으나 내용 첫 면에 "客日隨錄"이라는 제목을 찾아 볼 수 있다.
일기 내용은 1870년 윤10월 15일과 1870년 11월 1일에서 1871년 1월 15일까지인데, 그 중에서 1870년 11월 3일과 12월3일에서 9일까지 총 8일 간의 기사는 누락되었다. 맨 앞의 서문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이 이미 사액서원 훼철 정책 시행으로 훼철된 안동시 풍산읍에 있던 임천서원(臨川書院)의 복설(復設)을 위해 사액(賜額)을 요청하는 상소 인원이 서울에 왕래한 일과 그로 인해 유배를 당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기록의 마지막 한 면은 앞에서 이미 기록된 내용의 중복 기록되어 있다.
작자 소개
류기호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보(鞏甫), 호는 석은(石隱), 석사(石舍), 석산노은(石山老隱)이다. 부는 류치효(柳致孝)이고 조는 수정재(壽靜齋) 류정문(柳鼎文)이다. 19세기 경상도 안동의 전주 류씨 세거지인 박곡(朴谷)의 문헌의 집안에서 생장했고 임천서원 복설의 상소로 관동의 김화(金化)로 유배를 갔다가 그 후에 다시 평안도 선천(宣川)으로 유배를 당해 그곳에서 전염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긍암(肯庵) 이돈우(李敦禹), 정촌(靜村) 이문직(李文稷)과 서로 믿고 의지하며 지냈고, 도산(道山) 윤최식(尹最植),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분계(賁溪) 김진성(金鎭誠), 평천(平泉) 이집(李(王+集)), 암후(巖后) 이만각(李晩慤),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과 가까이 지냈다. 류기호의 사문(師門)을 위한 정성과 인품은 본 일기에서 알 수 있다.
상세 내용
서문에서는 이 행차의 원인을 설명했는데 1870년 8월 17일에 안동에서 도회(道會)를 가지고서 사액을 청할 것을 결의하여 11월 3일에 서울로 출발할 것을 결의한 사항과 청액의 타당성을 진술하였다. 1870년 윤10월 15일 일기에서 상소 인원 12명에 자신이 참가하였음을 적었고, 11월 2일에 임천서원으로 가서 상소일행을 만나 11월 4일 서울로 출발하였다. 11월 13일에는 이감리(梨甘里)에서 하향하는 이돈우(李敦禹)를 만났으며, 11월 17일 서울 반촌(泮村)에 들어갔다. 11월 18일 다시 상경한 이돈우를 만나 그를 통해 흥선대원군의 극도로 거부하는 태도를 전해 들었다. 11월 20일 대원군이 보낸 하인을 통해 협박을 받았으며 11월 21일 군인들에게 내쫓겼다. 11월 22일 상경했던 14인 전원이 정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11월 23일 동문으로 나와 하향하여 12월 2일 귀가하였다. 12월 15일 안동부 관아에서 형을 받고 12월 18일 집을 떠나 배소로 향하여 1871년 1월 7일 김화(金化)에 도착하였고 1월 8일 배소에 머물게 되었다. 1월 15일은 정월대보름으로 배소에서의 감회를 적고 있다.
이 일기는 정사(正史)에서 찾아 볼 수 없는 19세기 후반 안동 일대 유림들에게서 시작된 임천서원 청액(請額) 사건의 본말을 제공하는 1차 사료로서 매우 큰 가치가 있다. 또한 유배의 과정에서 기술된 풍토와 일화들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하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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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객일수록(客日隨錄)
客日隨錄。
庚午夏。以臨川書院請復儒疏事。自虎溪發論。定鄕會於豪巖。一鄕老成。趁期齊會。爲定道會於花府。發文告日於道內。八月某甲【十七日辛亥】也。鄕道儒會員。頗不零星。開坐于崇報堂。議定可否。一齊以爲書院被毁之後。爲後學報答先賢嘉惠之道。所當不避斧鉞。冒死呼籲於國門之外。幸而誠格天心。蒙使復設。則斯文未欲終喪之慶也。如其不然。蒙被桁楊嶺海之譴。猶爲有歸拜地下先賢之顔。而朝令旣以未額定限。一例嚴斷。無所存拔。故至今日吾輩之罪伏屛息。不敢生一番叫閽之意者。蓋以無所據依措辭。可爲朝家回悟商量之端故也。而今此臨川。則亦以未額見毁。而甲子請額疏擧。雖未得入請。而當請則京鄕之所共知也。雖尙在未額。而當額則朝家之所下燭也。且吾先生一體於厓爺寒旅。爲四先生。幷稱於通國者也。士林之尊衛。朝家之崇報。無所差間。而今乃三先生主院。則皆以額院。象設依舊。薦享隨節。而獨我臨川。特以儒林之事力不逮。後學之誠意未格。不得蒙一板寶額於堂楣之上。以致今日之混入破毁。則莫非吾儕後生之罪。然若自朝廷之上。俯悉此等曲折寃鬱。則又豈無下燭商處之典。有出於尋常者哉。又以爲未額故見撤。則當先請額而後復設。爲事體之正。於是以請額事整頓。遂爬定疏任具員。定發行日於至月初三。而發文徧告。約以雨雪風寒。亦不可停退云云。罷歸。

閏十月
望。
自臨川有小集。議以事力有不可多員上去之勢。抄定錄下十二人。辦送資斧。余亦入抄中。念以若多病不健之身。深冬千里之役。决非可堪。而素定蓋於此事有不欲後人之志。且見京鄕間往往有風聲所沮之論。若又自吾家人有辭免之事。則有係於進退之機。遂决意爲隨行之計。 十一月
初一日。
伯從叔父。以本院首席。前期發旆。爲餞行赴會。 初二日。
