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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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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일기
내용분류: 개인-생활-일기
작성주체 류기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작성시기 1864
형태사항 크기: 27.3 X 19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1책 188면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는 전주류씨(全州柳氏) 문중의 류기호(柳基鎬)가 쓴 필사본 형태의 상소일기로, 임천서원의 사액을 청하는 일련의 상소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1864년(고종 1) 4월 15일 영남 사림들의 집회를 시작으로 하여 5월 3일에 소수(疏首) 이하 임원 선출을 하고, 같은 달 27일에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도회(道會)를 거친 후 다음 날인 28일에 상경유생 수십 명이 서울로 출발하면서 소청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9일 성균관 반장(泮長)의 대원군과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마치고 있다. 당시 임천서원을 복설한 이후 상당한 물력을 소진한 결과 청액 상소를 올리지 못하다가, 1863년(철종 14) 병산서원(屛山書院)이 사액(賜額)된 것에 자극을 받아 이듬해인 1864년에 소청을 열고 상소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소청을 열고 상소를 하는 절차와 경과, 폐단으로 가득한 과장(科場)의 모습 등을 기록하였다. 류기호는 호계서원(虎溪書院) 중건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이 일기가 작성된 1864년에는 임천서원의 청액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류기호(柳基鎬, 1823~1886)갑자년(甲子年, 1864) 4월 15일부터 10월 9일까지 임천서원의 사액을 청하는 일련의 상소 활동을 기록한 일기
개괄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는 전주류씨(全州柳氏) 문중의 류기호(柳基鎬, 1823~1886)가 쓴 필사본 형태의 상소일기이다. 1864년 4월 15일부터 10월 9일까지 임천서원의 사액을 청하는 일련의 상소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총 1책으로 권수는 따로 없고, 표지(표제는 石隱日記) 포함 총 180면 분량의 자료이다. 계선이 그려진 종이 위에 비교적 정서하여 베껴놓았다. 당시 류기호가 직접 작성한 서간문 자료에 보이는 서체와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서체를 볼 수 있다. 또한 전주 류씨 문중 소장 자료 중 동일 인물의 기록인『객일수록(客日隨錄)』이 본인의 필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이 자료는 제삼자에 의해 베껴진 이본으로, 본인의 초본(草本)이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남아있다. 이『객일수록』은 『임천청액일기』의 소위 후속편으로, 서원청액을 위한 소청(疏廳) 사건 이후 약 6년 뒤에 벌어진 훼철서원 복원 청원 사건을 기록해 놓은 일기로서, 사건의 결말뿐만 아니라, 서원훼철령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영남유림에서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훼철령에 대한 사회적 인식들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작자 소개
류기호(1823~1886)는 본관은 전주, 자는 공보(鞏甫), 호는 석은이며, 부친은 치효(致孝)이다.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이다. 그는 호계서원(虎溪書院) 중건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이 일기가 작성된 1864년에는 임천서원의 청액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이후 대원군의 서원 훼철 시 임천서원을 위해 소수로 활약하다가 1870년 강원도 금화로 유배되었다. 이후 평북 선천으로 이배되어 적소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저서로는 󰡔석은유고(石隱遺稿)󰡕가 있다.
상세 내용
이 일기를 기록하게 된 사유는 첫머리에 기술된 일기 서문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임천서원을 복설한 이후 상당한 물력을 소진한 결과 청액 상소를 올리지 못하다가, 1863년 병산서원(屛山書院)이 사액(賜額)된 것에 자극을 받아 이듬해인 1864년에 소청을 열고 상소하게 되었다고 개략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처음 1864년 4월 15일 영남 사림들의 집회를 시작으로 하여 5월 3일에 소수(疏首) 이하 임원 선출을 하였다. 여기에서 소수는 류 모(柳某)로 이름은 기록해 두지 않았다. 동월 27일에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도회(道會)를 거친 후 다음 날인 28일에 상경유생 수십 명이 서울로 출발하면서 소청일기가 시작된다. 이 일기는 동년 10월 9일 성균관 반장(泮長)의 대원군과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마치고 있다. 그간 상경 시 주변 풍광을 읊기고 하고, 상경 후 소청을 열고 서울 지역의 유력한 인물들에게 부탁하는 과정, 대원군의 인물평가, 당시 과거제도의 폐단 지적, 향촌 내에서 서원 문제와 관련한 갈등, 중국 사신을 맞이하면서 보이는 청나라에 대한 인식, 왕실 행차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특히 소청을 열고 상소를 하는 절차와 경과, 폐단으로 가득한 과장(科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일기는 임천서원 청액과 관련하여 19세기 중반의 시대적 상황을 영남사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평가한 내용들을 기술하고 있다. 주로 소청을 설치하고 상소를 올리는 절차와 과정을 비교적 세밀하게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이를 넘어 당시 서울 지역의 정세나 민심, 정치제도의 폐단, 인물평가 또는 향촌 내에서 병호(屛虎)간의 실질적인 갈등관계 등 다양한 각도에서 시대사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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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石隱日記
太皇元年一八六四
自甲子四月十五日
至十月初九日。
臨川請額日記
(序)
臨川書院請額上疏時日記
自本院復設之後。陳疏請額之擧。所不可一日緩懈者。而顧以經營建立之餘。物力難於供費。事體極其愼重。于今五六年。只相擬議趑趄。尙未能一番叫閽。則以士林尊衛之誠薄。而致國家崇報之欠典。豈非吾黨後學之所共責者耶。昨年癸亥秋。因儒臣李啓魯請。自上許賜屛山書院額號崇典也。朝家右文作興之化。可見於此。而儒林之感祝欣抃。又豈有其極哉。第以臨川之與屛山。卽是一體之地。則士林之尊奉國家之報施。宜無後先異同之別。而今乃未得幷列於恩畫之頒。亦豈非缺圓欠全之事。而士林之因循稽緩。未及上達之恨。又何可勝言耶。於是自湖上折書於金溪。始發呼籲之議。而遠近士論莫不允合。乃於甲子正月。自廬院發通於本院。期以定日會議克敦大擧。而時値山陵未封。朝廷多事。臣民之情。亦不暇他故。乃退以因山後。爲更議治疏之計。亦鄭重事體之道。議無異同。遂以四月十五日。定本院堂會。發文輪告。

甲子
四月
十五日。
近地士林齊會本院。會者若干員。議以大論。不可以一方士林之所自擅決。合有一番大鄕會。以取公議之如何。乃出時到有司及製寫通。以五月初三日。定鄕會於靑城書院。發文而罷。 五月
初三日。
鄕會會員雖不多。而一鄕老成之可主儒論者。無不來會。翼日開座于明倫堂。望出公事員。幼學李瓚權載基。曹司柳致榮權大衡金世和。公事員禮讓出座後。僉議一辭。斷不可少遲。乃望出製疏。進士金岱鎭金行洙柳進鳳柳致游。幼學金奭裕李敦稷李晩恊。使曹司書望記。出付院隷。指日呈納于各處。遂以是月十五日。定道會于花府。出製寫通。發文而罷。 五月
十五日。
道會時。鄕道儒會者。百餘員。翼日開座于講武堂。望出公事員。幼學權璉夏金壽翼。曹司崔命坤金泰林李有基。公事員出座後。言于座曰。兩文忠先生尊享之祠。尙未蒙賜額之典。大爲儒林之抑鬱。今幸屛山已於昨秋。得蒙恩許。延額指日。臨川宜在一例之地。而獨不見於恩典之下。豈非吾黨之責耶。今此齊會。蓋將爲治送儒生。上達天聽之擧。則儒林大事。孰有加於此哉。幸各盡所見。以爲可否進退之地。如何。僉曰。此擧之至今稽緩。已是吾輩不敏之罪。況於此際。大論已定。其何有可否之可言也。屛山儒生進士柳孝睦以下六七人。出言于座曰。今此大擧。孰■(事)敢有異論。而第今屛山宣額之事。已至院號備望入啓之境。故所以定延額之日。在今八日。而日前見京信入啓後留中不下。莫知其由云。朝家處分。未知如何。此際更以院額事干瀆。或無害於已蒙許之屛院未可知鄙等之見。稍待秋冬或明春。以觀屛山事。下回之如何。則似兩得其宜。未知何如。座中僉議以爲此言非爲無理。而實不然。見今方以各道書院結總保額。詳悉報上事。朝令甚嚴。且傳聞以額院外。幷有毁撤之議云。此則未然之事。雖不可信。而屛山則是先朝已成之命。雖緣些少曲節。姑未頒下。而萬無不成之理。臨川則無一言上達。而坐待秋冬。若於結額報刷之後。勘下屛院額號。而卽有私設毁撤之令。則臨川其將免毁之不暇。何敢生請額之望耶。如是則非獨臨川之向隅。抑非屛山之所慊恨者耶。以臨川之疏。而屛山被害之慮。萬萬是過計之憂。若有一分是慮。則吾等獨非屛山後生耶。豈敢作此擧也。柳孝睦曰。生等。亦不敢質言。然生等。則不可與共事。勿以名帖入錄。如何。座中曰。若然。則不過是立異於此事之計。日前貴門之製疏退望也。生等已訝感矣。貴邊之每事生梗。實所慨然。屛山儒生。一時出去。而大事旣張。不可以一邊乖沮遽自停止。乃望出疏首柳○○李在欽李晩遇。使曹司收圈点於座。柳○○爲準。曹司請出座。疏首固讓。而座中固請。乃出座。行相揖禮。因爬定諸任。而殘院物力。不可不觀抄出上京儒生數十員在疏錄。芝山朴谷湖上龜湖疏草入來。封付本孫。出製寫通。以是月二十七日。定發行道會於順興紹修書院。發文輪告。分送疏資於各處而罷。 二十七日。
