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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이선필(李璿弼)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F.1901.0000-20170630.y171001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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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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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선필
작성시기 1901
형태사항 크기: 22.5 X 45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1901년 이선필(李璿弼) 서간(書簡)
1901년 8월 14일, 이선필이 전주 유씨 삼산종가에 있는 어른에게 일상의 안부를 여쭈고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그런데 이것은 수신자의 아들이 발신자에게 전해준 편지에 대한 답장이기에 먼저 수신자의 아들이 전해준 편지에 대한 소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편지에 대한 소감을 전하면서 수신자의 안부를 물었다. 가을을 맞이해서 수신자의 근황과 건강, 그리고 수신자의 혈연인 아들이며 작은아버지 등의 안부를 보내온 편지로 알게 되어 기쁘다고 하였다. 이어서 발신자는 자신의 소식을 전했다. 가을의 정취에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지만 자신은 하루 세 번 반성하는 것으로 다행히 크게 손상되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발신자는 겸손의 말로 자신의 기량이 모자라서 남에게 과시할 것이 있으며, 주변 사람들과 쓸데없는 농담이나 하고, 논밭이나 가는 것을 일삼으며 썩어가는 졸렬한 모습이 부끄러워 웃을 뿐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수신자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전했다. 종질녀와 향임을 맡고 있는 둘째아버지, 그리고 숙부의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은 집안 아이의 혼례 날이 다음 달로 정해져 수신자의 고을에 가지 못하니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만 답장을 올린다는 말로 편지의 끝을 맺었다. 이 편지의 겉봉을 보면 수신자가 관직에 있지 않고 있다는 것과 이 편지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수신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발신자는 자신을 소개한 것을 보면, 수신자와는 적어도 인척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을 보면 서로가 서로의 집안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만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이 편지는 친밀한 사이에 주고받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901년 8월 14일, 李璿弼이 全州 柳氏 三山宗家에 있는 어른에게 日常의 安否를 여쭈고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1901년 8월 14일, 李璿弼이 全州 柳氏 三山宗家에 있는 어른에게 日常의 安否를 여쭈고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이 편지는 수신자의 아들이 발신자에게 전해준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그래서 먼저 수신자의 아들이 전해준 편지에 대한 소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편지는 서로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기쁨이 넘쳤을 뿐만 아니라, 그 글을 책상에 받들어두고 항상 눈여겨볼 자료로 삼는다면 마음에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보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편지를 읽고 감사하는 마음에 저절로 절을 올려 九拜를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서 수신자의 안부를 물었다. 가을이라 서늘한데도 수신자가 편안히 거처하고 건강하게 계시며, 수신자의 아들도 집안의 형제들과 정답게 지내며, 작은아버지도 喪中에 있으면서도 정신이 왕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소식이 막혔다가 이렇게 기쁜 소식을 듣게 되니 무엇보다도 좋다며 수신자가 보내준 편지를 고마워하였다. 수신자의 안부에 이어 발신자 자신의 소식을 전했다. 가을의 정취가 불쑥 일어나 근심과 걱정이 살랑살랑 태동하게 되면 비록 마음을 다잡을 힘을 가진 사람이라도 스스로 억제할 수 없어 크게 고민스럽기는 하지만, 발신자 자신은 하루 세 번 반성하는 것으로 다행히 크게 손상되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발신자는 겸손의 말로 자신의 기량이 모자라 모시고 학문을 들을 사람이 없어 날마다 일에 골몰하여 좋은 시절을 기억하기 어려운데다 스스로 학문을 즐길 겨를이 없어 남에게 과시할 것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초동목부의 무리들 사이에서 쓸데없는 농담이나 하고, 논밭이나 가는 것을 일삼으며 썩어가는 졸렬한 모습이 부끄러워 웃을 뿐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수신자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전했다. 從姪女는 근근이 지내는데 매번 안부를 물을 때마다 빠뜨리는 것은 뜻이 있어 그러니 말없는 가운데 헤아려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둘째아버지는 鄕任을 오래 맡았는데 참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직의 單子를 올리고자 해도 여러 가지 일이 염려되고, 거동을 하고자 해도 다스려나갈 길이 없어 두 가지가 모두 어렵다고 하였다. 게다가 지금 고을이 요란스러워 더욱 마음에 걸리는데, 수신자가 와서 좋은 방도가 있으면 말해줄 수 없는지 제안하였다. 다음으로 숙부의 喪期가 멀지 않아 항상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끝으로 집안 아이의 혼례 날이 다음 달로 정해져 수신자의 고을에 가는 것을 막아 부끄럽고 송구스럽다며 나머지 할 말은 방문한다고 기약을 하였으니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만 답장을 올린다는 말로 편지의 끝을 맺었다. 이 편지의 겉봉에는 "靖座下回納"이라고 적혀 있다. 이 말은 수신자가 관직에 있지 않고 있다는 것과 이 편지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수신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발신자는 자신을 "小弟"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수신자와는 적어도 인척 관계가 아니면서 손아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을 보면 서로가 서로의 집안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만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이 편지는 친밀한 사이에 주고받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古文書集成 四十四』 -安東 全州柳氏篇 1(水谷宗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全州柳氏大同譜』,
『봉화군사』, 봉화군, 봉화군, 2002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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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피봉] 三峴 靖座下 回納 霞溪謹謝上 令允來惠書至不但相握之爲喜溢幅詞翰 奉置塵案將久久爲常目之資則其所以慰 悅心曲者奚但以紙墨爲珍也拜感僕僕自不 覺九頓首也仍審秋凉 靖閒啓處衛重允舍幃幔湛翕 亞庭經案服體候神旺阻餘喜聞孰大於 是至若憂虞之鱗生秋感之闖發雖定力者自 不能禁遏矣何庸悶然哉小弟三省幸免大損 而自來伎倆陸陸無奉聞者日事乎奔汨難記佳 辰不暇於自娛詎有誇人但遊談於樵牧之伍有事 於田疇之告必作腐歟拙之態可愧可呵從姪女 僅依而每以候問之全闕有意然隷窠俱空 程途 稍間泯黙度了在傍者亦咨嘆況當之者乎仲父鄕任久 帶誠未安欲呈單則慮其多事欲動駕則無路治行 可謂兩難且今府郡擾擾尤爲關心何以則無來言而有 好道耶阮府宅祥期知不遠常準擬矣家兒醮 日定在來初又將獨沮於郡至矣愧悚何已餘旣承 枉期矣都留不備謝上 辛丑八月十四日小弟李璿弼謝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