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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 유정원(柳正源)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F.1755.0000-20170630.y1710010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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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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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유정원
작성시기 1755
형태사항 크기: 22.5 X 44.5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1755년 유정원(柳正源) 서간(書簡)
1755년 7월 15일, 유정원이 아내를 잃은 아들에게 슬픔과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이다. 이 편지는 뜻하지 않은 며느리의 죽음을 전해들은 것이기에 그에 놀라움을 표하는 말로 시작된다. 이어서 이 불행에 대한 원망, 며느리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한데 대한 자책, 시아버지로서의 며느리에 대한 애정 등을 격정적인 말들로 나타내었다. 다음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있어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미리 준비하여 일이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어른으로서의 당부의 말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내를 잃고 홀로 된 아들의 슬픔을 생각하여 지나치게 마음을 써서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데 이르게 하지는 말라는 아버지로서의 염려를 전했다. 이 편지에서 발신자는 자신을 아버지라고만 하고 있어 편지만을 통해서 볼 때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편지의 소장처가 전주 유씨 삼산종가이며, 그밖에 편지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볼 때 이 편지의 발신자는 유정원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편지로 우리는 당시 며느리의 죽음을 맞이한 시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홀로 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古文書集成 四十四』 -安東 全州柳氏篇 1(水谷宗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全州柳氏大同譜』,
『三山集』,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755년 7월 15일, 柳正源이 아내를 잃은 아들에게 슬픔과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이다.
1755년 7월 15일, 柳正源이 아내를 잃은 아들에게 슬픔과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이다. 이 편지는 예견하지 못한 소식을 전해들은 것에 대한 것이기에 그 시작 또한 그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는 말로 시작된다. 그래서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말로 이것이 무슨 소식이란 말이냐는 말을 거듭함으로써 그 놀라움을 표했다. 그 놀라움은 하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져 하늘이 나에게 화를 내려 차마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하는가라고 하며 통곡하고 또 통곡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죽은 며느리가 평소에 몸이 매우 수척해서 유달리 염려하고, 또한 임신한 경우를 생각하여 미리 몸의 영양을 좋게 하고 보호하는 도리를 취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시아버지인 발신자 자신의 과실이라고 자책하며 후회막급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며느리가 진통을 시작한지 반나절 만에 무사히 분만하였으니, 갑자기 죽을 만큼 위험하고 심각한 증세를 가졌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이렇게 잠깐 동안에 갑자기 구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말을 거듭했다. 발신자는 아득한 천리 밖에서 며느리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한 해 동안 기다리며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천만 뜻밖에 며느리가 죽었다는 흉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비보를 듣다보니, 발신자는 자신이 비록 미련하고 인자하지 못하나 찢겨지는 심장을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겠느냐며 그 아픔과 슬픔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수명의 길고 짧음은 정해져 있고, 재난과 환난에서 도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며느리가 발신자로 하여금 병이 들어 문안하고, 죽어서 시신을 어루만지고, 땅에 묻혀 장지에 이르러 영결하게 하여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情을 조금도 펼쳐보지 못하게 하느냐며 며느리에 대한 시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이미 며느리가 죽어버렸으니 모든 일이 끝났으며, 생각한들 아무른 보탬이 되지 않는다며 더 이상 죽음만을 슬퍼하고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며느리의 棺을 짜는데 쓸 나무를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인 浮浦에서 구입하기로 했는데, 심부름을 온 노비도 알고 있지 않으니 일이 어긋난 것이 아닌가하고 발신자는 葬禮의 일을 걱정하였다. 