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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면주(李冕宙)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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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면주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06
형태사항 크기: 23.5 X 44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1906년 이면주(李冕宙) 서간(書簡)
1906년 1월 24일, 이면주가 전주 유씨 삼산종가의 사돈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문안을 드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그래서 편지의 첫머리에도 한 해가 바뀌어 다시 봄이 될 날이 오래지 않았다는 말이 들어갔다. 이 말에 이어 발신자는 수신자의 안부와 함께 그 집안의 또 다른 어른인 숙부와 자제들의 근황을 물었다. 그러면서 수신자의 손자가 앓던 병이 어떤지도 덧붙여 물었다. 그리고 안부를 묻는 마지막에는 다시 해를 넘기면서 문안 인사를 드린다는 말과 함께 달리 물으실 것이 없으시냐는 말을 했다. 발신자는 문안 인사에 이어 자신의 근황과 함께 여러 가지 소식을 전했다. 발신자가 전한 소식은 신주를 모시던 방의 휘장을 옮겨 설치한 일, 조카가 여행을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일, 광산에서 채굴하는 날에 있었던 일, 그리고 결혼 60주년을 맞이한 일 등이었다.
이 편지는 피봉이 없어 그 수신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편지의 소장처가 전주 유씨 삼산종가이고, 발신자가 자신을 "사제"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수신자는 발신자인 이면주의 사돈이 되는 전주 유씨 삼산종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발신자가 신주를 모신 휘장을 옮겨 설치했다는 사실은 자신을 "복인"이라 한 것이나 편지의 첫머리에 "생지"라고 한 것과 연관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상의 사실을 살펴보면 이 편지는 새해를 맞이하여 사돈끼리 주고받은 문안의 편지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내용을 보면 그 두 사람이 모든 일을 털어놓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全州柳氏大同譜』,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906년 1월 24일, 李冕宙가 全州 柳氏 三山宗家의 査頓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問安을 드리기 위해 보낸 편지
1906년 1월 24일, 李冕宙가 全州 柳氏 三山宗家의 査頓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問安을 드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새해를 맞이하여 문안을 올리는 편지이다. 그래서 그 첫머리도 그와 관련된 것이다. 그것은 영남과 호남 사이에 왕래하는 편의가 멀지 않았으며, 한 해가 바뀌어 다시 봄이 될 날이 오래지 않았으니 수신자는 소식이 막혀서 서글픈 마음이 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에 이어 발신자는 수신자가 새해를 맞아 몸과 마음을 조용히 정양하며 생활하는데 복된 일이 가득한지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수신자 집안의 또 다른 어른인 숙부께서는 계절에 맞게 건강을 잘 돌보며, 자제들은 어른을 모시고 학문에 힘을 쏟는지 근황을 물었다. 그러면서 수신자의 손자가 병을 앓더니 새해와 더불어 모든 것이 새로운데 옛날의 병을 털어버려 근심을 끼치는 데는 이르지 않았는지 소식을 물었다. 그리고 안부를 묻는 마지막에는 다시 해를 넘기면서 문안 인사를 드린다는 말과 함께 달리 물으실 것이 없으시냐는 말을 했다.
발신자는 문안 인사에 이어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발신자는 먼저 神主를 모시던 방의 휘장을 옮겨 설치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喪을 치르는 기간이 끝나 位牌를 다른 곳에 옮긴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위패가 갑자기 비게 되니 세월이 흘렀다는 감회가 느껴질 뿐만 아니라,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의 병이 아침저녁으로 솟구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가고자 하면 안 될 것도 없는데 시간이 있을 때마다 고개를 들고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속옷이 없다고 근심하는 것과 같아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며 발신자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이 편지는 발신자 자신의 근황을 알린데 이어 주변의 소식들을 전했다. 먼저 조카가 여행을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고 소식이 없는데, 분명 소식이 없는 것이 좋은 소식일 것이라고 했다. 다음에는 광산에서 채굴하는 날에 무리가 없는 곳이 없는데, 백성들이 생활을 보전하기 어려운 까닭은 단순히 전쟁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하였다. 이어서 발신자는 결혼을 한 지 60년이 되어 드문 慶事라고 말을 하지만 온전하지 못한 애통함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결혼 60주년이라는 드문 경사의 주인, 즉 발신자의 부인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발신자는 이런 주변의 여러 소식을 전한 뒤 나머지는 모두 미루어 짐작하도록 하고 이만 줄인다는 말로 편지의 끝을 맺었다.
이 편지는 피봉이 없어 그 수신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편지의 소장처가 전주 유씨 삼산종가이고, 발신자가 자신을 "査弟"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이 편지의 수신자는 발신자인 이면주의 사돈이 되는 전주 유씨 삼산종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발신자가 자신을 "服人"이라 하고, 편지의 첫머리에 "省地"라고 한 것은 喪中에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문에서 신주가 모셔진 방의 휘장을 옮겨 설치했다는 말고 연관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의 사실을 살펴보면 이 편지는 새해를 맞이하여 사돈끼리 주고받은 문안의 편지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내용을 보면 그 두 사람이 모든 일을 털어놓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全州柳氏大同譜』,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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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省地不遠而湖嶺間之便未久而獻發已
有日矣尊得無阻悵也謹詢履端
靖養起居迓休萬祉
阮府經體對序茂膺僉允侍學與
歲俱新孫息吟病自來伎倆未知能脫
去舊病不至貽憂否跨歲修候之地
無恙外有何可問耶査弟服人幔幃移設
長位遽虛不但爲流年之感而已旦歸歸
之病朝夕亢未爲不可而有時擧首而坐
猶憂穉嬌之無襦可笑可悶阿侄尙此
不還西奇間絶要之必無好消息也採
鑛之日徒無處無之民生難保之端不在
於兵戈也回巹一款朝曰稀慶服免縻
爲誠有未圓之慟又有隔哉之嘆貴侍日之三
六十年前初擇日若?設小酌云而家無餙慶
之主恐慈無益之懷挹看他侄兒還
爲定籌計耳餘都留不備狀上
丙午元月卄四日査弟服人
李冕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