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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김종림(金鍾林)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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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종림, 유창식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01
형태사항 크기: 24 X 54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1901년 김종림(金鍾林) 서간(書簡)
1901년 5월 17일, 김종림이 여행 중인 유창식에게 향리의 긴급한 여러 가지 일들을 의논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여행 중에 있는 사람에게 보낸 것으로 일반적인 편지에서 쓰는 격식들을 가능한 한 생략하고 전할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일전에 보낸 편지에 대해 언급하고 이어 간략하게 수신자의 안부와 발신자의 근황을 묻고 전했다. 그리고 본론에 들어가 향리의 일에 대해 전했다. 거기에는 저번에 보낸 호계서원의 간통, 책을 교감하는 임무, 그 일을 관망하려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방안, 수촌 사람들이 안동부 아랫마을에 머무른 일, 그 일에 대한 대책 등에 대해 의견을 전했다.
이 편지에는 피봉이 없으나 본문의 서두에 "계팔여좌"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편지의 수신자가 전주 유씨 삼산종가의 종손인 유창식의 자이며, 그가 지금 여행 중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발신자가 자신을 "척종"이라고 한 것을 보면 수신자와는 같은 항렬의 인척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보면, 이 편지는 향리의 일을 주관하는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全州柳氏大同譜』,
『안동시사』, 안동시, 1999
『안동 독립운동가 700인』, 김희곤, 안동시, 2001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901년 5월 17일, 金鍾林이 여행 중인 柳昌植에게 鄕里의 긴급한 여러 가지 일들을 의논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01년 5월 17일, 金鍾林이 여행 중인 柳昌植에게 鄕里의 긴급한 여러 가지 일들을 의논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여행 중에 있는 사람에게 보낸 것이다. 이것은 이 편지가 그 만큼 긴급한 소식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편지에는 일반적인 편지에서 쓰는 格式들을 가능한 한 생략하고 전할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편지가 맨 먼저 전하는 소식은 일전에 陶山書院 편에 아뢰는 편지를 부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들어보니 수신자가 여행으로 밖에 있어 그 편지를 보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보지 못했다면 이 점은 한탄스럽다고 했다. 이 말을 통해서 보면 아마도 이전의 편지에 지금 말하고자 하는 소식들 중 많은 것을 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신자는 이전에 보낸 편지에 대한 언급에 이어 수신자의 안부를 간단히 물었다. 여행 중에 건강이 어떠하며, 향리의 일로 가졌던 모임이 지난지가 이미 오래되니 마침내 그리움이 간절하다는 말로 수신자의 안부를 물었다. 이어서 곧바로 발신자의 근황을 전했다. 발신자는 이곳에 온 지가 이미 7~8일이 되어 간다고 했다. 이것은 구름과 노을 속을 거닐며 흥취 중에 여러 가지 뜻을 얻은 것으로, 이를 태면 덧없는 인생에 한번쯤 동쪽으로 유람한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모임의 일이 조금 늦어지고, 그 사이의 경비가 참으로 골머리를 앓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수신자의 안부와 발신자의 근황을 묻고 알린데 이어 본래의 목적인 향리의 일에 대해 전했다. 먼저 저번에 보낸 虎溪書院으로부터의 簡通을 鄕會에 넘겨 즉시 받아보도록 했으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지체함이 없도록 돌아가며 전하게 하였는지 물었다. 다음으로 책을 校勘하는 임무는 長老 여러 사람들이 합석한 후에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 가까이에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살펴보건대 관망하는 것 같은 것처럼 보이니, 특별히 조정의 일을 받들 의도를 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속히 叔父 어르신께 전달하여 미리 왕림하여 주시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마을의 사정으로 즉각 모임을 끝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 水村의 여러 사람들이 安東府의 아랫동네에 머무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한번쯤 마주칠 날이 없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오래 고민할 것 없이 이러한 뜻을 전해서 임원들이 있든 없던 간에 일제히 달려가 확정하고서 일을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만약 季輝 형의 생각이 대립되는 것이라면, 맏형과 숙부 어르신을 믿고 가까이에서 방문할 뜻을 얻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내놓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가는 사람 편에 이것을 붙이니 배포해주기를 바라며, 바빠서 이만 줄이니 두루 잘 헤아려주기 바란다는 말로 편지의 끝을 맺었다.
이 편지에는 피봉이 없으나 본문의 서두에 "啓八旅座"라고 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수신자가 누구이며, 그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즉 이 말에서 "啓八"은 전주 유씨 삼산종가의 종손인 柳昌植의 字이며, "旅座"는 그가 지금 여행 중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발신자는 자신을 "戚從"이라고 한 것을 보면 수신자인 유창식과 같은 항렬의 姻戚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보면, 이 편지는 鄕里의 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내용으로 볼 때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는 이 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주기 사항]
이 편지의 수신자인 柳昌植은 字가 啓八이며, 號는 晩山이다. 그는 三山 柳正源의 후손으로 그 종가의 宗孫이다. 1895일본의 만행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이것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金弘集 내각이 단발령과 변복령을 시행하려 하자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일어났는데, 이때 유창식은 1차 安東義陣에 가담하여 安東府를 점령하는데 앞장섰다. 이후 달아났던 관찰사 金奭重大邱府의 관군을 이끌고 다시 안동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유창식은 체포되어 50여 일간의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2차 안동의진에도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1995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全州柳氏大同譜』,
『안동시사』, 안동시, 1999
『안동 독립운동가 700인』, 김희곤, 안동시, 2001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啓八旅座
省頃付啓札於陶山便矣今聞
御者在外未知覽未則玆嘆矣
旅體衛重鄕事會日已久?如何究
竟溯昻切切戚從扺此已七八日得興
意中諸意逍遙於雲霞之中假是
浮生一東會遊但會事差緩這間經
用實所關惱耳自前去虎溪簡通轉
付於鄕會中想卽關照而亦使之輪
傳無滯耶見在校勘之任長老僉員
旋卽合席後可以始事而窃覵此近僉意
有似觀望出照實非常白朝事之奉意也
望須卽速仰達于阮府丈前以爲枉
臨之地如何如何鄕事未知卽間罷會水村
員之方住府底者想不無一番迤所之日
而不能永惱亦須以此意轉致任各有無間
齊赴相確得以竣事如何如何季輝兄想如
相對矣爲信其伯與丈得近枉駕之意如何
餘固白是赴壬便寄此仰布忙極苟不備
統希
照會
辛丑五月十七日戚從金鍾林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