余亦裝發。歷宿川前金純若。粤明三日。俟金正伯。同赴臨川。日暮抵到。風寒觸烈。不能定神。而夾舍無可就便。可悶。遠近士林老少。爲餞送來會者百餘員。而疏儒來到者張九鳳李{王+集}李晩協金養鎭金秀洛及余。而金獻洛以本孫主行者也。酉海及榮醴義城儒生。約以經會於尙州地云。疏首丈行次。昏後來臨。氣力神觀。無異强少。會中皆賀相慶。李贊燾以陪行來。沙村査兄亦爲餞行委來。可欣。夕食後基鎬進于席末曰。今日之擧。只爲我儒林後學之所當爲者而已。在天之成否。何可必。自己之禍福。何可計也。竊慮夫入泮之日。或不免爲恐動風色所挫沮。則不如預自停止之爲不貽士林之羞乎。皆曰。非所慮也。今日吾輩。無論去者送者。一箇斷胸之義。俱有所不可奪者。則豈不爲恃而增助士氣之資耶。首位丈曰。此言亦不可無講定於發��之初。然吾亦料度來頭多小事機。委納此身於臨川一事。外更無可顧忌動心之物如是而已。諸君亦勉之。敬拜而退。各處疏草。皆入來。爲設廳後。擇寫入行篋。 初四日。
午後始發行。拜辭從叔父。承勉謹愼含容。珮膺敢忘。聯轡出郊。行數里。回見。繚垣廢墟。長少佇望以送。行邁黍離之嘆。正不堪。於斜陽江皐。相與作悵而行。行二十里。宿素山店。店舍寒貧。艱苦經宵。初發。甚非佳兆。笑嘆。 初五日。
雪意滿天。促裝早發。到烏川津。雪下如覆。須臾盈寸。沒馬足。不得行。艱到京津午炊。雪仍不霽。遂止宿。 初六日。
快晴。而滿地丈雪。行路不通。觱發風威。掀動屋樹。决不可作行。晩後諸議。以爲山陽四十里。午前可達。寸寸前進看。如何。遂戒裝出行。行十餘里。風勢漸大。飛雪搏面入懷袖。不可堪。念首位丈氣力雖康健。而老人陪奉之道。斷不可犯冒如此風寒。請止留。不許。期至陽縣。日暮始抵。分入各村。余與正伯叔獻。入保村贊夫家。夜話甚適。足忘觸冒之勞。 初七日。
寒事不止。而風聲少靜。食後。仲賢陪首位丈來到。諸行皆直就大路。往幽谷驛相會云。午後發保村。贊夫爲餞送嶺下偕發。蓋入於疏錄者。夜間被一行要速。而牽於家間挽止。不能效誠。深恨不安。爲盡境別送計也。暮抵幽谷。先行已定館以待。而酉海榮義諸行。皆追及於昨日縣村。偕行先至。欣敍可言。館夾難容。叔獻更定隣店。稍寬。故余與正伯。就便往宿。 初八日。
雪兆集霰。朝食。不發行。俄又暫霽。始登道。纔行五里許。暴雪如拳花。不辨咫尺。促鞭。無店。冒行入新垣。止宿。修整疏錄。蓋酉谷掌議丈有故。以代行來。不可不以行中人升次耳。 初九日。
雪晴。而風寒尤甚。於京津。日請留止。而首位丈又不許。令小進。不得已發行。大風掃雪。盡積于路。馬腹沒陷。騎坐極危。下步。又無道。艱到陣浦橋頭店。少憩。勸贊夫歸程。別悵殊甚。又前進。歷聞慶邑。抵草谷。止宿。 初十日。
風寒猶猛烈。舍馬步行。首位丈出貰轎軍踰嶺。午炊于安保。暮抵水回里。店樣蕭索。無可容人馬之家。分入步行幕。艱宿。 十一日。
早發。到有酒店。又遇雪冒行。入月川驛。午炊。候少霽登程。昏後入大秋院。歷路薪貴。到處無可得燠突。是夜又不免寒苦而過。可嘆。 十二日。
午站于毛頭院。宿困地店。取溫室。同枕于姊兄。所占窄挾不解衣。卽一苦狀耳。 十三日。
早發。午炊碑立郊。見有一乞人。受逐於店主。問之則言。珍山人。受貰。負官家封物來納。歸路無一分錢。不得食。凍死外無策。噫。浚民膏。剝民血。使渠背負納于千里之外。而又不優其資。使之凍餒於路傍。豈非可憐耶。收一行餘飯。餽之而送。未知如何生致也。可惻。暮到梨甘里。覓館上下之際。聞嶺南堂上行次。入上店。往見之。乃湖上令監也。欣喜何極耶。首位丈情意。尤何如耶。寒暄外略聞時象物情。果是所料之不差。湖令欲與之偕歸。一行俱笑曰。是豈再敎之言乎。遂無此等酬酢。而退處各館。夜後進候。又承實記事。大非在鄕所聞所慮。蓋院君待接湖丈。特出尋常。爵以榮之。衣以厚之。而於實記。則發燒板關文。而已下去嶺營云。令人失圖。略貢愚見。所恨而又何及也。令監欲回程入京。告以止之。 十四日。
朝起。進候湖丈館。退寫家書數字。付侍人。食後發送湖丈。因背路作行。午入盤亭族人家。暫間悅話。亦足慰積阻之情。仲賢同入。餘行止後店餵馬。午占後發行。出郊。後行已先數里。追到於金陽市。日已暮矣。問店。無可宿處。乘月上貞谷店。又無可容。艱誘步行幕。宿止。 十五日。
將發。聞尹士善生家所在之里。不過二十里。意士善或過祥祭。留止未歸。則不可惜迂路之勞。以失一面弔之便。乃先發。還向昨日歷來路三數里。忽疑士善若已還寓。則空然落後於前行而已。道上三思。不得已回馬。爲戞過之策。而悵恨則深。追及同行。未發。偕行。到龍仁邑。乃士善故土也。聞其去住於店人。則適其奴屬也。詳言。方在邑後谷尹藥山宅。不過五里地。乃約同行所宿站而爲追到計。因騎馬覓向邑北。善休兄亦偕之。及到入藥山宅。則主人出迎。甚雅恭。入見。案上舒孟子。知方讀未及捲也。相修禮後。詢士善行住。則謂言。俄間上去族人家十里地。深悵未卽相握。要之。可◘(遣)於日內。善休還去邑路爲偕前行。余則別主人。主人請與士善丈來宿其家云云。其端恭。似有士善風。未知非曾所受敎者耶。謝以直就山遙。不可復尋之意。因循谷行十里。窮源山腰。卽有所謂尹文義家。問知尋入。未及閭。望見山麓。有拜墳人。其行步拜跪。遠見可知爲士善。忙步及於山下。相弔訖。前導入其族家。主人老少。欣迎之狀。可見其見重。余亦隨入坐定。士善歷問面面安否成就。至及於淵楫。長進幾何。其眷眷於吾黨如是。豈非可恃者耶。主人卽今靑松倅之伯兄云。而爲士善挽留余行。士善亦深欲一宵論討。而行事不可遲滯。過後於前行。不得已告別。士善送至山回處。指路而分。悵不可言。行谷路數里。登一峴。則可通望弓安坪。促鞭下山。行橫路四五里。入大路。至弓安。一行已定所入處矣。得修好箇人事。不失前去同行。甚覺妙好耳。夜適逢安東邑商。修付家書。 十六日。
發弓安。諸議入城日不可犯暮。約以抵宿馬粥郊。明日渡江。故到馬粥郊。日高入宿。 十七日。
發行。到西氷津。江氷坦路。見薪駄數十一時渡去。堅合無慮。然人馬俱入。亦非涉危之道。送馬就下路。因就直路。橫渡。雪覆。不見其淸澈深底。差可耳。由南門。聯鏕入泮。未及磚峴。而於弘化門前。見從兄主轎行。下馬執手相欣。一行俱下握敍。因共還入。蓋有小出入而回程也。送諸行去陪首位定館。而吾則歷入磚峴。拜候金山叔主。伏見神衛。不甚癃削。欣幸欣幸。因入泮。首位丈已定頓於主人家。諸人皆不●(可)各就館。爲陪處一家。而雖設廳前。疏下不得散處。或出入事條約。然以余從兄弟。久離相會。許使宿食則同處矣。夕後。自坊外來者云。臨川疏儒上來之言。已播於鐘街。可怪其神速傳出耳。夜後。退自疏廳。從兄弟聯枕敍情。可樂。而但許多家事之有憂慮可誦者。還不免擾惱旅懷。悚嘆。 十八日。