晴。午後疏首以下諸員。到紹修。纔入洞門。院首奴三四名。具冠服。祗待於路側。排列假家之樣。引接前路之方。可見本院士林之勤於禮待。而院中紀綱。亦可爲首於道內矣。疏首及長上數三員。直入院中。以下諸人次第入時到所。修禮後。入明倫堂。鄕道儒。皆已先到。合數百餘員。夕後疏首及諸長老。乘凉于景濂亭。少輩亦多有陪從者。亦一勝會。略論疏行事。夜深後。疏首就次于明倫堂東齋。餘各分宿於諸齋。巖后疏草入來。傳看於諸房。 二十八日。
晴。朝疏首以下具衣冠。祗謁於文成公祠。三配位。是文貞公安軸文敬公安輔文敏公周世鵬。配位之各書諱字。始見於此。院庭行四拜。退出明倫堂。廟直奉先聖像。揭于北壁。令諸儒拱立瞻謁。像有二本。一則墨本。而影相稍大。其彩本。則幷畵七十二子。以及濂洛群賢。西壁上。又揭文成公周愼齋李梧里李漢陰許眉叟諸先生眞。而氣像各異。盖認其爲七分也。朝後疏首及諸老少。次第登覽於亭坮嵓畔。因從西麓林路。入錦城壇。壇在院之西北而南向。設石壇。甚方正者祀元位。次南東西兩壇。祭配位云。繚以短垣。設門鎖閉。禁人出入。壇之西。有杏壇。蔭厚甚盛。傳言。錦城被禍後。杏卽枯死。凡四五十年。而及伸寃後更生。至今繁盛如彼。忠烈所在。草木亦著靈異。可敬也。晩後。疏首與諸儒。序立于明倫堂。依本院享禮時規。使響亮儒生一人。拱手立。堂中北面。讀樑上板。揭白鹿洞規及敬齋箴。因行相揖禮而罷。齋直告定坐。進酒肴以待之。又自臨院辦酒肴以進。旣畢。仍發行。受餞于松亭。送者數百人。行到順興府。金溪諸長老。皆辭歸。到豊基郡。日才過午。而一行俱困備。仍留宿。而金溪兩直日。前向白洞。爲見其妹家也。約以明日相遇於水鐵橋。馬洞李丈以忌故落後。午前已如約來待。欣幸。本邑寓居金輝京金碩奎父子南基弘來見。可感。夕金溪本孫設酒食以餞之。是日行三十里。 二十九日。
晴。今日將踰嶺。而暑炎甚酷。豫爲頭重。金溪本孫天老君弼。皆辭歸。甚悵。食後發行。踰竹嶺。午點于鷹嵓店。酉谷後行及白洞兩行。皆追到。同行凡十四員。夕過丹陽郡。風于二樂樓。沽酒以飮。碧水丹山。果有緣分。而龜道勝景道山高棲。只在指點煙霞之外。而被暮雨作戱。未得了遂宿債。甚恨。乘暮冒雨。抵長厚店。自郡十餘里。緣江作路。其間江潭巉岩。回抱幾曲。而無非奇絶。信夫郡之■(得)以山水得名也。日暮仍宿是店。是日行七十里。夜大雨。 三十日。
雨。午後俟晴發行。踰鷄卵峙。又遇雨油襂而行。投宿德谷店。而窄夾不能容。少輩則前進。宿西倉。是日行七八十里。 六月
初一日。
雨仍不止。而不可留滯。早發。會于西倉。臨河都廳馬病不得作行。爲留後療治計。多行勢不可共留。而臨發懷悵。無可形喩。遂發行。而才到遷路。遇急注一行沾衣。疾驅入黃江暫憩。俟小霽卽發。午点于楊幕店。過忠州府。取大路。舟渡㺚川。宿大楸院。是日行八十里。 初二日。
早發。未里又遇雨油衣而行。路逢許順。則自京下來。立語略聞泮中物論。而雨中不能細叩。遂揖別而行。到龍安院。雨不止。小憩卽發。午点于毛頭院。午後候晴。發行抵宿龍山洞。是日行八十里。夜又雨。 初三日。
雨終日不止。兼以行中病憊。或泄或吐。不得作行。仍留宿。旅窓愁緖。正難堪矣。夜又大雨。 初四日。
雨晩後始霽。病客俱稍蘇。遂登途。到碑立街。前川水漲。諸行艱渡。而川前管行。中流馬蹶。衣服行具沒沈。入店曬曝。仍午点。到太平村分岐。湖上疏色及金溪都廳朴谷金溪兩直日俱陪疏首。就路盤亭。餘皆從小路去。宿別湄店。是日行八十里。 初五日。
晴。早發到金亮。別湄一行來會。臨河都廳計日可追到而不來。可怪。午点于龍仁縣。到官安店。遇雨止宿。是日行八十里。夜大雨。 初六日。
雨。食後油衣發行。步踰達陰峙。午点于新院店。到御營曲。聞嶺南返喪才過。認是馬鳴洞權季玉喪行。金誠仲以居隣之誼。急馳追問。而金仲賢出錢五戔。疏首丈亦以二戔付送。李元振金誠仲各賻數戔。而權天經以馬夫生病。落留新院。客地撞着。其愁可念。以前津風濤。難於犯危。仍止宿。是日行四十里。 初七日。
晴。早發。到沙坪津。積雨餘。漢水漲溢。乃分乘三船。梢工索船價甚懇。雖極可駭。而急於利涉。各給一戔。旣濟。登江岸上亭閣。俯臨漲江。極目浩襄。而有雨意。未能少憩。仍發促鞭入城。才到館。又雨下如注。是日行二十里。入泮後。疏廳未設前。疏首以下。勢將各居私主。而日候疏首而已。而疏首丈舊主人貧甚。無以供奉。遂移于湖上館。而與疏色同居。兩直日爲侍處計。盖自發程十三日入城。踰嶺以後凡九日。無日不雨。無人不病。而疏首丈衰老氣力。還勝少年。能堪泥路鞍馬。未見添憊。一行之慶。孰大於是。大事順成。可卜於此耶。午後李承旨晩運來問。柳別提致潤李承旨彙濬朴判事齊淵安進士行準李進士晩起李大雅中建李大雅伊在李大雅深在念在黃大雅在翼李生員秀榮敎榮趙大雅秉薰李校理啓魯姜校理夏奎姜正言{金+耆}權正言魯淵姜進士文永李大雅大在權進士益和金大雅億銖洪碩士起瑞起赫來問。而皆言疏事似不量時宜。蓋近世習俗。勿論爲賢爲先。凡營事。必先周旋懇求。見可成之路而後。始借儒論。以文之者。已成難醫之痼矣。今番之擧。本不出於乘機見可之計。而只山野迂見。以爲新政之初崇儒右文之治。若是其可觀。則儒林抑鬱之願。或可以見伸於呼籲之日。故敢此相率而來者。所恃者公議也。來見太學以海上事。一番擾端後。掌議虛位。謹悉無可得之路。且屛山儒生。無搢紳章甫。四遊宣言。沮戱百端。京中知舊之可有公論者。幷被阻撞。無意開口。各道結摠。保額之令。又未知如何究竟。姑無所於事。只聚首以待。而要之是關係斯文之運。豈人力所可能。以成否之也。第俟掌議出後。通諭太學。爲請謹悉伏閤之計。而此亦無期。可鬱。 初八日。
乍晴乍雨。各修家書。還送人馬。而水路泥程。爲慮不少。食後金進士濟源安進士行準李正言基東金大雅基洙黃碩士在翼李生員相牧來訪。午後李承旨能燮來問。略言疏事而去。金大雅濟寅李進士庭德金進士一永李正言晩松權持平翰成裵持平相奎金進士錫輔李大雅炳秀鄭大雅南容權大雅孝淵李承旨彙濬李承旨晩運安正言致默趙生員根永金進士奎應李大雅中建權正言魯淵李進士璜周金碩士鐸來問。疏首丈言于諸儒曰。疏廳雖未設。而知舊之來訪者。不可不一一回謝。而異於近時科場追逐尋訪。亦相勉之如何。 初九日。
驟雨而止。李正郞錫宙來見。盖同舍。而入直始出。李校理晩耆來訪。而日前新蒙除恩。相面尤可賀。趙大雅秉薰來見。適時間隙。從容說擊錚事顚末。令人欲涕。本事大有可望之端。七日誕辰赦宥時。可蒙恩{雨/方+市}云。斯文之慶。握手暗賀而罷。李生員邁秀李正言晩瀅安進士行準李承旨晩運李大雅深在姜正言{金+耆}朴判事齊淵李校理晩耆權正言魯淵李大雅念在李猉麟佑三黃大雅在翼權進士益和來訪。 初十日。
雨。食後金進士一永安進士行準權進士孝淵趙大雅秉薰曺正言錫萬李大雅大在權正言翰成李進士庭德李大雅敎榮黃大雅在翼李承旨彙濬宋正言奎灝姜正言{金+耆}李正郞錫宙來問。夕後洪掌議丈入來。而中路雨水。費經艱苦。老人行李。追聞猶慮。幸不添。可賀耳。 十一日。
雨。食後姜校理夏奎來訪。而間經感疾。數日相阻。來戱以强巾出入爲釋泮友疑沴之惑。相笑而賀。李承旨晩運傳喝于疏首。速請諸員。盖其大人居昌丈移拜忠牧。而泮中古例。有一場會食。故以今日施設故也。俟午後罷會。疏首及四五人。往見而來。 十二日。
雨。掌議進士李庭赫有故。不能來紹修道會。以進士洪壂。代望改書疏錄。入泮後。或有加添改錄之論。稟于疏首。疏首曰。花府草錄紹修正書。皆是鄕道內長老之所爬定給送者。吾輩謹奉■(而)以來。而雖或有見漏之嘆。加減改錄。亦所不敢。只依前錄。更勿他言如何。僉議亦以謂然。泮中知舊。鎭日來會。在時到錄。故緊說話外。不更記於日記中。午後金樂後入來。 十三日。
晴。李得魯入來。而中間備經雨水。丹陽以後水路。不能騎行。還送人馬。乘舟順下。而到北倉灘。碍石舟破。幾死僅甦云。追聞猶懍怕。況當場危㥘者乎。萬幸萬幸。 十四日。
小雨。李獻可路憊。不能運動。疏首及疏色丈。親往問之。疏事入泮後。幾日無所猷爲。而相對閒浪。若留館科儒然。極是悶鬱。議或有本孫出見數處。爲探知坊外之意。而疏首主見。本不欲出送一人於坊外之意。只待留泮。朝士之恢公於某某知舊。以爲公議之次第融會。然未知末梢之竟如何。而外間傳聞。不一其辭。皆不可坐信。而要之無可成之路。嘆悶嘆悶。 十五日。
雨。孫進士友永李大雅能華來問。以換錢運來事。送人馬於席匠都家。不遇主漢而虛歸。李承旨晩運來傳坊外所聞。大是憂嘆。然豈容人力。第當靜而俟之。以觀下回之如何耳。夕後聞文五令蒙除兵議云。可賀。 十六日。
晴。食前金進士秀直黃校理仁夏來問。 十七日。
晴。金應五丈以瘧症挾發本病。委臥大痛云。往疹〖診〗。甚悶。 十八日。
乍雨而晴。午後李生員錫謨李大雅兢淵趙進士錫龍申進士成樂來問。兩進士皆居齋中老成人。言疏事。頗有理。可欽。丁進士達敎來訪。夕後聞溪上疏色入來。金仲賢往見。得繼孟書寄來。極鄭重牢確。不爲流言浮論所擾。還戒此中或値解散。深爲嘆服。聞北村儒通來抵館中。更以海上事。無倫悖辱。罔有其極。而以明日定會于圖畵署云。未知釀出何等禍變。而令人骨戰。此豈一二儒生之所擅出耶。必有所以然。憂嘆無已耳。 十九日。
晴。朝前疏首以下往李士■(賓)實五叔丈舍館。相對憤嘆。略論鎭防之道。而無其術。嘆何可言。第觀下回之如何。 二十日。
晴。金奉事熙永朴生員海明來問。今日爲大政。聞泮村諸搢紳。會于一處。爲見政目之計。無一人來訪。未知幾人能免落莫否也。食後聞柳監役蒙點除河陽。疏首以下。出見相賀。各付家書。圖畵署會集。仍不解。聞大院君招去守僕。問近有何事於館中以發端。分付曰。永恩府院君之世。則渠輩不敢如■(是)何。而以吾近豫朝政。而有此起鬧耶。以此意告于館齋諸儒。無相應動。勤業靜處云。大可鎭囂。幸幸。 二十一日。
雨。圖畵署會儒。聞百餘員。而聲言疏廳文通於太學。請出掌議。急送謹悉云云。其意未可知。渠輩亦慙於無端聚散。爲此塞口之道耶。然亦不可釋憂耳。 二十二日。
晴。丁正言集敎權大雅必億來問。聞大院君見太學守僕所告防外通文。問何以應之。守僕告以無答還送云云。曰善處。吾有所送言於圖畵會。齋中安處云云。可因此無事耶。幸幸。 二十三日。
晴。鄭生員春燁來問。趙舜歌來言。俄往吏判金炳學家。見有一武弁來謁云。於朝間。以大院君分付。往傳于西夾門內疏廳。盖圖畵署會移設於其處故也。大院君之言曰。若果義理之不可已。則何不於當初復官爵之時。出一言以遏。而今乃於十餘年後。爲此紛騷也。不過以永隱府院君之棄世而然。汝輩自以謂仁顯王后之忠臣。則吾其爲何如人也。任意爲之。吾亦有可爲之道云云。會中可謂戰恐。而大院君又分付各道界首主人。若有疏廳事。收斂守令錢之事。則汝等爲先刑治云云。彼輩不得措手。出便利錢五兩。僅報其急債云。此等舜歌之親聞者。可無餘戒耶。若然則大院君之恩。儒林可感耳。不堪暑。少輩與儕類。暫風于東夾門。 二十四日。
晴。聞自磚峴有鄕便。疏首付家書。疏首以下。會于都廳所。泮中知舊。來話消日。 二十五日。
晴。張大雅原相來問。朴判事要請泮中諸老成。爲擧風東夾門樹蔭下。疏首暫往而來。 二十六日。
晴。李進士晩起來告歸。爲覲忠州下車之行。而來月念前上來云。 二十七日。
