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小山 李光靖이 官으로부터 곡식을 받아내는 문제로 친형에게 보낸 편지
5월 5일에 小山 李光靖(1714~1789)이 官으로부터 곡식을 받아내는 문제로 친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어제 崔公普가 가는 편에 자신이 전에 부치려고 했던 편지를 바삐 부쳐 보냈다고 하고, 여러 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또한 良佐洞(양동 마을)으로 갔던 內行이 어떻게 도착할 수 있었느냐며 소식을 물었다. 양동 운운한 대목은 大山 李象靖(1711~1781)의 며느리인 驪州李氏에 관한 것으로 보이는데, 驪州李氏는 경주 양동에 거주하였던 二香亭 李範中의 딸로 李象靖의 아들인 艮巖 李埦(1740~1789)과 혼인하였다. 이러한 언급으로 보아 이 편지의 수신자는 李象靖인 것으로 보인다. 李光靖은 어버이께서 그럭저럭 평안하게 지내고 계신다는 소식을 전하고, 모내기가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식이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았다며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소식도 전하였다. 그러면서 所志를 올려 租 1섬을 題給받게 되었는데 開倉(창고를 열어 還穀 또는 賑穀을 나누어 줌)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邑倉에서는 받아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7일쯤에는 己民으로 하여금 받아내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다만 상황이 어려우면 麥秋에 開倉하기를 머물며 기다리게 하겠다고 하였다. 끝으로, 漆溪에서 온 편지를 빠짐없이 자신에게 보내주고 그에 대한 답문도 아울러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崔公普는 崔周鎭(1724~1763)으로, 본관은 慶州, 자는 공보, 호는 東溪이다. 저서로 『동계집』이 있다. 百弗庵 崔興遠(1705∼1786)의 아들이다. 李範中(1708~?)은 본관이 驪州, 자가 彛卿, 호가 二香亭이다. 晦齋 李彦迪의 후손이며, 李象靖과는 사돈지간이 된다. 己民은 李光靖의 奴로 보인다. 漆溪는 마을이름으로 속칭 ‘옻골마을’인데, 慶州崔氏의 同姓村이다. 여기서는 百弗庵 崔興遠을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崔興遠은 李象靖 ․ 李光靖 형제와 직접 방문, 학문 토론, 文字 授受 등의 방법을 통해 매우 긴밀히 교유한 사이였으며, 특히 李象靖은 그의 아들인 李埦을 崔興遠에게 나아가 배우게 한 바도 있다.
1차 작성자 :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