早起。進候於疏首。千里冒風驅馳之餘。寢饍不減。早興洗盥。已整衣冠。退與諸人相賀。欽嘆不已。疏下幷進首位前。略稟設廳事。下敎以稍俟路憊解休及行擾少定。如何。此事。蓋不可玩揭顧望。又不必忙急擧措。諸儒皆曰。至當。乃定議以二十一日開坐發館通。請謹悉出揭疏錄。因始寫疏。無論謹悉得請與否。期以疏寫畢成之日爲伏閤之道。更不移易云云。泮中知舊來見者。姜承旨夏奎李參議晩運金承旨錫輔李直長【漆谷】及吾渭陽而已。從兄。無異疏儒。終日同處。金山叔主。逐日往來。氣力之强。尤可幸耳。午間。往候渭陽。金承旨丈適在坐。語及疏事。末梢雖未知如何。而禍福間。不可無此擧。余曰。在鄕時所聞。則如令監。諸公之前。不料聞此等議論。今知世上亦有所見之言。金丈笑曰。擧世只皆爲時象所壓。不得已爲持重之議。而此亦爲疏儒未上來之事。今此上來之後。則夫孰曰。不緊哉。渭陽曰。但慮抱疏。不敢踰磚峴。然第看下回如何。只修吾當爲者而已。可也。夕時。湖上令監入來。擧坐驚倒出迎曰。何故也。坐定言。自梨甘發去之日。到龍山洞。見嶺人之目見燒板關下去者。詳聞關辭。無意下去。卽爲回程上來。今朝後。直入雲宮。懇告。無變通。只曰。太白山梓板。永無乎。雖明年追刊。吾不干矣。此外更無可煩云云。方竦然退坐之際。韓參判敦源在坐。顧坐中一武官曰。昨日南門內。嶺儒數十餘員。齊馬首入來。或知爲何事耶。武官不知爲答。蓋韓參判已知之。而爲挑探計也。大院君曰。嶺儒有何事而上來。驚怪。小間問湖上令監曰。令或知之否。以何爲而來也。湖令曰。小人知之矣。爲臨川請額事伏閤上疏計也。曰。臨川書院不入毁撤中耶。答曰。毁撤。故儒生等願請蒙額。以爲復設之地也。卽曰。嶺南之漢。不知倫紀者也。吾爲毁撤之事。而訴寃於上監。則是間我父子也。當析鶴膝云云。伏恨湖令●(恨)不能明其言曰。大監毁撤。故上疏於上監者也。大監與上監。其非一體之地乎。豈爲間於其間哉。因歷告鶴爺。不可無主院之義及嶺儒抑鬱之輿情。則聽未姑置。豈不爲一場明快耶。嚴畏不敢言。伏嘆。院位因謂湖令曰。疏儒勸使下去也。是不可成之事也。吾生前不可移易之令也。必爲下送也。湖令曰。小人在鄕時。則同爲疏論之人。而及到京城。時議物論。有非鄕間所料。而所謂疏首。卽小人之再從弟。故累次折簡。極力禁止。而士論直遂。至此上來之境。小人下去時。相遇半途。勸之爲偕歸。而不得施行。今此嚴令之下。敢不退傳。諸儒當依敎宣令於疏儒云云。因下直作別而來。實記事。又無下落。中道回程之誠。何在耶。嘆恨嘆恨。疏首以下。承聞雲宮下去之令。皆曰。固所預料之事。伏閤以後處分。在天之事。固不用人力處。而伏閤以前。乃儒生誠力可爲之事。而又非自上必禁之擧。則豈可挫沮擾量於一令之下哉。於是或有急急設廳之議。蓋恐事機之別般層生。未及寫疏伏閤之前。更有沮止之端也。余謂凡事不可緩。而又不可激。況吾輩儒林之事。尤不可不鄭重。旣定日有設施之期。而今因外來風聞。又急急進定。有若故激者。然非做事之道。不以如是而退。不以如彼而進。只以吾所定算者。勿移易前却。是乃士氣之不可奪者也。如何僉議未爲不可也。夜間。以實記事會議。吾從兄弟。則以意謂。令監不可不更進。冒死爭之。則諸議皆以因下直。無更謁之體面。援止不可。至夜深。多方卞議。始定以明日更進爲計。從兄弟因歸館。枕上論多少事。或笑呵。或慨恨。底至更鼓旣盡。還亦浪費說話耳。 十九日。
修朝禮於首位所。食後湖丈入去雲宮。午間李參議出自雲宮。所傳又如昨日湖丈所當。亟令下送儒生等。蓋李令所處。進承下送之令。退不得見售於儒論。恒有愁悶之色。見亦難處耳。午後。湖丈出來。蓋進入候謁。則院位曰。不下去否。湖丈曰。昨日辭退入泮。終夜不能寐。實無保身歸鄕之意。院位曰。何其過言也。曰。小人身被恩寵於侍講之席。官至緋玉。無非大監之澤。而至承錦繡之榮。而乃不能免出其祖先行跡名譜於水火之中。其何顔歸拜於私家之廟乎。實記一帙之中。若果有一編相干於是非文字者。小人豈敢爲此苟保之計。上欺朝家處分之下哉。有所名高山誌。則小註傍邊六字爲一邊所不欲置者。如不得已。則揀拔此高山誌一編板。如令入燒。餘帙幸賜免全之恩。懇告移時。則院位亦有憐悶難堪色。因曰。歸議安東倅。使書報於我云云。則當有分揀之道。湖丈曰。願得一片下敎於本官城主。則可爲信跡。曰。昨日發關於營。今日書囑於官。非體面。以吾言而令監傳之。豈有不信之理乎。勿慮下去云云。如是而出聆來。如可無慮。急急託書於本官雇人發走。因治令監歸裝。以明早發旆爲計。令監辭退雲宮時。院位曰。疏儒終不下去耶。再從氏名銜云何。答以某云。曰。急急下送。可也。不爾。則無再從氏名字矣。首位聞之。笑曰。名字本非定謂。有何關於無。又自外入來傳聞。極其懍恐。而疏廳晏靜。無所動擾。只俟卄一爲設座之道。 二十日。
裝送湖丈行。轎軍見空。不得已以吾馬呈上。約以吾下去時。則從他求買以歸爲計。午後。齊會議。以爲旣以明日定設廳發文之期。則不可以所聞風聲。而沮退回遑。凡干諸具。不可不預料。廳則仍於此館。寫疏處以西上房爲所。寫疏儒則金耆永金養鎭。合手爲定。取其精筆也。疏紙以明早分付紙躔。擇品以來。而價不計高下云云。如是之際。大學籌司首僕。以大院君分付奉傳事。來現曰。大院位俄招小人分付曰。汝出去泮村嶺南疏廳。以吾言傳曰。何不下去也。若不下去。則其儒生皆十四人云。汝請一紙。書姓名居住。卽爲來納云云。故小人奉分付出來矣。下去與否。小人何以還告。院位分付之下。無敢以不可去拒逆。當以將下去爲告矣。首位丈曰。疏儒不去。而汝告以將下去。汝免欺罔之罪乎。往告曰。疏儒傳分付。則皆云惶悚無可白之言。姑無下去之意。不可以下去仰告。而如此嚴令之下。又不敢以抗告以不去。只悚黙無言云云。如是入告。可也。首僕曰。然則。書姓名出給。則當呈上於雲宮。乃使金養鎭列書。疏首以下姓名居住。而吾意。則依疏錄書某任某。爲明疏儒之不避冒威。而諸議皆謂不必爾也。遂書疏首李某。其下則儒生某某。年齒爲次書給矣。夕後。首僕以私來言。還告依疏廳所言。則分付問。疏儒果生㥘乎。告以皆有惶懍之貌云云。則曰。更以下去出言也而已。無他分付矣。 二十一日。
早起。往疏廳。蓋今日將設廳。而昨夕事機之後。不知有如何擧措。從兄弟偕至。方議處事。未決之際。門外呼喚亂擾。坐中已預料昨夕餘機。俄見紅衣書吏。無數攔入。揭持關紙。撓手妄呼。速起出速起出。見關辭。則更謄昨日所入姓名右十四儒。每名三四下隸。眼目逐出江外。使泮吏來告云。首位丈曰。到此光景。朝廷之辱儒極矣。不去何爲。吾輩之四五日。冒令留待者。意謂伏閤後處分如何。而待士之道。則不如是之賤辱矣。今乃有此敺逐之擧。則義不可暫留。況迫於勢。何可抗耶。乃分付書吏曰。嶺儒見逐。國家初有之事。爲儒被逐。而其可不去乎。朝食後。當束裝尋歸矣。書吏曰。院位分付之下。無暇食從容之事。出東門。買飯爲計。而卽卽起出。可矣。其風稜可笑。諸員始小加叱却。則猶是太學書吏及首僕使令。故亦不敢過爲無嚴。小退俟門外。而朝食適入。從容喫飯後。裝束出東門外。定館于東廟後旅店。蓋人馬。太半無區處。四求出貰。不可不留滯一兩日故耳。余則行事無策。不可不從兄弟相議。故落歸主館。爲辦備行裝明日出去計。 二十二日。