晴。暑熱亢盛。而主館皆是墻面。且蚊蚤甚於鄕居。老少晝夜經過。極是難堪。而老人或有終宵不得睡之時。慮悶慮悶。有人以姜承旨蘭馨之言來傳。大院君方怒嶺疏。問疏首姓名云。慮或有事。疏首笑曰。無理之言。不必信。自有上疏事以來。未聞儒林請額。而反得刑配之罪。況朝家之待吾先生。待吾士林。豈如是乎。設或得罪於來頭。不可爲風聲所動。遽自解歸云云。 二十八日。
晴。疏首以避暑。往次于都廳所。終日而還。 二十九日。
晴。疏首取居處稍寬。欲移次于都廳所。而旋以多小難便。姑止。 七月
初一日。
雨。發行後計。已兩易月。而本事無所下手。多員月廩。坐費半千。令人悶嘆。終日雨不止。足慰農望。而旅館愁殺。政爾難堪。但暑熱少解。可幸。 初二日。
雨。權禹必以私所觀。往見禮判李宜翼。有爲此事酬酢。而其言頗若有周旋之意。然時輩當面之款。盖不可深信。不必把以爲做事之機耳。 初三日。
雨。大院君昨因柳參判厚祚。傳語於趙舜歌。以玉川事。不可成云云。盖力不能制趙閤執異故也。舜歌爲告哀情。出門形神。便若死人。令人釀涕。圖畵署會。聞又更聚揭伏閤日在今十五日云。此事亦竟有成就凶計之慮。憂嘆憂嘆。 初四日。
雨。 初五日。
雨。 初六日。
雨。 初七日。
大雨。 初八日。
小晴。 初九日。
雨。 初十日。
晴。兪承旨世煥來坐磚峴。要見湖溪數員。盖欲入來疏廳。而惡被一邊指目。爲此中路要請也。從叔父及湖丈仲賢出去。從叔父欲余亦偕去。而無雅分之人。且猶坊外貴人。何事於屈己進見耶。辭止。守房室靜坐。甚適意。看讀書錄一過。心經已於昨日了看。故欲借看洪衍於海上館。而姑未指來。且抄冊中晩修錄聖路一篇。似有益於群居鬧場。故先試之耳。夕時磚峴一行入來。兪承旨終日穩語。而前此仲賢及湖丈。往見於家。有所言托故云。往見李南原導重。爲周旋於大院君。頗心許之。然其人老昏。未知果不忘耶。兪又言。本孫欲傳納文集一帙於大君。而無路可達。令監可爲蟠容耶。則亦許之。仲賢可持一帙。受余簡。往見南原云云。其意盖因此爲引進大院君之路也。從叔父拘於顔面。不能辭却。答以不叶吾心。然非吾所■擅決。往議於一行云云。而來余告。凡今日疏事。有關於義者。雖諸議或有枉尺之意。凡員亦可以禁之。況叔主於此等不叶心事。亦不爲斷言。而推之衆議。已令言者。窺吾之不嚴。且不一之見。欲速之心。若欲一齊就經。則其以衆論之如是。而曲■終耶。夕後往都廳所。略言從叔侄酬酢之事。爲更無雜論之計。坐中默不應。而公伯謂兄每爲上等論。而吾等每出中下道理。然空費久留。子孫之不效誠力。非今世做事之套。吾見非異於公。然似不免膠柱之譏。因笑而罷。 十一日。
晴。 十二日。
晴。 十三日。
少雨。 十六日。
食後坊外儒生伏閤。大院君命政院。卽奉入。而分付院吏曰。儒生幾人。隨入。汝等勿假借云云。其入闕儒生五人。驅督疾趨。便若呈訴邑民。終日不使讀疏。丨之庭下。冒雨不許避。至昏時。始使上堂讀疏。而院吏四環督急讀。門將閉矣。儒生不能守魄旣讀。可謂逐送。其明日。又使受批。而終日暴立於政院庭。至夕後出給批。其受辱無比。而批答則畢竟有不合意。盖大院君專不識文字。而主文者是囮圭。故終置于於批旨之中。可痛。是日李彙炳上疏受優批。而旋以頭辭違格。院啓請推告。將二都目不得擬望云。盖此人上來凡幾月。不得一番付職。故爲此熱中之事。反被推告。可呵又憐耳。 十七日。
聞掌議將入來。治館學疏。風聲甚壯。而終日不見會。似爲見儒疏批下後爲之耶。河陽叔主昨日爲定擇發行之日。而錢路不通。凡百了刷。無以防便。竟退以今日。而又不得發行云。可悶。 十八日。
坊外疏批。始得見之。雖似無慮於生事。而旨意頗險。可嘆。聞館學疏見批後。有退待誕辰後爲之云。似食㥘於停擧。可笑。自伸釋之擧後。三司及時。原任箚啓。連日不止。屢降諭敎。勿煩班布。而終不停啓。是日東朝傳敎。大下未安之意。而命廢水刺床。大殿亦命退水刺。卽刻招入三司。親出立宣仁門內政院近地。使之卽爲停啓。班布宥釋之文。闕內風色。暫時冬寒。三司皆若經病云。河陽官號今日又不得發。傍觀踔悶。 十九日。
河陽官行。始得錢百入手。略報諸債。泮中會次八兩。疏廳三兩。學齋四兩。吾叔侄十兩。湖丈及公伯士瞻仲賢希民德祖氏皆給一兩。大爲生色耳。川兄所托累告。竟不如意。此布一匹。以四兩五戔貿去。而上官後幷餘錢上送云。臨發不得煩請。盖易於空施。而難於報償。是人情通患。可悶。科儒漸入。居處俠窄。方俟磚峴發行後。移所於其處計。 二十日。
晴。聞平安道金英默以獻納因辭職上疏。論坊外儒疏事。請洪在範以下五人竄配之典。而主代綸旨者。固辭不製進。大院君自爲之以進云。而所請依施。 二十一日。
以洪在範等竄配未卽擧行之罪。罷出刑判申錫義。盖申以不可擧行之意。直告於大院君。大院君厲聲使遞職。申也。退草疏未及半。而自內已罷出。代出金大根。卽爲擧行。而五人分配於甲山長鬐碧潼武山等地。其下三百餘人。停擧次刊名。揭于太學。令人一快。然聞彼輩逞毒之狀。似不寢熄云。可慮。而被配者。或有八十老母。或貧窮。無以裝行。銀首作注下云。又一可笑也。 二十二日。
晴。嶺南科儒雲集。而擾汨一倍。難堪苦悶。家間諸行。尙未入來。中路生病。可慮。不能忘耳。公伯兄館設器機裁試紙。爲諸從紓困計。以一筩紙。往借諸手裁來。而若所料中不盡來。則雖還賣於知舊中也不妨。而但勞費心力。可恨。湖丈自入來後。意卽欲出見坊外親舊。而牢告不可之意。僅僅扶止。今日食後。往渭陽館來見。已出去。從叔父欲止之。而不見聽云。極爲未便。在此行中。居次於疏首之任。而際此科儒四趨曲經之日。不免濕入汚之名。可悶。陽智諸宗入來舍中。又不靜貼。悶嘆。湖丈入來不還。或不犯禁耶。慮悶。 二十三日。
雨。湖丈入來。盖犯昏宿旅舍而來云。尤爲苟且。姜蘭馨頗不冷落酬酢。與仲賢時小異。而見魯陵疏草。讀畢欽嘆。而云俟隙言于大院君。然何可信耶。使伻送文集一帙。湖丈已言給故耳。嶺儒塡街。而入前留者不小。而又此席卷而來。士風可嘆。湖丈一行。只是偶成之事。而謾記之。伏望勿播言使及湖人如何。有似浸譏長者。幸下諒如何。 二十四日。
往見渭陽。新見姜蘭馨入來。姜之言云。自外浮言指我有試望。數日接應。可謂所遭。終夜不得寢。只昧爽時一場睡。如此而何可遣。且此奇必入於大院君之聞。罷我試望者嶺儒也云。大抵世道寧可新。而士習不可革。京儒猶知恥。而嶺儒難使變。豈不大可寒心耶。夕時聞以六日設七夕科於明倫堂。不親臨。可知前日應製之云。爲外方浮傳耳。朴周雲上疏。論科弊及時務。際此西人起鬧。所謂嶺南搢紳幾人不敢出一言。而讓與於西路爲。只此不緊之言干要之事。極是羞恥。大院君見嶺人云。朴周雲近日上梁太賈誼疏云云。未知非嘲語耶。批答則只以所陳切實。當念題下耳。 二十五日。
今日爲誕辰。臣民之祝賀无疆。科儒入來之狀。泮村幾不容。可悶。夕後覓來家書於鹿門館。燈前閱審。雖是哲君幷發之紙。而猶若更得新音。喜可知也。聞有傳敎解繹停擧及定配疏儒。正是三日事。 二十六日。
朝前隨衆。入節製場中。內庭已自昨夕設雨傘。守接無餘地。此又前所無之事。而嶺儒創始者。應春輩入門。僅得片地於槐木下。初甚遙遠。晩後坊外士盡入來。皆坐於門外及碧松亭。大抵場中甚於庭科云。試官至午後不入來。多士見困。亦設科初有。日幾斜。試官入來。命官弘文提學曺錫雨。收卷官都承旨趙秉協泮長李云。題出導迎和氣祈祝長樂。擧場皆不知解。以時象近日傳敎中語。含糊製投。出見李元振。近日借見太學所藏正廟文集。其中長樂歌。有此二句。渠則知解早呈云。可有望耶。盖正廟祝慈殿。而慈殿所居宮名爲長樂。故近日東朝傳敎。有導迎歸福之祝。故今日題爲報答云耳。士子則盡入於場中。泮村朝士。又以伺間隙。散出坊外。從叔父終日不得見人。甚寂寞遣日云。伏笑。 二十七日。
朝前泮村人來。傳榜目出揭館壁。三下一人。次上次下合百人。而十人付初試。九十人入賞格。而嶺人則金山呂有龍榮川全氏一人爲初試。入賞格者。寧海中人二春陽權氏一人云。而不得目見。不可詳知耳。京中徐相朝。卽廉淳之子。而方在北部都事。而見二張入闕坼封發覺。罷所帶職定配云。可笑。 二十八日。
自朝前大雨方始。爲明日場中。大爲愁痛。試望尙未出。未知誰某爲之。而要之南人不出。姜李二人云耳。朝前白洞下人。冒雨告歸。盖與應春同行。面熟者。水谷下人。不時付送。忙修家書。而不得詳奇。可恨。 七月
二十七日。
大王大妃殿傳曰。書院鄕祠之設。或以道學節義。或以勳業事功。無非後人尊慕酬報之誠。而法施勞定。勤事捍患。實是事典之所當擧者也。然而疊設私設之自有禁制。慮其瀆濫之流弊也。冒禁建設。近來尤甚。閑丁之投托。雜流之憑藉。貽害民邑。種種不一。思欲痛加釐正。屢◘(筋)修上成冊矣。今雖齊到。而詳略不等。凡其疊設之可撤。今當斟量裁處。而成冊之。尤甚疎略者。有難憑考。自廟堂或參考禮曹文案。或更關該道詳報。爛熳商確。斷以禮制。其有其撤。畫成一副規模。斯速稟處施行。俾無瀆褻淆雜之弊。晩後得見。未及謄付於前便。 二十八日。
夕應春子長輩。備場內諸具。早食入去。門外哲君。病未同勞。可悶。夜深門不開。慮少輩犯危。以燭火。暫入柴門外四覓。不知所在。乃還出甚閑。取試紙書。下次檢呼名紙。哲君誤換。已書下。不得已引用終場紙。渠甚無顔。善辭慰之。而終不解還。爲之悶然耳。二更試官入來。而臨時相換。閔致商姜蘭馨李世基。本以一所点下。故頖儒之出赴一所者。不知其數。而昏後相換。夜半頖儒。又塡街。還入來。爻象直是風盪水沸。可笑。而湖丈仲賢輩。亦不免越去越來。大不滿人意耳。 二十九日。
早起入場。接中頗寬而近。坐見懸題。亦無慮。而被隣接人侵削。少輩方事爭詰。未及張紙開硯。而書題已揭。卽就之如日。望之如雲。料所在棣華。開卷輒遇。使哲君更覓蓮集云不在。遂寫呈。而筆體太縮。雖不大作過。而文古而筆又怪。何可萬一耶。使直川叔納卷。更覓蓮集。又有一首。哲君又寫呈副件。非徒不能禁。又不免助成。可愧耳。卽先出來。見泮村道上狼藉以外作橫行。尤可笑。夕間聞大殿出次春塘。東墻上下。見泮中外作試紙之橫行。御前別▣…▣【缺】武藝軍。或儒巾。或軍服。遍察于諸舍館。見作必以御命執捉。一二所移刑曹之儒。凡數三十餘人云。而嶺中知舊。亦多入其中。可嘆。場內接。皆令撤出。不得仍舊。明日事。又可詳。 三十日。
聞於晨夜已入門。半場已滿。晩後始聞少輩入去。懇得小地於順興骨川接。甚要地。且隣虎坪接。可幸。食後頖村昨日未及盡捕之外作者。皆入廉問捉去而▣…▣危懍。且聞廉察無數入場內外。試官戰慄。不能考文云。所謂一所越來者。皆束手無爲云。可笑。前此奔走之勞姑舍。昨夜不寐往來於十里間路。皆歸虛勞。令人捧腹耳。平碑又有揭文。以初二日定大會於圖署。若有一人不來參者。非我國之臣子云云。大抵西人之凶頑無比。而大院君之威嚴不能固。今此更起。似是日前輕解配停之爲示弱耳。可嘆。近有頖中奇號。李彙炳以井田疏。而名爲李井田。裵相顯以龜鑑圖。而名爲裵居卜。朴周雲以科規嚴搜挾疏。而謂之朴搜挾。傳笑坊內外云。盖是其輩之自取。然頖風亦可見其輕薄。嘆嘆。食後湖丈來見。昨日夜一所入來後初面。大有無顔之色。從叔父略說責之。言下知悔。自謂亡身云。知此爲愧。亦是不易視冒恥自誇輩。又是老成耳。呵呵。夕後聞移刑曹外作罪人。幷放出。使入明日場中。亦寬典。可幸。聞▣…▣【缺】亂甚危。少輩入去。夜深出來。慮念不可安寢。 八月
初一日。
開東元一先起入去。緩重者。敏於科欲如是。可笑。平明與一接。入去川海。而接皆隔帳。而海湖兩老儒。已入來同坐。可恃於講題耳。少頃題出。明明德新民止至善。爲大學之綱領。而格致誠正修身。爲明德之目。齊家治平。爲新民之目。而止至善之獨無其目者。何歟。別無他。以明新之目。卽爲止至善之目之義。滿場皆呈卷。而聞試官則以下三章仁敬孝慈信主意云。若然則知舊某某接。皆是虛事。嘆嘆。義題則一人元良萬邦以貞。而公伯仲賢諸公。皆善作早呈。頗有可望。幸幸。午後元一人馬還送。而建兄爲順騎下去。盖或有誕辰後繼施宥典。而留待四五日。終無可望。故因便下去。送別之際。一倍矜念耳。午後上碧松亭。上望宮墻內最高處。設布帳。開御座。下臨場中多士往來投卷。宛是太平氣像。坐玩忘惓。有頃下來。入文若館。公伯兄尙未出來。其多率可想耳。歸路入渭陽館。見自副試所出來小紙。疑題擧墻皆謹作。必使善作者。更制入送云。可笑。其所謂主試也。非徒誤作失望。嚴防私路之云。於此見其浪說耳。雖善。豈有可望耶。然少輩又生制呈之意。忍過夕前。又一可笑也。夕▣…▣【缺】副試四通私館。居中釀妙云。可痛。而以渭陽之亦入其中。而不知者疑吾有妙理云。子長自外聞來笑傳。可呵。 初二日。
