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6월 10일, 姜鐔이 全州 柳氏 三山宗家의 査頓에게 安否와 함께 찾아뵙지 못하는 자신의 사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01년 6월 10일, 姜鐔이 全州 柳氏 三山宗家의 査頓에게 安否와 함께 찾아뵙지 못하는 자신의 사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그간에 격조했던 사실과 그 이유를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여름이 시작될 때 발신자가 마침 바쁜 일이 끝나서 몇 글자를 적어 소식을 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오랫동안 소식이 막혀 서로 듣지도 묻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임금의 은혜를 입은 발신자의 조카가 감영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수신자로부터 안동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며, 근간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전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발신자는 끝내 찾아뵙지 못한 것을 두고, 수신자가 있는 三峴이 하늘 위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멀다니 하는 탄식의 말로 그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발신자는 그 동안 찾아뵙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한 뒤 수신자의 안부를 물었다. 먼저 혹심한 가뭄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喪中에 있는 수신자가 일상생활에 걱정이 없고 평안한지 물었다. 이어서 집안이 모두 별 탈 없이 福되며, 叔父님도 喪中에 한결 같이 지내시는지 근황을 물었다. 그리고 발신자는 모두가 무사하고 편안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빌고 있다고 하였다.
발신자는 수신자와 그 집안사람들의 안부를 물은 뒤에 자신의 近況을 전했다. 발신자는 한동안 일에 앞서 무료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더위를 먹어 생긴 병이 틈만 나면 일어나 송장처럼 누워서 숨만 붙이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끄럽게 방구석에 누워 궁벽한 집에 비탄만 쌓이게 하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발신자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바로 달포 전에 和仲이라는 아이가 20살이 되지 않았는데 죽고, 둘째 며느리가 참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신자는 즐겁게 살려는 마음이 다 없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 한 해의 일을 처리해야 하기에 한가할 겨를이 없으니, 그런 일로 마음을 애태우는 것은 오히려 미미한 일에 속한다고 했다.
편지는 발신자의 근황에 이어 世上事로 화제가 옮겨졌다. 발신자는 굶어 죽은 사람들이 고랑에 뒹구는 것은 참으로 작은 근심이 아니라며 걱정했다. 그리고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들이 어떻게 해야 이와 같이 극심한 지경에 이르지 않느냐며 위정자에 대한 은근한 비판의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凶年이 심하다 보니 도둑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비록 평소의 태평한 시대라고 해도 도둑의 해가 없을 수 없는데, 하물며 지금과 같은 흉년에야 말해 무엇 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웃이 없는 촌락의 외딴집은 지금 세상에서는 안전한 居處가 되지 못한다며 수신자의 거처를 근심했다.
편지의 화제는 세상사에서 다시 가족의 일로 옮겨졌다. 발신자는 수신자의 둘째 형의 묵은 병이 근자에 깨끗이 제거되었는지, 그리고 근자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이어서 수신자가 시키지 않아도 가서 보고자 하였으나 더운 계절에 몸을 움직이기가 어렵고 흉년으로 아침저녁 끼니를 보전하기 어려워 이렇게 앉아있도록 저지를 당하니 괴롭고 유감스러움이 얼마이겠느냐며 수신자의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발신자의 막내가 5월 12일 遷陵 監造官에 제수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친분이 있는 이웃들도 모두들 평안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다. 이런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한 뒤에 柳德瑞가 간다고 해서 몇 자 붙이니 나머지는 그에게 듣기로 하고 이만 줄이니 잘 헤아려주기 바란다는 말로 편지의 끝을 맺었다.
이 편지의 피봉에는 "謹拜侯狀上"이라는 말과 "省式謹封"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것들로는 이 편지가 문안을 위한 것이라는 것과 발신자가 喪中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 정작 중요한 수신자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발신자로 生年이 1837년인 姜鐔이 자신을 "査弟"라고 한 것에서부터 수신자를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편지의 所藏處인 전주 유씨 삼산종가에서 강심과 사돈의 관계가 될 수 있는 年輩의 인물을 찾으면 그가 바로 이 편지의 수신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全州柳氏大同譜를 보면 그에 합당한 사람이 柳必永이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 보면, 姜鐔이 보낸 다른 편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발신자와 수신자는 단순한 사돈 관계를 넘어 깊은 교감을 나누는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全州柳氏大同譜』,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