食後。爲告歸於渭陽。出司宰直所。到磚峴上。凡奴急走來呼還入來。疑有何事。回程入去。則坐上有一人。從兄曰。疏儒十四人。幷以正配酌定云。奈何。余笑曰。理始歸可矣。一國姑舍。以嶺南言之。幾百先輩。遭此禍厄於破碎埋瘞之中。而凡我後學儒林。尙今安寢甘食。無一人斷胸。受厄之事。其果天理之當然乎。十四儒一時流配。足爲歸報地下先賢之資矣。從兄亦笑而止。其在坐者曰。若有還收之命。則可無事。而不然。則必不免。余曰。不願還收也。儒林此禍已晩矣。何必望僥倖之免耶。因出去宰監。陪誨移日。語及朝間所聞。而具告從兄弟酬酢之言。渭陽始驚終笑曰。汝所樂就。何用憂嘆。然豈有是也云云。因拜辭而出送。至堂簾曰。好去。所聞雖果。看汝貌。無足爲懷耳。新宮移設後。始有京行。而姑未暇一出周覽。乃命僕牽驢。入闕門。西周行。至東門。略見宮墻之壯麗而來。暮歸館舍。從兄主倚窓苦待。蓋兄弟相逢於阻離之餘千里之外。謂可從容留處。以圖旬望團樂。而如是忙忽。明將別送。而又有所戒慮之端。故愁亂心緖。有不能自定。而又惜暫間離。出方步閭。才入坐矣。對共夕食。因談論古今事。援比相噫噓。竟夕不就寢。別離之愁。猶不入心矣。 二十三日。
裝發。馬則買疏廳上來時卜駄馬。而鈍庸爲不見售者也。出東門外。一行皆已理裝。或轎或貰馬。俱無慮於致身。而正伯所乘鬣。驚躍幾傷人。退之。行事無着落。權希直又不得馬。留後爲問馬。以明晨發行。追到爲約。一行先發。日已午矣。拜辭金山叔主及兄主。去留之悵。不可言。上馬就路松坡。到江。氷路甚危。艱渡。行至山城津店。止宿。行中。或落宿松坡。夜與元振兄。相對閒討。亦不妨穩靜耳。 二十四日。
爲後行遲待。食後諸行見到。而正伯亦已追及。蓋不惜費貰急求。故得快馬。晨發來到。已行三十里■(矣)。其捷敏可知。德韶馬病不得騎。老脚尤可悶。晩發。到山城洞口。逢李君範。路上暫面。略聞鄕間大都無事。可幸。午点于理川邑。暮抵楡亭店。止宿。權希直尙不追到。念慮不已耳。 二十五日。
日寒。不得早發。蓋留泮四五日。天氣稍解矣。自東門發行後。又連日寒緊。而去去益烈。實非尋常。可嘆。晩始發程。午炊于長後院。宿龍堂店。希直徒步見到。欣甚。 二十六日。
行數十里。又遇風雪。冒行渡河。蘇不能前進。而旅店無可宿處。留次首位行及從者數三員。餘員又小前。行三里。得小店。艱容經夜。 二十七日。
待後行。偕發。酉海行及新川下溪行。就竹嶺者。不遠將分路。預切悵恨。行幾里。未及北滄。企路送別。仲賢亦爲白洞人事歷修。伴北行而去。尤一悵嘆。行到北滄。氷路以日寒堅合■如陸地。可釋心渡。行過忠州。貫北南門歷來。而所謂新築城郭。令人可笑。空費民力。作此無足恃之役。又可嘆耳。首位丈爲覓見族人。就城西路。餘行就徑踰難峙。午站于新酒幕。首位行次追臨。偕發。適遇安東邑商。聞湖上令監無頉踰嶺之奇。幸何盡言。蓋自京城近四三數百里之路。一坂氷程。決非老人騎馬作行之道。所以仰慮之餘。得此信息。其喜可知也。行至水回村。去時所宿之店。又閉門。非徒無可宿之店。天陰無日。不辨日力之早暮。謂可抵安保。留元振待就坦。後行爲追來。余與德韶正伯。步行到谷遷未半。暝色已生。始悔不料妄行。然正所謂。進退維谷。漆夜顚倒之狀。決非險峽過行之時。艱到水安保。入店。冬衣汗霑透背。可知其受傷不少。謂後行不發於水回。而猶不知出送炬軍於中路。俄間果追到。首位丈扶人步行之事。尤深悚悶。由我前行之先導故也。 二十八日。
到小鳥嶺。轎軍連日舁行之餘。告以不能踰嶺。乃給行中馬夫錢戔。使之代換擔轎。無頉踰嶺。午炊于草谷。日已斜矣。促發。到昏後抵新垣店。止宿。 二十九日。
早發。至三郊。拜送首位行次前進。余及元振叔獻就徑入保村。贊夫又被願納推捉。入府不在。千里之行。舍坦就迂。爲渠一敍之樂。而巧此相違。亦係今行身數。嘆悵。夕食後戒裝燭行。越江橋。入鹿門。査兄幸在家。燈下驚倒。握手迎入。夜話甚穩。頓忘行勞耳。聞愚山客夕前來隣家。已傳吾輩見逐正配發關之報。蓋其方營躡後之計。故置步使於京邸。探信朝夕陸續。故如是速聞。査兄終夜憂嘆。余笑而應之。還疑强作。呵呵。 臘月
初一日。
晨發鹿門。午炊于烏川店。方發行之際。德韶來到。昨日三郊相分者。而陪首位。宿牛頭院。偕發分路於京津。就修中路人事而來。一夜相離之間。其欣如此。人情可怪耳。保村者亦追到。偕行。過豊山。已生暝色。而歸心矢急。犯昏作行。到頭率院。德韶■■就谷路。爲入家計。元振亦隨去。爲歷宿春坡也。余與正伯約叔獻宿其家。而叔獻轎行在後。不得俟。先行入栗里。夜已深。剝啄門外幾食頃。主家驚倒之狀。可想。外室廢冷。直入從姑母室。叔獻不久入來。戱話半夜。故作笑囮。蓋姑氏婦女之見爲獨子遠謫事。其不惱懷耶。欲解寬。不甚慽慽耳。聞日前已自河回聞此奇云。蓋花川又用愚山例。飛傳者也。可笑耳。 初二日。
朝起面上熱身縛寒。雪又大下。主人苦挽。而念病氣初發。猶可强行。且一日雪一日寒。乃今行神驗。明日若又大寒。則還不如今日冒雪之爲愈。食後拂衆發行。午憩新塘店。暮過川上。不得修村內人事。暫訪純若。行到忘川郊。馬上別正伯而來。至暮到家。家間姑不聞京便。不料歸期之若速也。其驚欣何如耶。大小家諸節皆安吉。尤幸萬萬耳。諸父主皆下臨。略誦始終及正配關下之事。下敎皆曰。儒林之光。而士禍大矣。可有辭於吾嶺百世矣。少無驚懍之敎。益信愚蒙之見。不大悖於門庭素訓耳。明日爲寃忌。而病無可與祭。尤愴恨耳。 初三日。
初三日以後至九日。在家調病。 十日。
朝前官隸持文帖來示。蓋以營關始到本官。而有此率來之令也。自京行還家之夕。仍苦感嗽。擁衾吟呻之餘。氣力難强。而念各處同人。應已趁赴。則以余遲滯留連。實所悚愧。且嫌於畏挫稱病。食後戒裝。偕川兄發行。而意謂勘了官簿後。配所發程。應有還家治行之暇。故不告別於家間。而行過忘川。聞正伯姑未發。傳喝約會於川前。而去訪純若。不在。暫見從侄女。歷謁進士戚祖。退話於正能戚叔所。座首丈從兄弟及村內某某丈聞行枉見。悚感難喩。正伯見到。因發偕行。午後入府。疏首丈及法興栗里諸人已入來。金溪則老少來會者十餘人。而諸被收人官令將廳拘囚。而首位子弟訴得主人保守。各在私館。配所自營門依刑曹關定來。而關辭則卽到付刑曹關內。大院位分付。嶺南儒生十四人以鶴峯書院復享上疏事。逗遛京師。未額書院毁撤之令。墨痕未乾。而敢此招朋引黨。冒寒上來。此等頑悖。不可不懲治。十四人幷行關其所在官。嚴刑一次。遠地正配云云。首位丈全羅道興德縣。金耆永泰仁。李{王+集}茂長。權光夏長城。張九鳳井邑。權冑煥孤山。李子長龍安。李炯在江原道安峽。李晩協高城。柳基鎬金化。金獻洛金城。金養鎭橫城。金秀洛洪川。李贊燾蔚珍云。余與正伯同處於鄭宗八家。溫突可賴調病。幸幸。 十一日。