大雨終日。公伯覓見豊山舍館。其接人言屛山事。將以數日內有判成之機云。陽智族人南叟。昨往南村某人家。亦云。屛山事方成。而臨川亦無不成之理云。數處所傳相同。或非浪說。則得見深處意思耶。夕後聞自內傳敎。申飭促出榜明日。則似不過爲遠外擧子待榜。而發者。又幸其促期耳。畵署會未知其會散。然若是雨中。何可成會耶。未得聞知。可菀耳。聞有應製之論。盖日前試日親御春塘。高處下臨多士。心甚愛好。欲聚士親臨。故有此議云。然安知非外間浮言耶。空留方發之士。費了數日道資。嘆悶嘆悶。應春輩。亦欲以明日榜後。出去陽智計矣。聞此有坐停之意。推此可知諸人之心。好笑。哲君欲留。在東堂時。極是不緊。然千里之外。家人相逢。情思更切。不能迫驅責送。而宛轉之言。似不見施。爲渠非得計。悶悶。 初三日。
雨止。元一早起。送主人探榜出外。若無心者。其欲如是說。渠奉嘲之餘。作一呵呵。主人來言。方以食後出榜。下人▣…▣【缺】奇隨所聞記置。而如疏事。則所傳尤不可信。來見京。非耳聞目見之事。則不可信。伏望勿以播傳。如何。從叔父有聞輒信。悶悶。 初四日。
晴。科榜昨日畢出。而落榜擧子。太半發去。擾聒或可少減耶。應春子長景達及哲從。爲觀東堂留在。直川叔獨下去。而隻行遠程。殊可念。而幸伴川■(前)河諸行。差爲慰釋耳。鄕儒次第送別。羨嘆之情。若商裡見歸鄕者。還情好笑。付家書。 初五日。
雨。念親族知舊。跋躡之行。不贍之資。進止俱難。爲之愁悶不已耳。聞科儒中見屈者。聚會于平碑前。以試官之誤点。詩韻方呈。毁于備局云。不徒受落訟。稱寃之譏。風習之壞敗。亦係憂嘆。大抵湖南西儒生主之。而北村新進少輩慫聳云。全由壯金檜鄭豊趙諸大族之見闕故云耳。 初六日。
晴。科擾稍定。朝■(庭)廷亦少事。不可不料理疏事。而姑未知如何下手。疏首以下會于都所。日前金都廳入館齋。進士李濟炳言。大享時。掌議入來。自疏廳。前期通文于太學。請謹悉。雖不得謹悉。而大院君必聞知。可探其意之如何云云。故是席或有通文之議。疏首曰。近來謹悉。已不在掌議久矣。且以萬無必得之事。而際此傳敎。才下廟堂。方擬處決。而未及設策之時。遽以通文投抵太學。則守僕必卽往告于大院君。而易致激觸吾意。旣俟至於今日者。何事也。專爲道啓事處決。而今乃於盡湯之粥。不耐其少俟。恐非濟事之道。若得深處公議。則掌議有無。何關於謹悉耶。或又言此掌議。卽前日凶疏時所出者。吾輩縱■(不)不能出氣力遂之。而寧可借其手分耶。雖得謹悉。非可爲之事。況不在其手分耶。疏首以下。皆是其言。遂止之。 初七日。
晴。聞科儒呈于備局。領相題辭。所失果在試官。而爲士待試官之道。當退俟公議云云。草記請推考試官。傳曰允。仲賢出見坊外知舊。一如前日所言。而紫巖則少俟東堂後云云。似是姑免面迫之計耳。 初八日。
晴。食後太學祭官入去。亦可觀。午前聞習儀。從諸伴入觀。沒無模樣。而所謂禮節。只聽守僕指敎。升降揖拜之時。自祭官以下相笑。而若作戱擧樣。是甚威儀。吾不欲觀之嘆。不待旣灌之後耳。嘆嘆。聞居齋進士南鍾遠除北部都事。卽少北。而方爲陽智周賢妻男。科時爲見其甥往北部都事。自徐相朝充軍定配後。已三易差。而南鍾遠亦數日借啣云。近日仕䆠。大槪此套。而無半月一職者。亦出於誇耀執柄之事云耳。監役則下溪後。凡出八十餘人云。從此可知他事矣。笑嘆笑嘆。 初九日。
晴。應春輩與金而遠諸兄出鐘街。貿東堂紙本褙科壯紙及草紙入來。洪進士丈自上來後。無一日寧健時。病根不無深慮。諸論一齊勸送。自家亦欲下去。而以無事空食。不見成否。而又倍費下去。爲大不安。然勢所使然。亦且奈何。以再明日治送計。湖丈欲爲疏事出見姜公。一廳皆不合於意。從叔初不能嚴禁。累告不已。朝前從叔主作小紙嚴峻。食後出來停罷。以辭過有未便意。還悚。夕後聞以十一日到記令下。而公私未判云。良洞李承旨下去來別。而李正季鵬丈亦幷■轡而歸。見甚凄寒。爲之悶念耳。夜雷震甚壯。雨又大注。 初十日。
晴。夜來雷雨。過去無痕。甚是異事。諸君褙試紙甚汨。余亦與仲賢困役。覺是自勞。愧嘆。疏廳錢乏。班料無術云。盖換錢未及上來。而前用已絶。大是悶嘆耳。 十一日。
晴。洪進士丈束裝將發。而轎軍爭貰。未得趁發。以明日更求他軍治發計。而病老還鄕。一日爲急。悶事。食前問到記入場。爲觀渭陽入門。出去磚峴外月近門前。無異庭試時。而進士擧案六百餘員。兼以隨從軍文筆匠。其數不得不如是之多。而科弊之無律。亦可見矣。夕往渭陽館。爲問場中如何經過。書題以養則致■(某)其樂。而■(擧)擧場無遇。呈券頗不虛疎云。而在數之事。何可妄生意耶。聞日前大院君以到記及第。作定閔承鎬趙光夏李姓人合三人。入稟東朝次。詣簾外。先告今番到記趙光夏。不得不區處云云。夏卽趙敬夏之伯兄。東朝答曰。大監何若是也。趙哥及第之不足。吾亦不以爲意。大監何獨急急也。勿爾也。方今一初導和之時。每欲用私於選擧之事。大監何不深念而如是也。必使用極公道也。非徒今番。此後東堂初會試。皆當吾自知爲之。大監則以此知也。聞東堂及第。已有作定老論十五人少論幾人南北幾人云。是何所聞。是何國試也。切不勝介然。大院君無聊而退。閔李原不得出諸口。盖東朝至誠行公。導永國祚之心。至不暇寐。而大院君元來無知識。不知此爲祈永之道。而專欲行其所見。不能上承聖慈之懇懇誠敎。是果何心。實不可知。恨嘆。夜深後聞泮村講生誰人被召更入。未知何故。而夕前呼不而出者云。 十二日。
晴。早朝陪從叔父。往洪進士丈。頰額浮氣。比昨尤甚。自家大談不死之狀。又非寧靜心氣。送者皆慮之。悶愁悶愁。朝間聞到記榜出揭成均館。而製述及第一人。平安道韓致益。講及第二人。江原一人全羅道一人。而卽昨日更招入者。始知事機。則其人無罪善誦。而命官爲其■(須)須京儒强抑呼不。其人下坮石而出曰。生無罪見屈。直欲痛哭云云。少頃。自大殿下敎曰。俄者其儒生。何不給及第而出送也。命官起伏曰。彼不矣。答曰。吾見善爲。更爲招入云云。故卽召入呼新云耳。韓致益卽平安道祥原人。而年七十二。本不來參科者。而其子留京。適見到記設試。以在家之其父名。代入製呈。而被選後。方走人爲邀來之計。而忽有入侍之令。其子不得已自白。卽爲充軍定配。科變中尤者也。其子之罪。可勝誅哉。夕間尋黃同甫館。見方草策。而自云。生來初手。不習格例。謂是過謙。看所作。似不是餙辭。居在遐鄕。以若才具。不習時文。亦可尙也。傍有詩軸。不免洛下風習。而此則其居鄕舊。尙非慕效紫陌之套。而暫貢戱語。似有知悔意。還悚耳。 十三日。
晴。得河陽官便。承大衙及冊室兄弟書。阻餘快釋。可當面敍。從叔侄。俱以簡軸一周低〖紙〗一南草一斤爲餽。而仲賢士瞻氏趙舜歌許。皆有簡草。▣…▣爲生光耳。士瞻▣…▣【缺】友。出去北漢。爲暢懷計云。然見方困悴。而作此浪費氣力之事。未見其緊也。疏廳始得換餞於醴泉商人。可免苟艱。然無所事而債費。若是夥然。悶悚悶悚。 十四日。
晴。從叔爲謁高陽先墓。午後發旆。泮留儕類。爲觀明日陵幸擧動。來束偕行。沖王天顔。尙未瞻望。遂從後出去。宿於舞鶴峙下小店。軍馬走驅之聲。終夜不止。室又窄冷。不能成寐。玩境苦境。正非虛語。 十五日。
曉起。上山腰。路左通望西城外。通街御路。燈炬錯雜。便是地上星海。東方才明。前陳始出。而連續作隊。威儀凡百。皆云比前倍勝。似是大院君豪銳有助耳。大院君乘平轎。衛率三四百作隊前去。李載冕嫡庶兄弟。具軍服。極侈至。在中隊次去。大殿。白笠白衣▣…▣【缺】。到山下。易乘玉橋上山。而前軍可謂坐行。後軍高荷平衡。如盤水小心愼之狀。正是一步。心在一步者。使從後卿宰能用此心。以扶持國家。則何患於艱險耶。轎窓洞開。咫尺天顔。仰瞻甚熟。幼沖玉貌。卽欲愛携之心。油然難禁。益信秉彛之不可誣耳。後陣盡去後。路始通。遂與同行下山。買羹飯饒飢。皆欲盤遊近地終日。更觀還宮威儀。而余則苦困不能堪。且一番瞻仰足矣。更有何觀。與從君先入來。午後從叔父還旆。而患泄數差。以兩時供新稻米之害。悶慮悶慮。入來路左觀擧動威儀。而時値乘轎下帳。未得見天顔。恨悵不已。而又見軍官一人。墜馬項折藁屍。路傍之狀。慘惻不忍云。坐聞亦欲身粟耳。趙舜■(欽)歌又欲擊金。午後出去延詔門外。恨不少遲。余何爲見其後耳。▣…▣【缺】來見。承聞外從林馨參鄕解▣…▣【缺】。而左榜無可得之路。鬱嘆無已。觀擧動時。見畿營門樓上。四垂雙喜字珠廉。簷端揭靑緣白布帳。如轎子靑天。聞是大院夫人諸姑婦母女及緣査內行。爲觀玩次出來云。想其簾內從觀之心。其榮喜可知。聞還宮時。受水羅於此樓云。似爲榮供之意耳。聞趙得林之庶子。竟死於獄中。皆云合罪。盖大院君知國事後。所殺人已過千數。而皆■(皆)無非其罪者。如近來平安全羅某邑吏十餘人。要得吏房請簡。來伏京中者。大院君知之。幷收囚死之。此後。則邑吏請簡路塞。不敢入京云。亦是可爲之政。然殺人太無難太多數。非美德。且自家。則又不免行私。或有付托於邑宰之事。而不過禁塞他門之意。豈能永革時弊耶。爲時悶嘆。京畿監司支供大院君內行。費二千餘金云。亦係求媚之習耳。聞自兵曹賜墜死輩▣…▣錢百兩。給其子厚料軍差▣…▣【缺】。可慰其寃死耶。元一仲賢。至暮不入來。方慮念之際。仲賢夜深後。僅得入來。而又失元一於門內。以若不敏。何能免夜禁耶。慮嘆。 十六日。
晴。晨夜元一來叩門云。爲軍馬所驅。還出門。過夜於旅客。家人更後入來。猶幸其免於禁軍耳。德祖戚丈遭其子婦喪。訃使來到。客地情境慘怛不可言。欲卽發去。而左右挽止。以明晨求馬治送計。 十七日。
晴。沙村丈將晨發。而馬貰四求不得。余欲以留馬騎送。則疏廳又不肯。盖空饋數月。而日後或有用馬之時。出倍貰出入甚無色。不能遂己意■。可恨。自家亦欲出門外。或中路得順歸馬以去。故給行資十五兩。似無不足之慮。送至磚峴外。臨別亦一惡境耳。食後河陽官行到。見衙書及君書平安字。可幸。而科榜之沒落。令人寒心。然係是在數之事。何必作恨耶。午後安基榮注書來問。甚款可感。安注書言。海州首陽山下。有淸聖祠。卽夷齊所享之院。肅廟朝賜額者。而其州儒生。以將追享讓孝兩大君治疏。上來。桃洞以爲非時宜。始欲使之還歸。而近聞姑使俟觀機。留置儒生云。渠輩所欲爲者。當前則或爲啓路之道耶。鄕傍中金姊兄達民氏。極爲神奇。而金公伯父子幷參。尤是異事耳。姜國輔出外。而來傳某【缺】川疏事。金炳國欲逞感【缺】。而大院君有聽受之理。又生一敬。大是運氣。若然尤將奈何。大抵古今島。彼家必欲使無還云。亦係憂嘆耳。然流言。盖不可盡信。適有河陽便來。使立促。未及上白。以此代呈。可下悉耳。 十八日。
晴。河陽官伻晨發。修付答書及家內科行書。應春欲觀一所試。而嫌於分場。要與之偕去。余之所謂觀科。不過是從衆之意。而榮了一步役。則非志也。且念科具相妨於一接者。分所則似兩便於當日役。因勸之勿嫌出去。而渠輩終有不安於心者。以余居長而短於技故耳。還爲笑呵。午後得見傳敎。以更勅道啓畢到後處分也。盖已設之院。無存撤與否之敎。而只嚴防日後更設。及軍額結數。無過定限之事而已。則大院君亦深量己見之不可行。而爲此杜後之策耶。此後。則疏事始可着手。而坊外內知舊。亦應小釋㥘。幸甚幸甚。 十九日。
晴。科場隔夜。而奔競之狀。直是夏廁蠅虫。盖東朝至誠■行公之旨。在廷者。不能承奉深處意思。科儒之候臭者。已先探知。故數日內奔走爻象。無異於前世道。而無憚行意。還有甚於前云。悶嘆之心。正是柒婦之誠耳。四五日前試望。皆選文藝之人。如申曺兩錫禹居首云。一日之內。忽皆見落。以朝廷之最不文者李最膺韓敬源爲二所上副。沈承澤金世鎬爲一所上副。而無一人公出云。可笑耳。疏事。文五令來傳。出見尹正求參判。受從近一言於大院君之議。見文五令氣色。亦自擔當之狀。有異於前。或因此發力爲樹功之計。則甚幸甚幸。將以科擾後。發通太學。請謹悉計。而掌議未出。是又爲一節拍。奈何。 二十日。
晴。入東堂場中。論題則造書契論。公伯元振諸益。皆會一坐。而無可立論之料。只各做說納。而出疑題。出見有可觀。而亦非生受者所可明釋耳。無論某文。何有於落榜耶。一所則聞井田論。而應春遇古窩遺草書呈云。可幸其除勞耳。 二十一日。