장례와 관련하여 이밖에도 집밖에 屍身을 갈무리하는 것은 매우 중대하고 어려우니 달리 조처해서 작합하게 될 길이 없는지, 시신을 관 속에 뉠 날이 언제인지, 시신을 안치할 곳은 어디인지, 달을 넘겨 장사를 지내는 법도에는 오래 머물지 못하기에 갑자기 葬地를 어떻게 구할지, 흉작이 혹심하여 秋收 전에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 등과 같은 걱정거리가 있다고 했다. 발신자는 이러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했다. 이런 걱정 외에 아버지로서의 발신자는 홀로 남은 아들에 대한 것도 있었다. 발신자는 부인이 죽인 셋째 아이가 타고난 기질이 虛한데다 매우 심한 재앙을 당하여 마음이 슬프고 쓰라리고, 염려가 지나쳐 건강을 傷하게 하고 性情을 해치는데 이르지 않을까 걱정했다. 게다가 그 아이는 旅路의 피곤이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슬프고 끔찍한 일이 겹치고, 장례에 필요한 여러 가지 조처들이 그 한 몸에 모여들어 몸과 마음을 모두 지치게 하여 병을 더하게 할 것이라며 발신자는 아들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들로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만약 자신의 이러한 마음을 깨달아 몸을 보존하는 방도를 생각하여 지나치게 염려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아버지로서의 발신자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것이라며 다른 가족들에게 함께 붙들어 지켜주기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발신자는 이러한 불행이 자신의 허물이 쌓이고 福이 지나쳐 무고한 사람에게 재앙을 입게 하였다며 자책하는 것으로 슬픔에 잠겨 있을 아들을 위로하고, 이것이 지극히 고통스러운 것이기는 하나 喪中에 괴로움이 지나쳐 몸과 마음을 손상하는데 이르게 하지는 말 것을 당부했다. 또한 부모 형제가 만날 수 없는 곳으로 헤어지는 죽음은 사람에게 지극한 변고이기에 크게 힘쓰지 않으면 이 근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발신자 자신도 힘을 쓸 것이니 자녀들에게도 힘써서 殮을 하고 殯所를 찾아야 할 시기에 힘을 하나로 모아 喪을 무사히 치를 수 있기를 당부했다. 이러한 당부의 말에 이어 발신자는 현재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편지를 다 써서 보냈을 것이나, 지금은 아직도 붓을 잡고 망연히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글씨를 쓰다 보니 회포를 모두 말할 수 없고, 이 편지를 가져가는 인편이 돌아온 후에 明兒라는 아이를 보내고자 하니, 그때 다른 모든 소식들을 자세히 언급하도록 하자며 편지의 끝을 맺었다. 이 편지에서 발신자는 자신을 "父"라고만 하고 있어 편지만을 통해서 볼 때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편지의 소장처가 全州 柳氏 三山宗家이며, 그밖에 편지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볼 때 이 편지의 발신자는 柳正源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편지로 우리는 당시 며느리의 죽음을 맞이한 시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홀로 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古文書集成 四十四』 -安東 全州柳氏篇 1(水谷宗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全州柳氏大同譜』,
『三山集』,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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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何報耶此何報耶天乎椓余忍使至於此耶 痛哭痛哭 聞渠瘦削特甚殊以爲慮亦意其姙 娠者之例不能預爲滋養保護之道是余之過悔 之無及始痛半日無事分娩此豈危惡之證而俄 頃之間奄忽不救寧有是事寧有是事邈焉千里 一歲盱念而遽聞凶音於千萬夢外縱我頑然不 慈其何以鎭此方寸之寸割耶非不知脩短有定 禍厄難逃然使我病而診視歿而撫屍入地而臨穴 以訣則亦豈不少伸舅婦之情哉痛哭痛哭萬事 已矣思之無益貿板浮浦事來奴不知果不至緯 繣否越家所藏亦甚重難卒無從他措得之路耶 就木於何日而殯之何處耶踰月之制不可久 淹而葬地猝難求得且凶歉旣酷秋收前經紀極難 吾亦不知所以畵策也三兒稟賦虛薄猝當 禍變觸緖酸苦用慮過度或至傷生害性 豈不可惧伯兒路憊未蘇重以悲慘前頭犇 走區畫萃于一身心勞氣勞俱是添病之 道尤爲可念卽今所憂惟此兩端而已儻使 汝曹體得此心各思保身之方不貽遠外之慮 則所以慰我安我也幸相與勉勵扶護也千 萬千萬汝父釁積福過使無辜者被其 殃此爲至痛 然亦豈過於疚惱而至於傷 損耶父子兄弟 離違絶域遭罹喪威此是人家極變 若不大段用力豈能排遣吾亦不日自勉而勉汝曹也更 宜諒之爲探殮殯之期挾送一力而平時送書 尙且把筆 茫然忍淚 寫字何能 道盡懷緖 此便回後欲 送明兒歸 其時可以細 及凡耗耳 乙亥七月十五日 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