季從叔父。自湖上來。無事留處。以酉海路稍間。姑未入來。官意待俱會施勘故也。始欲安適調攝。而被多人應接不暇。吟病自苦。實不堪耐。聞官家申飭刑具。至收來鎭營件云。可訝。初間所聞。謂言。此何可罪之事。只依令送配而已云。忽何變心。有此嚴設也。午間。季憲從。以注書兄主病問藥來。驚慮不可言。 十二日。
聞元直喪配之報。從叔父初欲觀刑推究結。而聞訃卽皈。湖上李始伯丈入來。蓋實記燒關事。自令監下來後。謂可無慮矣。日前營關。又依禮關。急急輸上燒板之意。來到。考禮關。日子乃令監辭退雲宮之第二日也。乃知當日酬酢指導。不過爲誘送湖令之意也。令監爲或有周旋。入見本官。則城主言。無可奈何。吾輩於華陽洞毁撤之時。左右幹旋。豈令監止也。齊進懇乞。豈令監已也。然猶竟不免。只輸納板子之外。更無他策。如有印冊善藏。更刊可也云云。而至於運板之費。則不爲責出。故令監不言而出去。又自下聞。官家出貰輸送云矣。昨夕發差。責出人牛於高山庫直處。星火急督。李丈爲此入來。欲呈訴爭免計。非爲惜費也。蓋自我背負。納于火中。尤所憤慟。然於納板。則不敢一言相爭。而乃於外面看之。則不過是錢財之事。所志陳寃。豈非可。吝耶。於是定議。以二十八兩。備入官庭。爲免禍之道。而憤嘆則不可言耳。午後。臨河川上諸老成入來。湖上令監又來臨。各面士林之來會時到過百餘員云。夜深後。酉海兩行見到。可幸。決勘之速。而無論人我千里之役。路憊未解。而又此奔走。其困如何。而相對皆笑語。無苦勞色。還可幸也。注兄病勢。加減不可知。鬱慮鬱慮。夜後。應春與昌風入來。 十三日。
朝前。以正配儒生俱到之意。招刑吏。使入告。則官家問飯錢盡備與否。蓋將自官庭嚴刑。卽定官使發送出境意也。是何怪妄也。可笑。義城倅之招見慰送。還以非人坐斥。可哀其承風之甚也。未知孰果是人哉。呵呵。飯錢則自臨院已用無限力勢。而姑不得多小入手。方使各其人。爲先治發之道。而坐此拘囚。如何辦備耶。大悶大悶。食後。乃永又以注兄病爲問宜來。而病則斷望云。此何言也。過㥘也。豈有是也。急使往見。權兪煥出藥。而宜言亦危之。奈何奈何。然非止此驀折之人。恃祝恃祝。夕後。敬從下來。注兄之病。一味無減有加。不可捨來爲我受刑。又暫來云。更使以其所見。往問權宜。則云。某症或可有望也。出方曰。急走人使。及於曉前用之云。夜已更鼔矣。雇給二兩上送。終夜不能成寐。是夜。湖上令監與川河諸丈。會于鄙館。略排鄕中各院及各門扶助錢而罷。貞吉及門內諸人來到。見佐從書。 十四日。
朝前。竟承注書兄主訃音。此何天也。此何運也。胸塞膽落。不能收拾精神。自病報之後。一釘着胸。不料有此未得面別於下來之日。爲■(莫)千古莫消之恨。慟哭慟哭。不欲把記許多哀臆耳。午後。少父主下臨。拜迎淚落。不暇欣慰。蓋始聞病報之急。欲暫去永訣。使首校探懇。而不見許。朝間聞訃。又使昌風弟白話具由。爲入木前哭訣之道。而又不見許。是亦有天倫同堂之親者乎。可嘆耳。夕後。自官忽令。招諸配儒入庭。意勘刑。入去官門外。則謂國忌。不可刑。退送云云。發令之時。何其忘之。而又何能忽覺也。笑嘆。 十五日。
朝後。家內弟侄輩。俱入來。蓋汨於劇憂。不能離出。而斂藏後。始暇生人事。幷下來。悲浥悲浥。午後。皆上送。而甲兒留止不去。爲觀受刑。見之何益。可笑。午後。愚侄見來。家間光景。聞益胸寒耳。夕後。官隸來告令下一齊入來。通各館。會于官門外。令七人兩次招入。依罪人例引導。大張氣勢。羅卒仗杖四列。火炬如晝。加刑節次。無所省除。只不傷膚而已。在我則辱。而在官則非待士之道。正所謂下有甚焉者也。勘了後。出來就館。少父主誦蔡西山萬里辛苦之事。下敎援比。不敢承當。又以金化爲金剛道界。誦天敎看盡浙西山之句。慰敎之。種種惶愧。愚昧小子。幸厠儒林之末。得與群彦同禍。已過於分。何敢望古君子素患行患之事。仰副下敎之重哉。 十六日。
官吏以發配文來納。於是陪首位行次。出南門外拜餞。退與諸人作別。陪少父主還家路。爲治發於八日計。暮抵川上。適有長少之會於道傍民舍。被固要。暫入。有酒食。可代午炊。促鞭到家。僅免犯昏。大忌隔日。而念注兄一哭不可緩。於入家之日。拜廟後。卽上去。俯棺呼寃。何及也何及也。來聞病谻中。不知精神之中。合禱兩手。願官家送章甫。使我相面云。嗚呼。臨死不能忘。而吾乃負之●(矣)。不見於下去之時。酷此生死。千古之恨。此何人哉。此何人哉。楫侄貌樣幾不能保。事事不忍見耳。 十七日。
大雪。馬又不餵粥。爲行事愁嘆。犯忌。不敢處齋室。出次于前家。 十八日。
晨行祀事。而不得參薦。痛慕尤深。始欲以今日發行。而馬病不差。雪路無可通。不敢生意。不可免之行耳。還自躁悶也。

十八日。
馬病少差。雪消。則有不可待。遂發行計。告別於各家。內間進拜。家廟當有告由。而喪殯親犯之餘。不敢開廟門。尤切罪悵。拜辭諸父。受勉敎。退與從行作別。受群侄郊餞。因行。歷問元佐病。病雖瘇祟。而猖獗浮腫。不便坐臥。見深悶念。雖無病相送。別懷猶不勝。況河橋古事有足起感者耶。然相對無嗟愁語。勉以居謫節度及行李愼旃。贈一卷白冊。約以春和節筇屐聯翩於萬二千峰之間。因笑別出郊。雪裏斜陽。征鞭甚忙。而最所悵失於中者。川兄文章風流。初欲以竹杖草鞋偕行看護。而因便恣觀於異省山川風俗。及歸作路金剛八景。以遂平生之願。而◘(攄)其所蘊矣。不徒不能蒙聯鞭拊護之力。反阻蟄病室。不得握別。只郊外呼喚。告行而來。懷事正不可鎭耳。暮入輞川。正伯束裝苦待。而日已夕矣。且馬病終不得釋慮。爲宿試於家近地。便於改備。因於正伯夕食共出。宿于店舍。拘日干故也。一村老少。夕後來話。季伯携酒壺。仲錫餽紅柿。情義可感。宗瑞兄惜別共枕。其篤友尤可敬耳。 十九日。