晴。又入中場。賦題欲主千萬年惟王子子孫孫永保民。隨所構納券。而出聞一所。則以嶺南右試所出題出掛。書題之貴。若是其甚。可呵耳。坐聞兩所場內爻象。盖無掩遮。執券搖手。則試官見面相笑。使人受來。夜則甚有呼試官字於網索之外。帳內應聲。又自如齋中。進士之言皆云。濁亂來。亦所初見。新政之初。是甚擧措。憂嘆憂嘆。及弟〖第〗。則■(世)老論十三人午中六人小七北四。而新儒一兩西各一爲三十三人。南六內嶺人。則李判書胄孫肇秀一人云耳。此雖未然。而喧謄所傳。似斷無移易耳。大院君見趙成夏。謂用十三人。趙辭云。侍生之年淺。何以知實才。寃窟而薦用耶。惟大監知爲之云云。趙則欲遵行東朝之意。而不施行。故如此答言。而大院君不知其見非於新進少輩。可恨可恨。 二十二日。
晴。聞南延君延謚在今日。大設宴會。文五令亦爲出去。而借疏廳下人許送之。然終日使役。似甚窘悶耳。食後往都所。所謂李宜益之子直長炳敎者。年不過三十。而觀科次來處東房。■(適)通堂無遮之地。輕擾紛亂之狀。不可暫見。郡爲下來。同館坐見者。脾胃甚好耳。元振仲賢諸兄謂策場不可如初中緩遲。今已附門者甚多云。亦欲使少輩同入定接。雇人夜守。可免遠題之嘆。而述丈曰。近何用遠何害。何事空費氣力勞頓耶。如昨日入去。隨空地坐見以出。無妨云云。老成之論。極叶■■(鄭重)鄙見。遂止之。柳進士鎭彙來見元振館。發疏事。言追缺不同事。擯斥之責末。言屛山事將成。而臨川疏事。吾家之不得參。可謂痛哭云云。似有慊恨發明之色。或見疏事可成之路於某處而然耶。未知其由。可菀耳。疏儒之久留思歸者。無怪於恒情。而見今秋凉漸緊。薄衣經過。鄕田■(藿)荒。俱不得不爲關念。且疏廳費用。亦不可不觀孰是緊孰是歇。而其中節拍之尤甚者。議欲許歸。而余則開口不得。極深躁菀。奈何。夕時場內。雨傘蔥立。世有出來。必欲入去。熊川銳氣。誠甚可笑。而任使爲之。遂與川上法興人。俱入定接於要地云。夜與元振士瞻諸兄。入見場內。雨傘處姑未滿中坮。而無爭地之亂。人情豈緊於小。而歇於大耶。可知其各知爲虛事耳。 二十三日。
晴。早起入場。川上法興法田。皆通接而坐。題出間小學遇二首。而中有勝作之文。而未能的知。誰稿嫌於同人雷同。遂以東嵓遺草書呈。文甚古。而意味則甚裕如。然亦何關邪。一首則世有將書。而仲賢默坐。爲待余手餘暇。見甚悶。世有讓與無吝。爲換瞻兄手。精寫納券計。甚善處耳。余心服愛。急草中尾。未盡寫之。前搆出一頸。草以光世。有試紙。而出來先後好否。實無關耳。洪進士回人入來。兄書知無事得達。病勢亦不加劇。甚幸耳。一所題聞學而時習云。應春輩。似不過。未知何以了券也。在此。則應有三四首。不費困艱。每事不隨順。則終必有恨底出耳。嘆嘆。聞■(聞)錦伯開試場。遭喪奔哭。或云忠淸道。東堂則罷榜云耳。新錦伯已出。而大院君之妻男/閔致九云耳。 二十四日。
晴。科儒次第告歸。應接一倍紛擾。苦惱不可言。應春輩食後入來。所謂策題問以學而時習。而條問則無論語一句。無非如周勃趙括之類。人之無識。一至此哉。從君及諸行。將以明日發去。而應春從兄弟。無一分錢。食債及行費。有四五兩可了。而無以區處。以有疏廳之故。專欲假手勢於余。而疏廳亦無留錢。未知如何治送。愁嘆愁嘆。昏後聞發榜。則在明日還官後。而半中嶺人中某某處。則已私通。知參榜云。濁亂推此可知耳。大院君日前請趙成夏。再三要用幾人。趙終始辭斥。大院君不得已擇其最緊於成夏者。七八人入于周紙。分付中其輩告于趙成夏。趙答以尊輩科數好通然。若以吾眷而入於其榜。則余則曖昧云云。八人俱惶恐。皆不見東堂云。會試則未知將如何云。主人洪伊毋聞將不久云。矜念不可言。 二十五日。
晴。晨聞擧動出宮。而泮中諸員幷爲晨出東門外云。而一番觀望。習知天顔。更無勞動之意。且鄕族發行。方在食後。故不得出玩耳。食後世有應春輩發去徒步跋涉。已極慮念。而旅館送別。尤難爲懷。送至通街而還。從叔父以頃日高陽行。觀擧動時未得見天顔。爲恨。且爲諸丈要速入見。已扶杖出往而留。仲賢使與余後來。晡時遂從中東門去。至甘川野。先去行次。藉草坐松蔭。皆意中諸老丈人陪觀還宮御旆。車馬羽毛則習見。不知爲新奇。而天顔則間旬再仰。愈覺欣愛願戴之無已。儘知外物玩好之爲。不足爲情。而彛衷之根於天也。夕時陪還。自東夾入來■(來)來路。落後入弔舊館人喪。憐念欲淚。因踰來入渭陽館。聞已出榜而前所云云。無一違失嶺南五人李晩奭柳道憲李肇秀姜{金+冕}孫相峻云耳。一所則姑未出榜。而渭陽已罷意無望云。老境屈辱。仰嘆無言。雖曰自取滄浪。而世道則可恨。暮後還。困憊殊甚。 二十六日。
晴。聞一所榜亦如二所一板。而嶺人中權渭相琴翼明似公出。而其外則無父啣幼學者。嶺人五人。張原相金奭輔及上兩人。而一則又少北黃敬夏一人云耳。大抵一二所中嶺儒。則會試作定只李肇秀。而皆嶺營胡爲設試云。可作童謠耳。食後仲賢出去南村。不遇主人。而獨見李承輔及李宜翼。承則直以不欲言院事於大院君前答之。蓋到今朝廷處分後。渠輩無所據辭。不得已直絶之。如是可痛。宜也强許一言於深處。然何可信耶。 二十七日。
晴。仲賢又出去昨日未遇處。大抵近日諸儒皆生躁念。咸欲本孫直往見深處。疏儒某某齊出南村。期於從速決落之計。余不欲以年少折拂老成之言。只從後默坐以聽。所挾者疏首。故私以尊衛之不可非道言之。而從叔父不武。不能嚴斥。本孫亦無定執諸人。似已知之。故言論之際。隱目指意如高調。何用於爲大事。及若然則讀書於鄕家之說。何爲上來營事之言。雖不專名攻之。而似有隱歸處。還覺可畏耳。諸儒終日來議如是而罷。然數件事從叔父雖不武。而必不許。吾見則雖今日罷歸。斷知不可一再上口之事。諸言似不得見售耳。夕時仲賢入來。只見姜蘭馨。姜言屛山事近又有不成之慮。何可更以此事激之耶云云。蓋自他人聞之。則大院君必欲毁撤書院。而滿朝所見。無一合同。物情大忷。故不得已自止。而於書院字。輒生激怒。故雖河上本孫之日問安者。不敢以屛山事仰問。如何云。若然則謹悉似無可得之路。奈何。吾意則爲先發文太學。請謹悉以觀動靜。而僉議必欲探知大院君之意。向後爲之。亦不可知耳。然事之無關於大義者。只從長者處決耳。聞義城官馬爲邀其令來。方觀會試。故有順歸。空馬貰甚歇。權天經多病。難於寒節。念意欲勸送。而自家意欲成否。間同去就。故一元爲乘去其馬計耳。昏後臨川伻來到。得家書平安。袷衣上來。可作過秋之具。然運來幾半歲留京。是某貌樣。直與誤入京留者。同行異情。甚笑嘆。監試會科初聞大院君分排而云。嶺南二十人則太過。十五人則似小。方未知如何矣。日前擧動後。大院君入闕內。自大殿問。昨日擧動時。儒士何其多也。大院君曰。觀東堂儒及會儒留在者也。上曰。然則其冠弊衣垢之狀。皆必是遠外士也。大院君然矣。上曰。然則東堂榜目皆判官參奉有官之人。何也。遐鄕遠來之士皆不入。豈非可憐乎。大院君曰。東堂試自古例以門地取選。故如是矣。上曰。然則進士會試皆給遠儒。如何。大院君不得已仰答甚好而出。始若有感回之意。欲用公■之計。而姑未快決云。可恨。若使大院君因此善端。開導其心。如齊王之見牛。則其效豈止於一鮮治而已耶。可痛可痛。丹城梁進士周汝者率其子。入者來處隅室。而其子童蒙年僅十五。而貌相絶妙。見其安詳沈黙。誠可敎之孺子可愛。且成就早成。試券能自筆云。尤奇。耳目習於家間豚犬。故此等兒每不遇見耳。錦伯物故。代閔致九爲之云。後聞辛檍以西原縣監【卽靑爲降革】卽其地拜道伯。以大院君妹夫故也。金炳學又拜吏判。蓋典洞雖不得干預世道。而於大院君自十餘年前進排錢谷。可謂有生出之功。故大院君恒言典洞則難忘云。而金炳國訓將屢請遞不許。皆是報德云耳。 二十八日。
陰。元一得義城順歸馬發去。甚羨甚羨。欲書家書。而一低十起。似無如意作諸書之暇。悶悶。泮主人來請借馬。其母喪將以明日入葬。喪主不能徒行故耳。 二十九日。
晴。治送臨川院隸。湖丈作南村行。蓋此丈生燥尤甚。恒以守高。無成見過。而從叔父不能無望於其出入之有力。每不欲禁止。甚悶。夕時入來。而吳校理德泳則因擾暫見。謂乘間一言。姜令則謂少俟之外無他妙道。韓台則冷落不甚款云耳。金樂豊來薦龍仁李奉事。方以窮交。緊於大院君往見。或有言路。而名目則南人無不可見之理云云。仲賢與之偕往。見于其直所而來。亦熱門只習面。略言本事。期以出直後更來云耳。聞春塘臺設武試。蓋試擧動時。諸武官及軍官兵馬材藝。名爲胥摠隊科。而不過賞格高下而已。開通化門。結陣通街。終日砲聲震於墻內墻中。想多可觀耳。夕時聞九日製令下。初聞節題議設於監會後矣。以李鎬俊卽大院君之切親者。而作定於東堂及第者。有叔母患爲。不能俟其間之慮。故爲其人急急設科。而初試賞格姑未定數云。 三十日。
晴。與仲賢士瞻元振諸兄入明倫。庭中一隅。弘文提學洪鍾瑞奉題入來掛板。卽大哉聖人之道。才揭。有呈券者或云李鎬俊。而似是甚憎之言。夕時聞榜出傳敎。壯元李鎬俊直付殿試。二人付會試。七人付恩賜。十人入賞格。合二十人。而京外則無一人參入者。可笑耳。午後諸員來會。權遇必丈告病欲先歸。蓋此丈上來後。恒在不健。而終夏患泄。入秋後稍甦。近又以痢症苦度。傍觀方欲其歸。而嫌於自廳先言。自家亦嫌悚不敢矣。今力自慮貽患於疏廳。如洪進士丈有此告歸。情勢可恕。僉議許之。金公伯要余。一邊言。目今模樣。一味無道理。不可膠柱。且時態無坐成事功之道。吾意則一。仲賢似不能動。得了無可奈。則文若叔以傍孫名疏儒中某某員。鎭日出見某某處。以爲成否間究竟之道。如何。余曰。出入者少。而事不成耶。公伯之意。湖上丈雖亦出入。必不如諸人往來之爲見重也。然答以唯諸議之如何。吾何可知也。梁進士辦酒餠進饋。會中體面似然。可嘉耳。 九月
初一日。
雨。朝起。以昨日公伯言。告于從叔父。因言此事畢竟有無成之慮。而一行意見。方欲奔走東西。無一人安坐者。此前何爲笑屛儒之做事不以道也。公伯兄不告於叔主。而私語於侄者。亦已知叔主之不固此等事。而疑侄從傍用術故耳。率一道儒生爲酋。不能嚴其制節。終致貽累。則是豈當初上來之意耶。若然則不如早爲罷去之。爲無我作過。從叔父亦苦於久留無成。下敎云。多人出入。大是悶事。當不可許通。而計無可入。何以爲之。余告以明日發通太學。請謹悉。則大院君旣以有事來告。分付館僕矣。必卽以通文往告。可知如何意聞。雖或激怒於當場。旣疏儒更留不去。則自然有言之者。今則第當直道做去。爲待天數。更何用人爲計耶。從叔曰。如何更留旬朔也。吾意望前無伏閤之路。則罷歸似好。財力不可不觀。余曰。觀機做去不可觀。財力不可計。私悶。伏望勿廣此言。以致懈人意如何。仲賢傍聽。故不能盡言而罷。大抵近來細聞。則大院君之前卿宰大臣。不敢放意出言。只對問而已。所納用之言。皆是下交。凡百周旋非此路。則不得云。此豈可爲者耶。元振謂出入大者之門。蓋所不可爲。而下稍如微官者親切處。雖往見通言路。非可謂曲徑。余曰。此則正道乎。斷尤不可爲。是則與僕隸之賤。何異耶。僕隸處豈以儒疏干通也。元振曰。吾不知也云。其意蓋謂我迂恠也。笑嘆笑嘆。疏廳頒料甚鄭。余料及馬喂条。盡除於治送應春時。貸來条十日防便。姑無術欲負債於主人。以待上來後。勘了之計。然貧主嚬眉。亦甚難便耳。終日風雷。極爲愁擾。遠村從妹兄冒雨來訪。昨日入城而來及往見坐致先尋。甚無顔耳。 初二日。
晴。日氣雨餘寒生。冷水洗嗽。頗不好。而無路得溫湯。可悶。食後文若丈及疏儒若干員下來。余言此等事。空坐踰月。待他回核。必無期限。儒生往見。斷不可上書。爭辨亦非事例。在我所當爲之事。不過通太學以觀下回之如何。而每恐未回大院君之意。而先發文爲反激杜後之計。然欲俟回意。則無其人無其時。且凡事不激則不成。假使有激怒之事。厥丈聞性不持久云。或不無可回之道。設又終無回聽之道。則雖不通文。何可坐望其回耶。只當白直做去。幸勿妄生干囑之計。則空還無成。亦無所累於先生之院云云。僉曰。惟在疏首處決。今此議論不一。誰其能主判耶。於是使人盡請疏儒。則皆如前言。從叔父終始持重於輕發文諭者。幸或有周旋之人。得回深處之意。然目今無見前道理。遂許之。乃出通草。買來紙本。以再明日定會爲發文計。元一去時。以見婦禮。納二兩錢於疏廳。是午以其錢辦酒餠以供。仲賢出見吳校理。接待酬酌。頗勝檜桃兩處。而言當乘間備告。而乘間未易。不可以定日云。似實情耳。聞自廟堂議定院制。賜額院假屬。無過二十名。私設則無許一名。卿宰墓奴無一名。大院君之言曰。如此則私設院不撤而自撤云云。蓋畿湖間所謂書院。無蓄財建設之時。則收聚本家。或守令助力以成。如西湖而來後奉享之道。只以假屬幾百名收貢錢爲用。故都知嶺南亦用此例。其言如是。謂無假屬。則無貢錢。只自廢享自撤去。還可笑呵。然以其所近所知之地。則無恠其生憎於書院。而懲羹吹薤多見其不廣也。午後見河陽衙書。承安信。可喜。忙修數字以答送。居昌金基洙臥病四五日。夕時往診。稍擧頭。而形神僅免死而已。見甚悶念。然下鄕志士畢竟所見不得出其套。蓋庭科後仍留京。疏行上來。每來見相從甚好。到科前旬餘不見來。問之。則隨右試官下去。竟得初試。又上來。徒步凡二千里。其何能不病耶。還可憎耳。 初三日。
