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김건영(金建永) 서간(書簡)
1901년 7월 22일, 김건영이 삼현에 거주하는 전주 유씨 삼산종가의 사람이 보낸 편지에 답장으로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답장이기에 먼저 수신자가 보낸 편지가 가뭄 끝의 단비와 같다는 고마움의 표시로부터 시작된다. 그에 이어서 수신자를 비롯해 그의 숙부와 집안사람들 모두의 안부를 물었다. 다음에는 발신자가 수신자를 찾아가지 못한 사정에 대해 전했다. 그 사정이란 오랜 여행으로 피로가 겹치고 궁함이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지금도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했다. 이어서 수신자 물은 녹사에 관해 언급했다. 이 일은 발신자가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일의 선후가 뒤집혀져서 지금은 중지 상태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래서 심부름을 온 사람이 먼 길이 헛걸음이 되어 발신자도 답답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소식으로 외갓집이며 숙부가 도에서 추천하는 인재로 받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전했다.
이 편지의 피봉에는 "삼현 경좌하 회납"이라는 말과 "해저사후장"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말들을 통해서 보면, 수신자는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인 삼현에 거주하며, 이 편지는 수신자가 보낸 것에 대한 답장이며, 발신자의 거주지는 지금의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이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서 발신자는 자신을 "척제"라고 한 것을 보면, 발신자가 수신자보다 손아래인 겨레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이 편지는 친척인 윗사람이 녹사와 관련하여 편지로 물어온 것에 답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全州柳氏大同譜』,
『봉화군사』, 봉화군, 봉화군, 2002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