風寒更緊。爲行事甚悶。朝飯自宗瑞家供來。食後發程。而鬣子稍生氣。蓋始餵粥故耳。可無慮。輞川諸人。爲遠餞偕到川前。此意良勤。訪金純若。純若笑曰。去者固足怡然。而送者懷事。不能無勞勞之情。然吾輩在家。皆是謫耳。公特行役。我也又何作懷事耶。贐錢一緡曰。兄有此等行。而以我送別。又有感於◘家昔日事。勿辭也。念後生蒙愚。雖不敢自比於先賢遭罹。而純若語此以贐。足以榮我矣。歷拜村內老少於宗家。蓋爲餞行會臨也。先正伯發行。踰迂路暫入匡山。告別於老人。拂挽卽發。到合路處。正伯已先之。追及於中路偕行。午憩浦項。迤入栗里爲止宿。明早●(朝)上金溪。合諸行偕發矣。到則聞巖後兄帶其從弟。爲餞行來留金溪。金贊夫亦悵京行歸路乖逢之恨。要餞在金溪。急於敍握。約叔獻明會。乘暮發。抵金溪。正伯入宗家。余則入龍巖。巖後兄及贊夫在座。幷歡敍可喜。姜臺國甫喪人亦來坐。蓋爲餞其査頓也。因便修唁。積阻餘慰適。可幸也。夕食後被繼孟兄所速。偕巖兄。燭行上去。齊會夜話。甚適而罷。余爲巖兄所引。往宿元一家。枕上論多少義理。或相合或不入而止。 二十日。
飮餞于宗家。午後發行。李章彦李善休金獻洛金正伯金叔獻及余。而陪後者。山雲二妙及景能而已。行到瓮泉市。日力可前進。而無可容前店。因止宿。姜臺兄先發金溪。問藥於淵爺。暮後來到。同館聯枕。欣慰可量。廣坪鄭友四人來見。以柿貼餽贐。夜深罷去隣店。夕前龍潭義城戚叔歷過暫敍。餘悵不化。 二十一日。
朝前鄭友別去。辛勤可感。食後雪下頗有兆。大氐此行。始終與雪作伴。實非偶事。可嘆。冒行踰陡霧嶺。險峻氷滑。艱步下山。推此知前路事頭重。暫憩于山下酒店。問水島爲二十里。而鬣子躍步不堪騎。欲換乘性發兄驢子。送一行直路抵榮川。就迂路作行。午抵水島。金兄父子俱出外。悵嘆不可言。見從妹。淚眼相對。情事惹新耳。驢子見繫場柱。旣來爲言入來之故於老人則曰。兒孫輩雖不在。如此之行。豈無借乘之義耶。況加價相換。尤何不可。而但兒子京行時。背傷如爐口數處。將慮棄廢。何可以此換呈於不近之程乎。然在兄諒爲之。甚是良貝。不得不以所騎直去。而最是腰痛大難堪。奈何。午後發行。中路險遷。備嘗危悸。至解卜負過。因失日力。夜深後始入榮邑。前行亦犯暮纔入定。夕食未供。道里則似不甚枉耳。夜定。招主人問從兄別室親家。則乃渠家。而其父方入番不出云。本郡首校也。山雲陪行。自此辭歸。蓋爲其大人命不敢違。 二十二日。
擬發之際。本邑知舊。全朴三四人來見。而全兄乃入疏錄者也。命酒爲餞。可感。朝時。首校來現。酒待一行上下。不受吾食價。行中皆嘲以査誼。可笑耳。 二十三日。
晩發。午入豊基邑。市開簇立。馬不得透出。暫憩旅舍。又擾聒不堪坐。遂與仲賢先行。向白洞。約諸行明日相會於嶺左右。抵到白洞。應韶已料行期。企待爲數日矣。歡迎欣倒。其情可知。入拜其大人令監。退與應韶內外。敍寒暄訖。論天下事。相與發嘆。而繼之以斯文終喪之悲。竟夕不知止。夕後。黃紀彦來見。討話。口辯人也。間誦詩句及古談書滑稽。到夜深。頗不寂寥。可爲忘勞。 二十四日。
朝起。書付家書數字於金溪。以景能自此辭歸也。食後。發行。應韶送至前邱。問裝篋所隨書冊。因曰。金丈終是無低頭。向此等冷淡家計。今行幸與提携講討。喫緊作吾家人。則豈不是大相賀者耶。余笑曰。方怕被渠弄嘲不暇。何能有鞭擗人手段耶。仲賢適後未聞。追到已語了。只相笑。仲賢解得爲渠言。雖未知其實。而共做一場疑笑矣。惜別暫坐雪裏石叢上。遂作別而行。景能又不能遽辭歸。隨行至水鐵橋。其大人必令歸去。謂宿白洞。明早發還。悵念殊切。前行聞昨宿此店。計已踰嶺耳。自此步行。昌雲備一筇來納。可助登陟踰竹嶺。往年曾一行過。而峻險若初見艱關。費日下嶺。未半。已過午。餵馬梅巖店。行十里。抵長林。先行已定館止待。餘力。猶可少進。而怕窘。仍宿。自梅巖店入。已見常平錢爲希寶。要換小錢十一利。不許。來見諸行。亦受主女困懇。難堪。夜又來乞。而慮前路如何。牢不施許。末乃怨恚不止。 二十五日。
朝前。梅巖店人。又以二十兩小錢。冒霜十里委來。乞換。其情可慽。邊界嶺南之地。百物不得相通。故謂言買米於嶺南爲過歲計。不無惻許之心。而一出令。便不堪其擾懇。相與目禁止之。故不得從心。而只嘆民生之困於法令耳。食後發行。到後坪。始舍丹陽路。不越橋而北。循川而下。前行下馬。橫越上山麓。余亦追躡。而未知有何觀。至則巖崖成广窟。可覆容數百人。自外入到幽暗處。則穴又兩歧。通南北去。不知幾里可窮到極處。懍怵不可入。又不可久。遂出來。蓋善休曾一見於丹郡人同行時。郡人言。兩穴流傳。一通江原地。一通慶尙道云。誇虛。亦可奇耳。蓋善休曾一見於丹郡人同行時。郡人言。兩穴流傳。一通江原地。一通慶尙道云。誇虛。亦可奇耳。行十里。卽所謂萬壑江。乃丹陽山水。擅名如龜島。諸勝之所在於上下者。曾於陶山集。記勝遺韻。起想其奇偉淸境。如海外蓬瀛。而及到近地。乃不能追躡遺跡。寓慕於石島潭滙之間。憐嘆愧悵之外。其不見嘲於靈仙耶。恨恨。但氷江越去之時。覺得履薄之工正好。勿失在平生操持。則追躡先生之事。豈徒江磧間遺塵餘勝而已耶。庶或自勉耳。自江津。行五里。踰小峴。亦名萬壑。行二十里。午站于梅浦市。促發登道。是日稍溫和。路中成泥海。馬蹄排漲。僕奴腰下。便成土偶人。而夕間又成凍。不得運脚。是亦八子。念不能置。歷所謂安東店。踰小峴【悅武峙】。過楡院地境蛇谷池前等店。冒雨雪暴至。霑衣入堤川縣邸。下人輩寒慄。不能弛卜。悶惻悶測。仲賢轎軍。困脚不可追。自悅武峴落後。不見追到。不知止宿何處。又深慮念耳。夜雪下不止。風聲動天地。凜悚不能寐。 二十六日。
曉覺起坐。情事莫定。未知隣沴淸熄。如禮行祀否。痛泣且鬱。朝來出見。雪則快晴。而風寒若裂膚。不敢出頭。相對愁嘆之際。仲賢入來。蓋宿於蛇谷店。不過五里之近。而轎軍作僵尸狀。仲賢雖轎坐。而神色無生氣。懍慮不可言。食後下人交告難行。而一行皆悶。前路太遠。而行事太遲。必欲小進三四十里。强令治卜發。出縣街。則道路爲夜來獰風。掃雪塡塞。一平無垠。運足便沒腰。飛雪拍面。不可向遡。余每以畏寒見嘲。故於行事。只爲人所牽。而如此日。斷不可一刻作行。命僕回馬。於是諸行俱還入。前店留止。然雪寒非一兩日可消。愁惱無言。出行。篋中所隨金農巖金剛錄。共看一徧。 神思僊僊。便覺此身已在萬二千峰中。胸懷爽朗矣。夕後日氣似小平。而僕隸猶不欲暫出門外。有所使役。寧躬執。不忍喚耳。連日同行中。無新奇話語。且困憊成懶。燈下只縱橫枕藉。却愧于心。僕奴室聞有南海謫來人。邑例以店次任饋謫人。故留止於是家云。以同道人。故招見。則似是吏校屬。謂掘塚被謫。而與班族相持。掘去四十年已陳之墓。可痛之漢。而諸人皆以與他省別。斂出分餞施惠。不當惻者。而不必異衆。故依數給之耳。 二十七日。