晴。朝前。士瞻氏以問卜次。出往南關廟。前此數次問於東廟。則占辭云。凡事無奔走干求。以正道固守。則明春可成。有所謂占驗▣…▣引證。濟南士人求官占得此。而或初見某相。則某官可得。其人▣…▣守操。其明年某相敗死於逆。而其人則自得其官云。甚似有理。足以爲戒。於今日之事。占則若正出。而但明春之云。今日必無成可知矣。笑嘆笑嘆。已兩次所占。皆如是。而士瞻氏又聞南廟靈於東廟。望或有新兆。可速成之道。又此出去。可嘆其誠力。而氣脈又似不可誣。伏笑伏笑。大抵此占或有妙中者。年前善山洪永祚出身到門。家食幾月。以免新次上來。占於南廟則辭云。錦衣還鄕謂大吉。甚喜。竟乃客死。金左根相公憐其死。出數百金錢。裹以錦衣。治喪以送。傳爲異談。亦可恠。不可不信。然豈謂關王之忠精英魄。乃此著靈於投錢問術之事耶。是則誣侮關王者也。爲之慨然耳。主人晨起。祈禱於後崗松木下。朝前進餠數色。入京後無錢之食。■(始)見於今朝可貴。而口味變久。不能多食。可嘆。權佐郞翰成以所帶禮郎。奉宣諡命。方以今日出去鏡城地。乘轎建傘。頗得一番好事。見自爲榮幸。然程道爲一千八百里云。衰客寒程。還爲可念也。其人甚恭遜厚重。曾所愛看者。故不無情念如是耳。但從叔父爲餞躬往。則似過於厚。仲賢謂時有渠聘翁。氣味相與隅笑耳。沙月丈又欲告歸。疏廳僉議無甚緊者不妨許歸。然疏儒罷歸之說。又將一番播傳。可悶。而正所謂吾亦從此逝者耳。又何用嘆恨耶。午前。湖丈及文若丈來言。明日通文事而述丈及文五令皆言。不探大院君意。遽爾發文。必生大事。若斷議再明罷歸則已。不然則斷不可輕先爲之云。此言似然。不得不更俟矣。從叔父亦深以爲然。余曰。文五令能自言於大院位云耶。曰。自家則不敢。而將轉請於某某人云。余曰。此則終夏秋所言。而尙無動得一人。而徒言更俟耶。過此數日。則又以勅行在九日。監會退日又迫。無所事而過一望。則通文亦無可爲之隙矣。何以知大院之必激。雖激又何如出大事。不過使之逐罷通文。若有可回之路。則觸出言端。亦因發善諭之道也。無可回之路。則雖經冬無通。必無進言之術。何可必待。不得已罷歸之時。乃以一通爲資歸之柄。不如發文以觀其意。皆無意。只議罷送諸員。留五六人。爲勿限時做事之計。余曰。此則不可行之事。吾從叔侄蟄伏鄕里。規模拙澁之人。雖爲賢之事。留連京城。已近四朔。吾雖不言以過。而中心之惄如不慊。有難爲喩。況今欲爲各便之計。只任之五六員而已耶。間有曰。疏首在矣。余曰。無尾之首。亦有之乎。皆無言。大抵事無可成之路。而議論不一。而常有幸望於文五令及南村知舊之能回大院之意。苦悶苦悶。午後雷雨大作。風電虹亘。收聲之時。似非吉祥耳。聞海底姊兄入來。滯雨未得往見。甚鬱。士瞻氏入來。而占辭畵出時事。戒勿妄生計巧。順守舊見。末嘆歸日無聊。似非誤出。嘆異嘆異。 初四日。
晴。食前。臨河權有樂來見。欣甚。因得家書。承安信。喜不可言。而無論京鄕都無靜地。大是悶事。然直自任地作擾。不爲其干撓所動。乃是處世之方。況同室之間。又不可較。彼無知漸致乖激。下書中似已看下這道理。伏幸伏幸。但虎院薦任之時。似或有商量之事。而未及深爲下涼。伏恨伏恨。食後。往見姊兄。不見勞悴之態。蓋徒■步之行。偶得順便。不費一錢。而五百里不一步。亦是妙事。可幸。文若丈見家書後。私見余。必欲先歸。念其當秋所觀雖多。而目今事体。不可計私以成否。同去就之意。多方言之。使無出口。而終不爲然。悶悶。本事自今以後。則又無隙可探於深處。只坐見科儒奔走之狀。及世道不欲聞之。傳事無可成之望。而此何模樣。通諭事從叔父終不回意。畢竟臨歸之時。今日投通。若有激言。則明日散還之象。可預見耳。悶嘆悶嘆。法興會儒來見。達民亦見到。慰欣無比。蓋來此後閱四朔。知舊見面。十倍於居鄕。信乎民之所止之地也。自達營來者。或言東堂。則元從有可望之端。似以門中分排之說。臆料流言。然近日所聞分道東試。只歸虛設云。或偶參病客之空費遠役。還是不幸耳。監會姑不如大科之定數分定無餘。而似無純公之望。若其無一公出。則又可慮耳。李進士濟秉卽居齊者。朝前來見。言疏事合有一番通文於太學。以觀深處如何意內。而今則又朝家大事連旬。勢不得不俟東會後云云。此則爲我共憂者。而聞於昨日。姜令座大言論責望南中先進之可言者。姜令亦無答辭云。蓋有料量者。意見皆如是。而坐送歲月。極爲悶㭗耳。仲賢出見吳校理。蓋已三數矣。今日則頗致款。而於厥父前。相語尊敬。其父責以■汝輩何不許交也。吳校理卽奉順許交。因言當乘隙備告於大院君。一道疏行。豈可空歸耶。仲賢言辛未宗親敍用疏在集中。大院君若■(不)下覽。則似不無情念。而無路入送。吳校理答云。似然矣。文集及屛銘一部出送於鄙所。則當某條呈納數件酬酢。見非外面云。南村幾處始聞之言。蓋此公在夜出入之客列云。或有力否。其言又云。去湖南試官時。暫告疏事。已有姑俟之敎。未知其間意向如何云。始知前日所言非虛耳。然又必是時客。何可遽爲之要梯耶。夜幾二更聞。大王大妃殿於連日雷聲震驚無比。兩司臺諫卽爲入職事下令。催促甚嚴。安致默不俟駕入去。而繼又下求言傳敎。及三司聯箚分付云。皆云監會或有公道之望。然十日之內。若無自天吏警之聲。則又不可專恃云云。人情可哀。又可嘆耳。姜國輔來言。今日往大院君家。滿堂金玉。渠則隅坐僅問安。而其納聽未可必。坐聞大院君獨語。嘆連日雷震【連日雷震】。其中金貫子一人。竦肩出頭。兩手據膝曰。數日雷聲是豊徵。秋雷退霜之兆也。大院無答言。國輔坐見生憎。越見其人曰。再昨全羅道啓。二十四日已霜降矣。大院君曰。是也。全羅道已霜降旬餘矣。雷震何見其退霜也。數三次還繹不已。其人面赤。不知措躬。【阿諂世道之樣儘活畫】少間告退。大院君不擧視云云。余曰。公之面拍彼言。果無挾雜。而出於公心憎諂耶。畢竟是同一心計。則不必拍打人如是耳。渠亦大笑而罷。金姊兄來話。夜深後歸館。 初五日。
晴。鬣子自夜半始腹痛。初寢才甘。起檢喂藥。多方治療。皆是前日已驗之方。而無一分變動。達曙不得寐。朝來檢視。尤甚腹漲如鼓。糞溲俱索。見者皆云必死。不得已招來馬醫。出藥方。急製來喂之。又湯艾及酒草煮。無數喂之。猶不見效。午間始少止。今則可無死慮。然空費愁擾。極爲憤嘆耳。聞監會試七十已上直付榜目事。傳敎已出云。雖是優典。而此後科場封內。無七十以下人。亦非所以公選之道。杜後之弊耳。權遇弼丈見敗於馬。又病少可。姑停歸計。而只布疏儒還去之名。甚是悶事。沙月丈亦似不安歸。而同此套耳。勅使將以九月京下馬。所以監會之退。在望日也。聞別無可觀者。而猶是大國人物。擬欲出見於門外。然禁人。與擧動時大異云。亦料不必勞動。未知當■(時)日將如何耳。有緊路於深處者。來誘崔炳圭。約以三千兩買初仕。崔蓋備置錢數。以待一日。有人常服來崔館。聞知爲崔炳圭卽云。大院君分付招來。崔答以吾不知大院君何爲而招生。恐不欲往。其人瞋目曰。誰令而聽坐違乎。崔遂隨往。則大院君問姓名。因曰。納錢求官信乎。崔謝不敢之事。斷斷虛語。大院君曰。吾已知錢數及居間人。勿敢欺也。崔乃實告。爲某人所引誘。有罪云云。大院君無他言。送之曰。待我出關嶺營査實後下去。無敢離館云云。崔含劫去。來已有旬而無皁白。遂以日前下去。或言爲數年後。計先此知面而送之云。然似甚談耳。月前有忠淸道居人朴氏云者。來訪而去。曾是來留京城者。而親往來於河陽叔主者。故從叔侄亦待以不絶。今日忽因便付小低云。嶺儒或有會試求路者。此有緊穴。送之甚好云云。謂納於老書房三云。披覽大笑。大抵居京者無非此類。空生食念。爲此欺人之術。而此人尤是誤見之盲。謂我爲可欺以非道者。甚可笑嘆。不足答。而叔主又呼數字倩書以答。非侄輩小腹之所可及耳。手無分錢可用之道。而鬣子夜朝間所費。洽過一兩。皆是負債於主人。亦一愁惱也。金獻納英默來訪。卽前日上疏。論圖署儒疏者也。雖非渠主意而。看面亦甚欣感。且其貌相可愛。年紀則丙戌生。亦早達耳。沈承旨東臣來問。居冶洞者也。酬酢頗款厚。言疏事致悶意云。斯文事豈無恢公之日耶。非徒京中知舊。初見來問。言語亦有情念。可尙耳。從叔父適又入泮。未得相面。悶恨。夕時吳校理來訪。聞其言頗欲▣…▣【缺】。入泮歸路。日已曛。未能長語。可恨。後聞於文五令座。湖丈相對▣…▣言。答云。發誠周章。而勿使廣傳其酬酢。而亦時人行世。或恐見疑於一邊耶。聞會科頗有公道之議。爲切摯老儒。預爲之幸幸。 初六日。
晴。食前。封送文集及屛銘於泥峴吳校理家。以昨日有自家持納於深處之約故耳。此等事機無非靴外之爬。姑未得一言透及卞深處。則未知如何出題。然要之時象無可回之道。則末梢虛歸。固當豫料耳。若有得至呈疏之境。則豈非天幸耶。聞胡勅來到義州。作詩揭板。而上句不傳。有末句傳來云。好句生意在斧鑿。謾自尋或有解意。致怪謂有後日來留之意。蓋皇京今日。則所保無幾里云耳。聞■(尙)向日臺官聯箚。只依謄。或勉進云。而別無新奇之事。天警之下。所以報塞之事。只從文具前例。若是無誠。其可謂不欺天乎。可嘆可嘆。聞沙月丈發去。修家書往見。方束裝撓甚。士實敬休亦將幷轡還鄕。圖署風浪。竟無餘戒。此行則可相賀以送耳。其發似遲午前。故爲下來。而歷路入訪鄭戚文瑞及禹瑞氏。其堂內有初擧者。而禮錢應於柳台館。霞洞發記又來徵。而以已應不給。見我若有欲發明。非印色之意。余以不干言之。然安知非候風末之致耶。可笑。沙海行發來。諸員送錢于磚峴。別懷不佳耳。仲賢爲見紫岩台。而路塞於迎胡習儀陣。中道還來也。非惡事也。齋中進士趙錫龍來見。求屛銘。許贈一部。 初七日。
晴。食前。仲賢爲見吳校理出去坊外。鬣子病小可。而終不生食念。似必有餘症。今朝始喂粥。全不食。而泮館多有死馬。入聞甚爲關慮耳。入泮後幾月不得食湯羹。近日新葍狼藉。懇請主人。始得一盂。覺是別味。蓋薪貴不可數供者。故主人苦不欲。無怪其情耳。昨日政李能燮入大司成末望落点。嶺南人己巳後始有之事。與桃洞副提學。奇壯無異。聞安致默上疏。請行公道於會試。而批旨姑未下云耳。午後得見嶺榜。從兄主中參。欣喜可量。更恩之際。此奔競之中。萬無行公之望。則老脚殘錢。虛費心力。還爲不幸。但千里外相面。豫爲欣幸。初聞嶺伯於東堂。則門中排選。而元君入指目。故或慮其偶參。而他從則不入幸望矣。聞榜後又是料外。而以虛勞筋力言之。則無病者當之。亦差可意也。仲賢入來。而吳兄其間再三次往深處。而無隙可言云。蓋其家近日應接尤甚。軒貂金玉堂室量出。雖緊客無霎時私言之隙。未知何時可有間迄耳。嘆嘆。韓啓源以禮參移大司憲。其從敬源又拜禮議。南村者類。去益驕恣。甚可憎耳。洪翰林遠植來問。年僅卄二。而容貌極妙。大院丈之一寵云耳。以明日胡勅入來。邀觀於洪濟院次。諸老少來要早出。從叔父不無意思。諸人罷去後。向以逐伴遊玩。非長者行止。頃日擧動。則生爲臣子習見天顔。情義當然。似無不可。而彼胡使非志士之所忍目。況今日情願未遂自己耳目之娛。則無一遺漏。又非道理。願止之卽。許可止之。鬣子始喂夕粥甚甘。可無慮。而皮骨相連。無可復前之術。又一悶事。然泮村馬死幾至五六匹。視此猶大幸耳。 初八日。
晴。食前泮村諸知舊老少齊來。將出去要速。從叔父辭以困悴。吾與仲賢則辭以有所觀從後觀勢爲之以送去。慮或去者之爲聊耳。從兄主計以卄日前入來。鄕間應不聞廢講之報。則行程似不爲遲。然以若窘手。何以辨備發來■也。吾鬣若於當初下送。則騎來爲吾下去之道。正是兩便。而追悔何及耶。心欲於從兄主入來後。代留疏廳。余則將排衆下去計。不緊之科。於余甚緊耳。安疏批答。所陳無非切實。深庸嘉尙云云。此兄文辭有餘。而見世道紛爭。出自中情。正合可言之事而言之。可尙而不可嘲。而泮村之不能自立之人。方爲其子弟鑽穴之類。還生猜憎。同歸之裵居卜李井田。稱以安公道爲嘲囮。世情之猜險。可畏也。自七月科儒上來後。無一刻不應接之時。起居之勞。不勝其苦。而今日適得無人。從兄弟放意閒坐。甚可樂耳。李宜翼通望吏判。公論歲前實点。歲後卜相云。宰相之才。亦不難矣。笑呵笑呵。疏廳錢乏。方頒料極艱。自安奇商人處。換來二百貫入到。可幸耳。見高査丈。前月卄九日遇世有於兎棧。而別無他頉。此去家鄕不過二日程。其無事入達可知。爲幸無比。所托衣封。亦云付送。可信抵耳。適得間靜。思欲於歸路。哭保村大小殯。而不可無訣文。搆數行以置。姜國輔來言。爲其弟會科。某條求囑。庶得有可望之道。震雷後已有六七分行公之議。而安正言之疏出。而斷■(爲)以公選爲決。某某處受許者。皆勸陳試以待來春云。且言安疏非自主。亦有一處分付。余聞之。甚可憎其不快於安疏。憑戱謂兄家幾世筩科以來。而若是其惡公也。世道欲行公。則何憚不可。乃假手於安君耶。吾見安兄。亦一樹立居此世。以其言暫回痼弊。豈非可貴耶。欲陳季氏科。則以何故也。渠以戱言受聽。而亦似知無料耳。東會亦如是則可幸。而此則雖雷震一年。安有上疏。有不可變動云。而監會行公。又是固彼之兆耳。夕時主人自濟院觀勅行而來。胡使上副各一人。摠官二人。開張嗒九人。廳直之類五人。合十八名。而衣則黑周衣。徧髮垂後。頂着麻乙。上下無分等。形若犬豕。而統衛我國軍馬。威儀可觀云。嘆憤嘆憤。諸行皆不還來。宿門外。爲觀明日延詔門大殿出迎之禮。而入來計云耳。 初九日。
