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6월 9일, 姜稷이 여러 근황을 교환하고 서책을 부쳤음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1848년(헌종 14) 6월 9일에 典菴 姜稷(1816~1859)이 여러 근황을 교환하고 서책을 부쳤음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姜稷은 지난달에 京畿의 先墓에 성묘하고 泮村으로 들어가 집을 얻어 父子가 함께 지냈다고 하였다. 열흘 동안 지내다가 도성문을 나서니 날아갈 듯 상쾌했다고 하였다. 科擧에 낙방하였다는 것과 어버이께서 무탈하시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근일 이래로 科擧로 인한 혼란스러움이 잦아들었으나 근거 없이 무함하여 기필코 자기와 다른 이를 함정에 빠트리려 하니 그 혼란함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하였고, 의리를 버리고 한갓 혈기를 앞세워 반드시 위력으로 이기고자 힘을 쓰니 매우 개탄스럽다고 하였는데, 어떤 일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끝으로, 만날 기약이 아득하여 그저 서글픔만 더한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먼저 謹休兄 李晩慤을 근래 만났는지 물으면서 일전에 인편이 있어 그에게 편지를 부쳤었다고 하였다. 始能兄 李敦禹가 科擧에 떨어진 것에 대해 개탄스러운 마음을 표하면서, 그가 科擧에 운이 없는 것이 참으로 심하다고 하였다. 定齋 柳致明은 한결같이 평안한지도 물었다. 자신의 고향에 있는 篤行君子 鄭象履 씨가 달포 전에 사망하였다고 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표하였다. 『隻手』․ 『古今』․ 『龜稿』 합 3책을 仲弟가 사람을 보내 가져갔는데 이것은 東郭 從叔께서 목격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大全』 1책은 지금 川前으로 가는 인편에 단단히 봉하여 부쳤으니 잘 전해 받으셨을 줄로 생각되는데 이것은 從叔께서 미처 알지 못하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른 곳을 통해 上舍 李達會 어르신의 策稿를 얻었는데 그 가운데 『大全』의 글과 부합하는 것이 많았다고 하면서, 이것이 혹 湖上稿냐고 하였다. 앞에 나열된 책은 모두 일종의 과거 모범 답안 모음집으로 보이는데, 미상이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