朝視。雪上風寒。砭人肌骨。斷不可作行。而主人告悶。以食後市擾。不得已發行登道。雪路始自我行通出。而馬腹沒陷。間又溝壑。上平不分。誤落幾丈。卽失馬僕處。輒用一番驚騷。直是好笑。一行俱步。排雪涉氷。將踰飛歧峴。而谷口北望。雪峰璀瓚。上有小菴。寄在巖穴間。問之名白蓮寺。坐憩。酒席指點。可備一奇。踰峴。欲午炊。而無店。到新林。日已僧夕。可前進。而人馬俱飢困。且聞原州四十里之前。無馬枋云。不得已止宿。叔獻馬。又不餵粥。多方藥治。亦一旅愁耳。 二十八日。
寒事一向不解。畏縮不能早發。且以原州以後。各侍分路。故爲一處會留。餞迓後相散計。則意營邸似便於寬容。約以抵止原州。晩發。踰可里坡嶺。自此上去。則不甚峻路又坦。若非氷滑。則可騎到嶺上。而纔上嶺下視。便四塞坑塹。藤蘿中拚本作行。而氷坂直一懸瀑。人馬不得着足。艱下幾二三里。始到谷底。而山迴谷疊。天外無見。路或坦平。而氷程無一片土可踏之地。騎馬非可生意。而步履亦不敢放心。足踧踖如有循。而行異省山川。豈無周覽之意。而足目相離。便顚沛路中。正所謂高擧目不得。闊擧步不可者。正可將此一心去。做日用地資工耳。自山下又冒雪行十餘里。過丹邱驛原南五里界。入營邸。問館則馬枋只有二家。而一以貧乏。無以供。一以窄狹。不肯納。誘之僅入次。則只有僕奴室。湫陋不堪居者。然猶愈於露地。嘆嘆。蓋所謂營門道。比安東府不及半。而無城無藩。令人發笑。仲賢傳喝于判官。卽丹陽李淵喆。而爲先友深摯者。自官出校吏定館云。而竟不得一淨室。仍於所坐處。止宿。夜後主官。以其子來見仲賢。而酬酢。頗似有知覺。謂言此何●(何)累於儒行。但爲幾月客苦。可悶云云。見是少年子。且異色。而其言如是。可見彝性所同耳。 二十九日。
爲除夕。館舍雖不可暫留。而今日則店人例不肯納客。前進受窘。在所預料。不得發行。爲留止計。闤闠中。陋室閉伏。無聊對頭。儘似長房拘囚樣。笑嘆耳。米肉聞市亦不得求。主人所供。不免素食。欲收斂行橐買肉斥。爲過歲之味。則主人大笑曰。何處得肉。頃日營本家庖廚。只椎一牛。更何有賣出之肉。非徒不知肉味之爲可戲。其殘營可知也。判官昨言。來見仲賢。朝間書謝。以有碍遠聽。不敢面敍云。可哀其喫㤼之甚也。 辛未
正月
初一日。
發原州。午炊于橫城。爲見正伯定館。仍留止。午後。仲賢與正伯。覓見鄭進士。卽年少者。辛丑生。而方居憂。款接非常。賀以嶺南故有此行擔當。正伯居停。招吏付配文。皆出力爲之。請仲賢曰。在外諸丈。所當躬進奉請。而喪身非便。幸望丈人傳喝。幷入來。如何。懇辭非外飾。故仲賢送人。請偕入來。一行俱入去。而吾則吟感。不便於初見知舊之家。辭以病不入。夕後。諸人拂挽出來。亦爲就便也。蓋五入夕。供頗盛饋。懇挽止宿云。可尙其雅佳耳。 初二日。
朝起。心緖甚不定。而亦且奈何。正伯見似有賴於居匪。可慰。食後發行。落留懷事。正不勝悵失。越後川橋。午炊于下倉峰。踰三無難嶺。又是巨嶺。比可里坡。幾乎倍峻險。回曲十里無人之地。決非獨行之地。暮抵松洞店。止宿。 初三日。
曉鷄亂唱。起想慟慕。如何可定。行二十里。抵洪川。爲叔獻到付居停。又仍留止。仲賢與叔獻。覓入金新溪家。卽其先令監。曾所同官。而寧越時。往來切親者也。相對驚倒歡迎。午饋。甚旨。洪川又空官。分付官吏之事。卽地定館之令。比橫城。又是一拳高平。叔獻又可勿慮於安處。尤幸尤幸。午後欲發行。叔獻固要一宿。善休又將自此分路。亦欲共枕一夜後相離。遂停止。各修家書。爲付叔獻回人便。 初四日。
食後見叔獻所定館。靜潔可適。送別善休。就東峽路。蓋此兄前道。最險且遠。而隻行尤可慮念。因分路入北街。叔獻送至城郊。見有悽悵色。穉情可念。勉以杜門課讀。勿受雜人來。款處匪節度。所嘗講定於旅次。從容之暇者。加勉勿忘。因上馬。不視眷戀。想行數舍回見。倦步入郊之狀。繾念不能釋。踰所謂楡葉嶺。嶺與三無難等。而峻急似少之。午炊于社堂店。踰馬峴。峴又高險氷滑。下山憩新酒店。暮抵原昌。路傍設虎穽。如巨筏。其深峽可知。店人已多北關語音。供朝夕素餐。不可食而床價爲一戔六分。蓋米貴故耳。 初五日。
發行。踰原昌嶺。嶺與馬峴等。而稍峻急。下嶺。過東萊店。出谷口。眼界忽廣豁。乃春川府。野●行二十里。入春川邑。憩前阜。通望四面茫茫。邑人言。七八十里。連平無垠云。雖貊國。其都墟。猶異於常地。北行三四里。回山麓。乃江津也。急於涉氷之未及午陽。不暇顧望。而氷路已上灘解穿。而陰淵姑堅合。然懍危艱渡。出岸回見。北崖巖臺上。有亭翼然。乃知爲昭陽亭。而丹靑照耀。江流臺下。彎環三四十里。蓋爽豁勝景處。亭之左麓。稍高於臺。而陡斷其前。俯臨江水。有巖虎蹲。高可數十丈。而巖前僅平數席地。作六方小閣。依巖爲广簷。此又有通臨東浦。大野曠豁。又可勝於亭。越望不能登臨。已涉之危。不欲更犯。以遊觀之欲。只上下江渚而去。甚恨其無分於勝區也。行十五里。午站于玉山浦。仲賢落後始到。此公曾已聞知有昭陽亭。故登覽一暢而來。詫誇不已。余强嘲以吾之過去。領取勝景。豈君無味登下而已耶。然心却追羨。自玉山浦。行七八里。踰小峴。自峴項。卽山腰遷路。下臨近百丈。大江激射。凜眩不可俯。遷路又泥滑難步。去月有落馬見斃者云。所聞於玉浦者。而親過。果是危地耳。下過保通茅屯地。暮抵毛津。江泥沒馬腹。陂遷尤甚。艱行到江津。氷路坦堅。兩山摩天相挾之地。氷合最堅。步渡入岸上店舍。止宿。夕後聞有黃肉願賣者。仲賢發論。使持來。以一兩六戔買取。爲上下一飽。可雪歷峽來長素食之恨耶。呵呵。此是春川地。而酒禁甚嚴。無酒之肉。又一欠事。因此聞主人傳誦言。近地數十里。有一饒居之民。好酒。而自官禁之後。不得飮。幾日有生病之慮。其子婦悶恐之。潛釀三數升。每夜間壓飮之。如是不止。一夜其舅。請於其婦曰。隣家某翁。與我爲酒朋。而思酒渴欲死。吾不可獨飮。一請共飮。何如。婦曰。當加壓幾盃。惟舅志是養。其舅乃請之共飮一歡矣。其明日。其人往告官家。校差風至。搜出酒瓮捉去。其舅。其婦曰。舅何罪焉。釀酒者。吾也。吾當往受罪。願寬我舅。校吏不許。乃先於其舅。直走入官門。自見伏罪。俱道其悶。舅不飮瘦病之故。敢釀三數升。爲助補之資。及其舅請饋隣翁之由。則官家嘉其孝。命●(使)汝。則吾許賜酒。令爲養舅之道。愼勿過釀爲見利之計。可也。因捉致其隣翁告變者。嚴棍二十度。枷囚數十日。出逐之云。世間事類如此者。雖小小底。亦足見天理之無不明耳。 初六日。
發毛津。行二十里。踰水靑嶺。嶺於所歷諸峙。優居丈人行。而林木之密。非草發後可行之路。下嶺過運粮墟。乃壬辰矮軍頒糧處云。過西牛池元川等店。到地境店。乃春狼界。午抵狼川邑邸。主人羅姓人。言論頗可聽。午後發。行二十里。宿退谷店。 初七日。