晴。客地重陽。古人所懷。況念家廟節薦應設。而未能與祭。任使病嫂穉侄。罪竦尤深於客懷。仲賢要與登高。而昨日告止。從叔主無聊獨坐。而吾則登覽拂除。又一不安。要俟諸丈入來。有話伴後。爲買酒登北嶽計耳。食後門外諸行次第還來。皆云無所可觀。而空費勞動云。日晡。與仲賢及金姊兄金達民作登高之行。使主人沽酒。珮壺隨之。梁進士父子又從之。登自西夾門。循城垈。上鷹峰山。卽時御■(闕)闕主山界。臨東西而不甚高。未能快目。坐石坮上。飮酒燒茗。移時後諸人皆不欲前進。各自下去。余與仲賢步上後峯。遵城至北靑門。無樓閣。只石門因城通一穴。鎖鐵無開閉。而門板雜揭神像爲靈堂。見方女人使瞽讀經祝願。甚可笑也。暫揭守將直房因行。行到北岳最高處。心若怵危。不能久坐。此蓋爲舊闕正主。而臨處正中。四方均闊。眞主基也。傍見時闕。宮墻內無遮。而偏寄一邊。似不及舊基。不啻萬里。甚可恨嘆。飮茗後周覽四方。東極原春界。南列冠岳諸峯。環拱竦立。西望大海。如白雲堆。北顧三角。來龍削立森嚴。而一帶漢水彎弓四抱。卽一大觀。慮日力。遂下至彰義門。回仰履歷所來處。直是削壁。還却疎懍。始就坦路。由宮墻後路入館。不甚暮。可幸。夕後風雷大作。夜深後雨下如注。而雷聲動城。令人震懍。此何兆像。非偶然。憂嘆憂嘆。 初十日。
雨仍不止。聞大駕早動。往候胡使於南別宮。雖是主客之禮。而偏髮胡兒之前。此豈忍爲之事耶。憤嘆耳。午後。文五令冒雨而來。以南宮擧動時。支應次。出去還入路歷訪。避雨計也。坐談支勅凡節。自闕內需供六時於上副。而每時銀盤床一座式。一日所出。合十二床座。例無還來。爲渠囊槖。數三日所費。已不知幾何。而戶曹庫二十四間。貯布綿紬及白紙充滿。只客一人往來者。爲給副勅次上勅倍於此。而其外別求索酬應。又不可豫料云。論國費應勅之居二者有以也。渠所賻來者。銀盃三事。祭甁一座。香燭幾雙。奠需次銀三千兩外。更無他件云耳。受弔時則自公卿下至罷散官。皆入哭於殯殿庭下後。更於他所宣受玉冊禮。而儀節未知如何耳。河上柳進士居齋者。見李而述丈謂情談。而愚川台向見大院君。問屛山事何以爲之。則大院郡所答。何不少俟云云者。似有慮繼發之狀。臨川疏儒暫爲下去。似好。而述丈曰。旣來矣。何可無所事而下去耶云云。述丈來傳其言曰。此必見大院君亦知臨院儒生留連之事。則其幷入於屛院言論可知。若然則與屛山成否或同歸耶。屛山斷無不成之理。則又不能無幸望云云。此丈略料事者。而或不誤見耶。 十一日。
食後。都廳諸員下來。言前此忠州錢十兩。爲疏廳會話次所送。而其間以不食。似有言說。故爲一場酒餠之供。如何。僉議無不可。略請泮村知舊凡三十餘員。設酒餠以供而罷去後。疏儒留後。金進士發論疏事。姑無伏閤之期。多員所費。亦不可不觀緊。故願歸者。不得不許送云云。坐中無願歸者。余始告以無益於事。而私情不得不先歸。今此諸員。皆有家事代任之人。而吾之所處座中之所共知。若無一員許歸之事。則不敢自■我生意。而旣有簡送之令。則事情無如我之切迫者。請得許。文若曰。兄則萬不可先去者。而只爲阻遏他人。使不得送歸一員。更勿開口也。諸員一辭不使發言。從叔父又甚不可於意。悚惶而止。然要俟從兄上來後。爲斷定計耳。仲賢出見吳校理。謂待勅擾治送後。乘間言之。而歷路有李參奉云者。曾所見托者。入問則言。日前往告以臨川疏儒連月留待。極爲悶然云。則大院丈答以屛山姑未得施行。而豈可先出耶。故不敢更言云云。洽是屛儒項中出。蓋此人家。亦以緊路爲一邊人。朝夕問安之所。安知非從中弄術耶。是不可知。若果實有此言。則不激而順聽。與已成命之屛院。爲較先後則也。是非大敗事耳。俄間座上。又有疏儒輪次往來於知舊。爲緊懇動得之議。從叔父又不可否。心伏悶恨。而不欲橫斷長者之論。故默不與議而過。胡勅見大殿相宇大贊云。壽可九十而九年連豊云。若非浮言。則東方億萬之慶耳。文五令來誦冊封書云。見朝鮮國康穆王妃妾趙氏所奏。以爾聰睿。國人願戴。故以爾爲朝鮮國云云。中間戒以善治。終以爾其欽哉。無替朕命云云。三代誥命之套。是豈胡皇可僭者耶。憤嘆。 十二日。
晴。朝前告以昨日疏儒輪次坊外之議。何不禁拂。而漸啓難遏之路耶。從叔父及士瞻氏皆謂太膠柱。余曰。義理姑舍。做事之道。不可如是。儒林之事先失己。而何以見重於人耶。一仲賢旣足矣。會中何人能勝於此君。可壓倒時輩者也。斷無益而反恥辱。此等議論。切勿容受如何。從叔父深可之。可以鎭得也。余言從兄主上來後。不可不辭歸。而若索疏廳送歸之資。則又是加徵於代留者。歸時吾則某條貸錢。自備而去。則無言說於日後。願勿禁之。從叔父牢不許可。然朝夕間豈無可回之道耶。仲賢及士瞻氏則還生火症。可笑耳。聞本倅緊於深處。蓋誤入時切交。而述丈權令一見。仲賢欲與湖丈往見。念是主倅。則無異安東人。與他京貴有別。而金文若丈亦有效力出入之意。公伯又累言。而不可許於他處者。然此則不必大爲嫌防。故告于從叔父。令與偕去耳。聞勅使早發。而曉頭大駕出餞次。支待于延詔門東壇。燕享百官。則先時伏待於慕華館外大路傍以餞。而勅使若下馬。則皆再拜以送。而渠則只擧手曰。奉國王好在云云耳。城內薪漸高。前此則馬粥一時所煮薪爲四分束。今則六分束。爲不能熟煮。大是悶事。鬣子下去前。似不得保上來時皮殼耳。米價則一升爲二戔。而比前落下戔餘云。可知其年稔。得見皇勅祭文。維同治三年歲次甲子九月日。皇帝遣正使戶部左侍郞兼管三庫事務正紅旗滿洲副統皁保副使正白旗漢軍副都統散秩大臣忠銳嘉勇八分鎭國公文兼。侑祭于朝鮮國王李之靈曰。璆冊膺符第〖茅〗壤。衍東瀛之緖。雕筵賜醊椒馨。頒北闕之榮。眷琛賮之輸忱。誼隆柔遠。奠芬苾以示寵。典重飭終。爾朝鮮國王李。育粹海邦。受封天室。效朝〖祖〗宗之〖而〗辰供。稟正朔而寅承。款納一誠。矢丹忠而孝順。猷宣八道。撫靑社而連庥。葵向久傾。桑包永固。晉錫尙隆於陪貳。豊頒同被於臣隣。方期象譯來庭。常詠湛露。詎意駒陰奄戢。莫返逝川。聿覽匭章。良深軫悼。賁銀章而眷懷嗣服。陳瑤俎而沛澤重泉。於乎。帶礪長延。不替儀型於箕範。几筵式煥。受〖爰〗增光寵於藩封。靈其有知。歆玆嘉薦。祭物則牛一羊一豕一。而只去內部脫毛。全體薦于床上云耳。聞監會斷以行公。而議不欲以有行列之名入榜云。大氐所謂公者。畢竟是私意行之。此豈道理耶。仲賢諸行入來。本倅無意周旋而言。大院君之前。誰敢以未問之言。仰視發口耶。若不知其意。而敢自出言。無論某事。如或承不緊之色。則俯不得仰不得。而■前路迷昧。豈欲爲此乎。非獨吾。他人皆然。第或承聞。當極言之云云。未知如何而若是之嚴畏也。直是自屈於欲見彼之嵬嵬而已。豈大院之精魄壓了人如此耶。還思可哀之類耳。湖丈又欲出去坊外。余曰。丈人幾番行。有何效應也。非但疏廳之徒取汚屈。丈人白鬚之年。法門之人。空然就謁於口乳驕蚩之輩。是甚事體。仲賢則旣以本孫往來者。不可中止。一渠足矣云云。湖丈曰。子何固也。今世做事者。以此爲辱。而何以成得事乎。余曰。如此而成事。所不可爲。而況如此而不成事。則何爲徒汚行止乎。湖丈曰。公論若皆不緊。則吾何冒去耶。從叔父仲賢皆無一言勸禁。遂見不行。而唐突還深不安耳。 十三日。
晴。食前。霞洞令送人。請從叔父。謂方設初擧禮。有酒食。與諸員上來。余則守房不往。仲賢出坊外。未付南草絶乏。一日所費錢每過三四葉。而猶患不不足。可悶。從父主若空匣。則疏廳自在進繼。而家便及忠衙所來草塊充篋。疏廳不用一錢於草價。適乘間出二塊。雖欺父兄取口食。大非道理。然請賜則不敢。默知則非欺。以此自恕。而獨爲之呵呵耳。聞姜蘭馨昨日送勅支應行。馬躍落空。幾項折而免死云。過驕高者必落下。足爲其戒。而渠何能識得理耶。大院君將以十六日作南漢遊云。以若處地。四遊無防。亦非服人心之事。嘆嘆。 十四日。
晴。金姊已於昨日出去一所依幕。而未能面送。可恨悵。金文若丈爲見權幼樂出去。余遂偕往。至六曹街。家家覓問。不知所在。始覺初不聞其何館。而遽獨來覓。爲不免菽麥。半日彷徨於通街而還。極爲憤嘆。入館勞憊甚於百里作行。又一自憐耳。試望一所金㘾。二所曺錫愚。而夕後添書。一所則金學成金朴永源。二所則曺錫愚曺錫愚李容殷。而皆出公道次極選云耳。 十五日。
晴。食後。爲見姊兄。又出一所。待于門外。少頃出來。無頉呈券。而氣色頗有自信之意。可知其善觀。賦題則有鳳翔千仞氣像。詩題則龜千年乃遊蓮上。而法興諸兄中順亮草紙爲最。眞實才因入來。姊兄又爲同接。終場前留在依幕云耳。二所賦題則嘉樂詩。蓋皐陶賡歌之意。詩題則天地間眞元會合之氣。亘古而再見【論堯曰小註】。諸知兩所所觀者。皆有可望。而自上嚴勅極公。前日奔走者。皆無所事。而束手縛足。風習大變云。還覺移風易俗。在上者一反手之間耳。傳言或謂大科。亦有公道之議。然此則必無之理。何可信耶。 十六日。
晴。聞大院君行次早發。而作書於兩試所。申令行公。將以八日入來。見出榜云耳。優人仲權箕洪來見。甚歡人情可尙。聞老人六十九歲以上。抄付榜末次。凡八十餘人。而剩入於二百本數之外。今可爲優老之恩。而日後老人之不得考終於家。其可數乎。未見其中正之政也。馬粥薪價漸高。使主人加卜鞍出去二十里外買來一駄。折薪僅一百二十片。而每片不一肱大。價爲一兩二戔。然諸人可賀甚歇。城內價則可爲一兩八戔云。如此之地。何以爲生也。可嘆。 十七日。
乍雨而陰。食前。入去柴門外。見公伯及外從。入門。遠村兄覓。不得相見。可恨。有雨意。旋出來。日晩雨晴。爲見諸知舊出場。同儕伴登碧松亭。公伯出來。而義題我聞曰至治馨香。所遇無我問曰。更作未免困了。不滿意云。然亦在數之事。何足爲意耶。疑題知舊無見者。故未得知。遠兄如何作呈。可菀耳。午後雷雨大作。聲震若陷。蓋是怪事。不可謂非災。憂懼無比。聞達民兄入來。而義題禮乎禮。凡過六首。而擇其最善者。金進士所草。書呈。頗可望。幸幸。二所疑題。問大學誠意章上不承。格知下不接。正修者何也云云。未能知其終始之詳耳。大院丈南漢之遊。聞運去家藏一萬二千兩錢。爲辨需之資云。其外主守之所供當費。幾何萬也。似此雷雨。安知非天公故作敗興耶。蓋大院之凡干做措。無非蹈襲舊世道之套。可知其無識所見。洽喫唾頤於窮伏之時也。悶嘆悶嘆。 十八日。
晴。食後。仲賢出去坊外。蓋知舊某人。皆約以勅科經擾後言之。故爲見申托計也。從兄主計。或於今明間入來。而中路無頉未可知。慮■鬱不已。余歸計。必欲因其回奴下去。而屢從叔父及疏廳諸員。而姑無變通之意。然當與從兄主相議。卽發計。而從叔父前。則不可受許。而可未知何以回聽也。伏悶耳。鄕間秋收。計似未了。而種種雨來。便成秋霖以其驟。而或不遠放。則可幸。而若均被。則其災又不小。奈何。聞蔡東述入來。徧訪屛館而去云。其沒知覺人。被他阻搪。可知耳。河陽■…■河洞會儒告歸。書付衙書。聞昨日雷震時。東朝大殿俱爲震驚。急召趙成夏入侍。東朝下敎曰。此何天變。至再至三也。罪必在寡躬。寡躬有罪。而汝爲在傍不告勉。則汝亦有罪。況安知汝又不自作罪。以添寡躬之罪耶。此何故也。懇惻敬畏之敎。足令感泣。趙汗出沾背而出云。而大院丈時在南漢遊樂。未知肯念此至意也。仲賢入來。所謂李承輔驕態。比前又倍高。斷不欲更見。而吳校理謂。俟大院君入來。有隙周旋云。然亦是時輩。何可信耶。午後。李仲嶷入來。兄主行聲。寂然無聞。可鬱耳。金樂後金希民權天經皆疏儒中人。而將以明日偕會儒下去計。疏廳許之。蓋難於供費。可悶耳。金文若丈亦以其子婚告悶。不能挽止。又將下送。貌樣極是無謂。嘆悶嘆悶。夕後。諸會儒會于公伯館。傳■言明將作別。共榻敍話。乘月上去。暫參而來。諸會中更申吾情勢不得不。於從兄上去後。代立下去之意。元振輩皆云。兄若必欲去。則他人何故獨後。疏廳自罷。公伯則諭以義理。竟不合而罷。然惟在從叔回意耳。 十九日。