發退谷。行十里。到四方郊。乃金城金化分路處。而仲賢初欲直就正路去。臨分又不能遽離。寧迂三十里。而爲半夜同處。遂就金化路。偕行。踰馬峴嶺。是嶺又南北所限。而峻險深遠。洽是日月深處。如龍華窮源。而無人境。三十里之間。蓋到頭立極處。逈異於過去足下者。可懍耳。午炊嶺下新嶺店。暮入金化縣。覓暫館處。不得。遂回馬。出銀溪驛店。店人皆以無行次室。不肯納。艱誘一店。借其內室。定處後使下隸付配文於刑吏者。仲賢欲知主官如何接待及居停如何。急急入付。使告官。則退送曰。官家已收公事。不敢入達。明朝正配兩班持而入來。窘辱可笑耳。 初八日。
章彦仲賢俱欲遲發見吾定館而去。而念到付過遲。如章彦前去。又過百餘里。勸之發去曰。勿慮。吾也豈無自爲之謀耶。食後別送兩人。別悵不可言。因戒裝。入官門外旅店。坐定。使奴子。招刑吏。則不來曰。汝兩班持配文入來云云。視以傳次寄處之謫人。亦無怪耳。更使奴子往招曰。吾雖正配客。可坐見金化吏。則一吏始出來。出給配文。使之卽告官家。俱問正配人付處之例。則謂擇民家稍饒者。付處邑內。則皆官屬。故每出驛村云。驛村乃銀溪便同邑中故耳。因使之入去告課先定所館。來告而移時無皂白。自官招昌雲。詳問知誰。定館於邑中首校家。蓋拔例爲之者也。主人來現。請往其家。至則房室靜溫。又頗饒居者也。問姓名。則曰高時恒。而風采骨格。有軍相風。懸金帶緋。擧止恭謹。視南土風習淳薄判異。其子麟煥。年十九。勤學。方讀書傳。而能自以諺解。考註解讀。可愛。主人言。官家分付之外。若得敎授賤息。則不殫奉供之勞云。其誠又可尙。自午供及夕。太盛豊。不安之外。爲費報之事。豈非可患耶。夜間招主人。備言減供之事。則笑而不信。蓋自官款接。主人知爲貴客來謫。尤所愧吝。麟煥於燈下。吟呈一律求敎。頗已解體格意味。又令人有情念耳。午後。主官使首校傳喝入來。辭以踪跡所不安敢辭以答送。至再至三。而不止。不得已暫入敍話。嘆其厄會。因言甲子暫見之後。今始再見。欣慰不可言。余曰。此行非入坐此室之行。心自不安。欲出來。固挽曰。罪人乎。只正配云耳。何異於金剛路相訪耶。少間酬酢。因拂挽起出。笑曰。鄕古耳。出門送至榲間曰。往來相從。甚好。余曰。吾則更不可入此門。主官又豈可枉屈耶。笑曰。雖拒絶之。吾則數數進敍云云。可感耳。 初九日。
意金城回人歷到。修家書及京書。嗽汗神昏。不能成語。可嘆。 初十日。
金城轎軍。歸路歷入。見仲賢書。知安抵無頉。可幸。而姑未居停。寄在旅店。且主倅。以淮陽兼官。入淮陽未返。到配狀不得出。大悶大悶。自此送京伻之事。不得不退待。然事事不遭順。可嘆。本鄕回移。自刑房有文報例。故轎軍得趁歸。付送家書及此邑回移。未知何日可入達。轎軍亦千里同苦之情。呈別有悽悵之色。可愛。出給一戔錢。使助酒料。午後。始借主人書案。整頓篋中冊子。又借木匱一坐。俱收行裝所隨。藏鎖之。有廐立馬。又吾所居室下。有主雇居處之房。石奴亦便適。卽具一家産於客地。所費不少。不能無惱心之端耳。麟煥授課。頗解聽。每日寫字有程。夕後吟律一首。乃其由前恒課。每請呼韻。做後。又請考監。本不解音之人。何能考試耶。可愧。但終日在讀書聲邊。大爲旅居喚惺之資。且或有聲誦之事。雜在其中不辨。亦爲鞱藏之幸。自是日具小冊字。追記京行及此來程曆。而本短聰明。又被困憊神息。不收似多漏。或失次。文又不能成語。可嘆。夜主官出來酬酢。洽知屛儒情狀。語多可聽。 十一日。
金城伻。苦企不來。悶鬱。主官亦悶其尙無定館。欲送校邀來。爲於我同處五六日。入送計。累次傳喝。辭以未安。且言不必然之故。以止之。然眷念可感。主人兄弟。朝夕來謁不懈。而觀其爲人。純直無巧。見識頗不草草。決非南土吏校等類。峽土風氣。猶有未盡澆者耶。所謂鄕班。蓋貿貿無可問者。只武弁李務山家。爲大家數。李進士家其次云耳。 十二日。
每日朝起。洗具已等待。櫛巾與衣冠。蓋無所事。不看讀外。無措身處。心亦不甚煩擾。終日無出門之事。不無養靜之益耳。主官食後。忽又傳喝。方送人於金城。書托其倅。使之出送。金雅士可無慮出來。書送金兄書。是望云云。念未定館之謫客。主倅必不許送。雖許。仲賢必不來。而公然費往來不使。故答以少俟其整頓之意。以止之。主官謂昌雲。汝書房主。負何罪。而每日罪人云乎。金城去兩班。其官必當送之。而於柳丈止之何云云。大抵主官。則視以可笑之事耳。麟煥夜課律。日見進步。而於吾所讀書。又有願知其書之名義。又以所授人心道心設問。或有通解處。蓋於傳中。已自用究得者也。見吾夜誦贊文。備一小冊。願謄誦。獵等可戒。而誠可佳。故姑使謄出耳。金城終無信息。可鬱。 十三日。
金城伻未見到。京伻太緩。主官亦言其不必太遲。故不得已食後發送。昌雲愚物。能無事往來否。慮念。午後金城伻來。見書。 十四日。
有弊袍客入來。問之。則乃靑松巨嶺南氏。前夏謫來此邑次。付於驛村金風憲家。而罪目則以還政議送之事來也。坐語移時。自負以峽中知事通敏之人。還令情念不出。■經過朝夕。則饒主同粥飯。可謂太平。而客裡無分錢。不得措手。家信一來後。無可憑聞云。其情則可慽耳。未知於今番頒赦。可蒙解耶。食後次共未還去。修答書一送。而校使偕去。 十五日。
上元也。邑中見以令節。大有興設。家家晨炊。爭束炬柄。以待月。及暮坐聞通街士女競出之聲。可占氣象。麟煥見具衣冠。問何之。則告以風俗。設白糕及具饌果。迎■(月)於中庭。故見已設陳。而月亦上矣。方急於拜迎矣云云。南■(中)所無。而似亦爲美事。始知學人拜新月之句。亦古有是事耳。主官忽出來。適案具未撤。才坐曰。此何象。先擧心經。大驚曰。心經。又舒湖輯。見內衣道體爲學等題目。便縮手曰。可畏哉。是何等篇目也。笑謂麟煥曰。吾誤指授汝矣。又戲余。老兄誤人子矣。更正襟曰。嶺南此等文字。豈非國家之本耶。以讀此之故。有此之行。誠可嘆云云。因曰旣以不入來酌定。甚未便。而匹夫之志難奪。則吾不得不進謁。然今夜。正好踏月。可偕出橋頭暢敍否。以過奢於處匪之跡。辭之。又大恨嘆甚迂之。夜深。入去曰。吾則旣出矣。將暫間踏橋而去云云。不久聞入去之聲矣。方就寢之際。官婢叩門。以藥飯及麵湯果床。見餽。小嘗之。召給主老。使持去。共食於內主。爲渠言。莫知實。而共笑矣。惜別暫坐路傍石叢上。遂作別而行。景能又不能遽辭歸。隨行至水鐵橋。其大人必令歸去。使之留白洞。明早發還。悵念殊切。前行聞昨宿此店。早發。踰嶺云耳。步踰竹嶺。往年曾一行過。而峻險若初見艱關。費日下嶺。未半。日已過午。餵馬鷹巖店。行十里。到長林。先行已定館止待。餘力。猶可必進。而怕窘。仍留宿。自鷹巖店入。已見常平錢爲希寶。要得換利。不許。來見此留諸行。已受主女困懇。方患難堪。夜又來乞。而慮前路更如何。牢不施許。末乃怨恚不止。二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