晴。科事昨日以前。以極公無私敦定矣。大院丈入來。聞編次已定之後。兩所各以三十人。分付無書頭無名號。只以性名出來。試官不得已更覆所選。坼封覓名。朝前詣闕之令。退以午時云。令人仰屋。蓋日前爲東朝申勅所壓。有無心一簡。而終不能耐。有此擧措。畢竟做不得好事。大悶大悶。午後。試官詣闕。出至夜四更畢■度。而知舊中唯海底乃極兄而已。召川鄭昌錫及河回二人。愚川柳■台之孫。慶州孫相俊。良洞李熙久。高靈金思默之孫。此外則京中升學所付者。及某某姓可爲者。無一漏。而餘皆無行啣者。蓋大院君周紙之外。試官各充所欲。其餘則公播。故或有偶參者。聞落日中。合封尾紅絲貫繫者。無數出來。此則初選而還覆中見棄者也。雷警亦無可奈。則誰可挽回也。憂嘆憂嘆。金姊兄金公伯尤爲寒心。老人果付榜懸玉七十九人云耳。夕時。從兄主入來。欣喜可量。且見路垢不甚上。氣力頗健。尤幸。而家間先聞一例平安。秋事亦已了。收登豊。此外更何加。喜慰喜慰。暫憩往舊主人。勢不得不然。而稍間可悶。往見定軟。夜後還來。 二十日。
陰。金姊兄晨發來別而去。行色可念。且有雨意。尤爲慮不能忘耳。諸人一時發去。甚愁慘。 二十一日。
晴。臨河都廳告歸。以其仲子婚日在來初。勢不可挽止。送別於通衢。沽酒以餞而入來。悵缺殊甚。鄕便莫此之的。而數日會儒餞歸之擾。眼鼻莫開。無暇寫情懷。靜後尤覺悵恨。夕時韓參判啓源來問。雖泮村呼新行歷入。而比前戛過。猶是異事。余在下室。不欲進見。少間請見。故暫爲見面。生格可觀。外面假款。甚可憎耳。吳校理德泳夕後暫尋而去。以未乘間隙。姑不得效誠。爲悚甚云。其言可感。蔡校理東述擧燭而來。終日於泮中歸路歷訪。甚非道理。屢屢自悚。發明前日未卽入來之由。款悟〖語〗酬酢。雖可愛。而輕薄擧止。大非其祖遺典。且見非遠大之器。然年才與角侄同甲。將來何可知耶。要之■(皆)此鄕曲兒少。爲夙成耳。文若丈於鍾衢違失人馬。聞用無限愁慮。尋遇於江邊而去云。鄕曲愚疎盡綻露。可笑耳。 二十二日。
陰。曉頭覺寐。頭疼大發。莫知所出。不能擧目。移身作眩。苦悶之外。往來酬接。又不可堪。移處內夾室。通突上間。寒苦又難調攝。悶惱悶惱。食前李判書宜翼李參判承輔來訪。而略言疏事。專無效力之意。所言只是唇間出來。極可痛耳。終日病臥。不干外房事。聞姜校理從叔侄來。呼前家所館昌原新恩。責食餠酒。心甚不緊。然無暇告言。可恨。有權生弼夏者昨來言。將告疏事於大院君。見諸人與之酬酢而送。今午來言。備達五月以後疏儒客苦之狀。兼言臨川來歷。則大院君笑曰。鶴峯書院無額。有何瑕累云云之際。柳佐郞敎祚入來。大院君曰。疏儒五月上來仍留云。尊鄕行棄去耶。柳時以警差官下直次。柳曰。小人則不聞也。大院君曰。此儒生方言留在云云。柳曰。小人則不聞云。顔色赤黑。權生曰。小生爲歸誣訴也。悚甚悚甚。大院君曰。屛虎湖洛之間際。此豈有可成耶。疏首爲誰。柳某曰。與彼坐同姓。權曰。非也。故柳參判某之一室也。大院君曰。以吾言傳使歸去。不可成之事。何必久留耶云。前言時和顔應答。更變如此者。實不可知云。然此人曾以松夜權。來遊京洛。廣交大家者。其言不可信。且於本事。甚是垢汚。吾謂不必斥。而又不必假借。然不見然。可悶耳。兄主聞與仲嶷會處於法興館。取其靜溫。料理科具計耳。士瞻氏昨日爲餞文若出去。被失馬之擾。同患經宿而來。出示歷路■(奐)興成。而其中有■(大)玳瑁貫子一件。價入二戔餘。余笑曰。京中是誤人之地。兄主亦生此■(者)奢心耶。相呵而罷。馬粥鼎借於上館。房突甚溫。仲嶷上來▣…▣去。無鼎。可借煮粥於主人。所居房加費。薪價極是難堪耳。夕時頭疼小減。流汗難堪。似是前例寒疾。而前此▣…▣一人甚長客地。若又如前。則▣甚是恐懼處。奈何。 二十三日。
晴。聞泮村喧傳。疏儒去大院君家。言疏事見敗云云。必是柳佐郞之見權生後。造出之言也。而權言之不虛可知。其伯參判大責吾輩。雖不能共事。而五月疏儒上來之事。誰其不知。而汝自歸虛妄之科。事面姑舍。是豈行世之道耶。大院君知汝。是何如也。其中年老者稍勝耳。東堂會試以本定日無追退。而往往有行公之說。然豈有其理耶。兄主則頗信之。而不無幸念當局之▣…▣耳。 十四日。
晴而風寒大發。食後沙月權進士告歸。欲付書。而不肯少俟。不得上書。伏恨伏恨。不得已記草封付。可下監耳。 二十四日。
晴。聞大駕幸大院宅。設應製。【缺。】 二十五日。
陰。姜承旨蘭馨李承旨喆求來問。而姜言疏事。頗致情款。時輩當面。則皆云如是耳。文五令見李承輔云。於日前泮村出來之路。見大院君。問何行。故答以修疏廳人事之行。則曰。疏廳終不下去耶。因有略干酬酢。而辭色似不如前之激勵。只云勸之下送云云。蓋習聞之。而有些變動而然耶。曾有忠州李參奉者。與權遇必丈。約以一言周旋。今夕來言。備告疏事顚末。且誦宗親敍用疏。命意則稱以偉事而曰。此先輩書院賜額。夫孰曰不可。而此際不可成云。然無大揮斥之色。今則直發太學通文云云。其言似不虛。而諸儀欲少俟。■(吳)兄進言▣…▣後爲之。不可獨質。然若於吳言時大斥之。則通文亦不可爲。可悶。 二十六日。
晴。居昌居許生三人。指文券來視。卽與許順則譜訟之事。首弁一狀。乃卞呈道狀之狀。而從父各啣果入其搆毁之中。謂以親査之情。兼誘之以利。㗖之以財云云。直令一笑。從叔父責以。訟則自不得不務勝。豈可搆誣道儒。如是之極乎。輩謂。若知如是尊重。則豈敢乃爾。不過激於河許之藉凌。以致此誤割。納名字。所不敢辭。遂刀割安東以下五字以進而去。觀其貌相。雖百河許可當。而所持金許譜。足以爲卞白之資於不知事實者之眼。爲順則地。大悶大悶。衲得館通而來。見此中者。必欲收還。大坪文字。使不得弁刊於是非之地。而謂使此身不爲得罪於先生至望云耳。仲賢爲觀坊外物情。又出去而來。紫岩李判書頗款。異於前日。而云爲此事。以日間進言於大院前云。餘皆未過。蓋以呼新四散故耳。水洞換錢人來謁。見金溪書。可慰。 二十七日。
雨。爲乃極兄唱榜行。申勅下人。晨喂馬粥而送之。然雨聲此甚。可悶。聞泮村新恩。亦有率隸數三十人者。每名雇貰近兩錢。可笑其虛子。乃極兄無一人別陪。自持白牌至泮云。拙約可尙耳。 二十八日。
晴。雨餘日寒更甚。客地一日。如經三冬。苦悶苦悶。兄主處興洞館▣…▣上間甚溫燠云。可幸。 二十九日。
仲賢又出外而■(還)來。吳李諸家。皆未有告言之隙於大院君云。悶悶。午後出去高陽。爲參明日奠掃。而向西溯風。已是難耐。又犯暮抵達。感疾可慮甚恐耳。出去時有傳言。以初二日設柑製。元振兄諸人皆欲止之。余謂若有柑第。■(數)斷吾自不去待人。勸禁讓與。兄輩幸勿以我爲念也。一笑而去。然其無進銳之氣。還自嘆恨。日昏入墓幕。各處會員凡十餘人。而陽智則一百四十里。陰竹則近三百里。江華則九十里。而五六十老皆負袍曳筇。各齎行資而來。以嶺中觀之。大是不可及處。辦需則只任墓直。而不別看檢。然備品潔供。極其誠敬。蓋位畓三十二斗落田五日耕。而任渠作農。無分半之事。只使供一年一祀外。無他供費。故渠亦爲命脈所關。而或恐罪頉。爲此盡心。然可愛其勝於遠地子孫耳。朝夕供又甚溫。適館中淡冷之餘。覺是一番飽食。亦是祖先之賜耳。修付家書。 初一日。
晴。食後上墓行祀于檜軒位及承山。未及陳設於典翰位。雷雨忽作斜風成▣…▣。蒼卒無雨俱。只拱立冒霑。而冠冒始上來。然冠衣無餘乾。可嘆。雨仍不止。不得撤需下來。夕時始候小晴。上去行祀而來。次位則行於墓幕。而亦甚豊盛。然▣…▣褁餘者。亦異於嶺俗。可尙耳。兩▣…▣室狹窄。經過則甚不便。覺是寢食▣…▣俱穩。似過於福耳。呵呵。 初二日。
午後入來。柑製之說。果歸虛。若信其說。還停昨行。則亦一良貝耳。幸幸。大科會試無變通作定。嶺人金奭輔張原相堅固。李肇秀不得入參云耳。 初三日。
晴。以雷變事傳敎▣…▣。皇院議啓亦出。然皆是虛文之具。有何實警耶。與仲賢裁從兄主試紙以送于興館。 初四日。
晴。坊外某某家以求文次。四散於泮館。而所謂朝士之略知排法者。皆見執云。其是西北人待嶺人。而甘不知憤。嘆惜嘆惜。 初五日。
晴。風寒去甚。不欲動作出外。來頭千里之程。何以利達。愁悶愁悶。明日爲入場。故夕時入見從兄主。傍行還來。明晨助送入門。不可得免。而奉役■虛事。空自寒勞。■(願)預覺憤嘆耳。海底校理除禮安■(倅)。可幸。 初六日。
寒。早起入去興洞。兄主已朝食裝束。因與偕來門外。晩後見入門。出來。手足凍寒。仍成感氣。忤寒嗽涕之症。極爲難堪。聞愚川台除漢城左尹云。■(而)是解食郊鬼之事。勢不得加留。故將以十日間發歸。老宰何事受喫此良貝。家世可惜耳。午時兄主出場。題是每替罷來謁輒問曰方人才。而所作不問其好否耳。何關於落魄耶。 初七日。
寒尤甚。而感疾莫能自力。可悶。閔承鎬儕類有來戱呼新者。而自深處書傍目。次第自一等一人。至三十三人。正書出來於試所。南村斜廊亦有傳謄者云。直是濁亂來。亦初有之事耳。然若有通天之數。又豈無一二人公出。而此何可望耶。 初八日。
寒小解。而感症不解。大悶。强疾入見兄主入場。身氣政不好。苦惱苦惱。策題問量田而料是不得遇者。然遇亦何用耶。夕後。頭疼大作。終夜不省人事而過。苦惱苦惱。 初九日。
晴。朝痛勢少減。終是忤寒。不能巾櫛。擁衾爲調攝之計。多人往來。極是難便耳。良洞泮長日前入來。今日往見大院君。適値從容先言屛山如何。院君卽搖手曰。吾不知吾不知。因言嶺南疏儒經半年來留。極爲悶鬱。院君曰。何疏儒。答以臨川金鶴峯院額事也。院君曰。此儒生則吾亦聞知。故於某文官傳言。使下去。終不去耶。泮長曰。嶺南事。異於畿湖之一邑一儒之擅斷自立。今番疏事。七十州章甫之廣聚謀議。治送儒生者也。豈可無所事而下去耶。必欲伏閤而去。蓋非欲必受成命而退。成否在天。只展儒林之誠於一封上達而後。已也。院君曰。今此東朝以書院事。如是震怒之餘。豈敢遽爾上疏耶。令監勸之送也。泮長曰。疏儒豈以小人一言而退歸耶。院君曰。方爲一國主敎之位。他道儒林事。皆可主張。況本道儒生耶。泮長曰。嶺南儒論則不如是矣。院君曰。以吾言傳之。儒生聽施吾言。吾亦有聽儒生之言之時。小頃又更言如是曰。吾於嶺南。不恝然待接云云。大氏〖氐〗此丈終始固執。未知緣何意思。然其言不無餘意。於日後且其遜出辭語之狀。與文五令酬酢時大異。或不無眷念之道耶。然要之必欲勝其所立。今番則無可望其回聽。可悶。所當從近捲歸。而泮長之言。數日間又更探其意。而欲使院君招請儒生數人。面勸退送。以待後日之言然後。爲罷去計云云。吾意此是不易。且或有招請之事。疏首則勿論。雖疏下儒生趨進於世道。坐招之下。非士身自重之道。略示意而已。爲元振兄諸人打非。然此則斷不可爲。欲與泮長相議。爲自家書告以疏儒終不去之意。以前言受答出來。爲後日執請之資。似好。而未知諸意又以爲如何耳。泮長云。他酬酢亦張皇。語及科事。院君曰。嶺南及弟二名下去矣。泮長曰。庚戌年則七人爲之。小人所見則二人太小矣。院君曰。欲心則壯矣。金奭輔則聞寒暄堂以甲子年當禍。故吾愴念而入之矣。張原相亦是公論之當爲者也云。明日爲出榜。而先期知之。落魄者尤不必待榜而後知之。可笑耳。疏廳罷歸。要不出望念間。吾意則兄主之留爲同去就。則老脚可有舒力之道。而行資加入。不欲留一日。悶悵悶悵。昨見繼孟兄。以不可輕歸之意。申申指示。而似不知此間近日事機之故。然遙遠未及相通奉議。而遽自罷歸。亦甚不安。而明知其不得伏閤。空爲留滯。何益於事耶。書中有無謹悉伏閤之言。而此亦近來無格例云。皆是鄕曲悶鬱所發之言耳。然亦不可施者。嘆悚嘆悚。元振及而述丈。以廣州掃墳事出去。仲賢爲見吳校理。又出去而來。吳兄之言謂以吾口。而此事有可回聽大院君。則其榮不啻好官。所以不與他人同其泛言。欲得從容答問之暇。而苦未得暇。雖苦狀之多。然不可不少俟云云。蓋其誠心爲我者。不可不聽其言。故未得決歸。而要之此公。亦難回聽耳。然院君之言意有後。吳兄亦可信。而或傳李載元之言曰。吾大監不無愛惜之念。而朝家處分。俄自當身手爲之。旋卽許額疏。實顧朝廷耳目云。蓋近日諸路探請。皆以和顔悶辭答之者。與此言相符。雖今番虛歸。或可爲日後履歷否。屛山都是生火於額字事故云。而渠輩則謂被吾邊之害。如近日裏面。則臨川還似被屛山之害。而非的見。何可知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