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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선필(李璿弼)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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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선필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00
형태사항 크기: 22 X 45.5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1900년 이선필(李璿弼) 서간(書簡)
1900년 4월 10일, 이선필삼현에 거주하는 전주 유씨 삼산종가의 사람에게 안부와 함께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한 편지이다. 이 편지는 저번에 하루 동안 회포를 풀고는 한 달 동안 만나지 못해 슬픔이 깊다는 말로부터 시작된다. 이 말에 이어 수신자의 안부를 묻고, 아울러 수신자의 숙부며 그 자제들과 사촌형제의 자제들에 대한 근황을 물었다. 그 다음에는 이전의 만남이나 편지에서 의견을 나누었던 예절에 관한 일을 언급했다. 그리고 발신자는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먹은 음식이 잘 내려가지 않는 부모님의 병이 회복되지 않아 마음이 애타며, 이 일로 인해 관직에 있는 작은아버지가 행차를 하였으며, 그 행차가 공적인 일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지름길을 안내하도록 막내아우를 딸려 보내는 일 등에 대해 언급했다.
이 편지의 피봉에는 "삼현 정좌 하집사"라는 말과 "하곡근후장"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것에 따르면 수신자는 지금의 안동예안주진리인 삼현에 살고 있으며, 발신자는 지금 그 지명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곡이란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발신자는 자신을 "제복인"이라고 한 것을 보면 발신자가 수신자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며, 현재 상중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이 편지는 서로 형과 아우라고 부르는 친한 사이의 사람들이 안부와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全州柳氏大同譜』,
『봉화군사』, 봉화군, 봉화군, 2002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900년 4월 10일, 李璿弼이 三峴에 거주하는 全州 柳氏 三山宗家의 사람에게 安否와 함께 자신의 近況을 전하기 위한 편지
1900년 4월 10일, 李璿弼三峴에 거주하는 全州 柳氏 三山宗家의 사람에게 安否와 함께 자신의 近況을 전하기 위한 편지이다.
이 편지는 수신자에 대한 그리움의 말로부터 시작된다. 즉 저번에 하루 동안 회포를 풀고는 한 달 동안 만나지 못하고 지나버리니, 만남은 짧고 헤어짐은 길어져 간절함이 이와 같아 슬픔이 깊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이어 수신자의 안부를 물었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데 靜養하는 동안 편안하게 거처하고 순조롭게 지내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수신자의 叔父도 건강하며 정신이 왕성한지를 물었다. 또한 자제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맡은 바의 일에 이바지하고, 사촌형제의 자제들도 탈이 없이 지내는지 근황을 물었다.
수신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안부와 근황을 물은데 이어 예절에 대한 말을 하였다. 즉 시집을 간 사람은 그 집의 사람이라고 여기니 謹愼하는 예절을 없애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한 것은 아마도 이전의 만남이나 편지에서 발신자와 수신자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말이 어둡고 어리석은 태도로 배운 것에 시야를 넓혀주는 학덕이 높은 사람의 의견이라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발신자는 수신자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았기에 그리운 마음 간절하다고 말하였다.
발신자는 이러한 말에 이어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먹은 음식이 잘 내려가지 않는 부모님의 병이 회복되지 않아 애타는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일로 해서 유독 가정의 일 때문에 사사로운 행동을 하지 않으시는 작은아버지가 행차를 했다고 했다. 이 말은 곧 관직에 있는 작은아버지가 휴가나 휴일을 이용하여 발신자의 부모님을 보러왔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발신자는 작은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이 가정과 공직의 일을 동등하게 하려고 미리 헤아려서 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허약한 가마꾼이 이로운 지름길을 헷갈려할까 고민스럽고 걱정이 되어 막내아우를 뒤따르도록 딸려 보냈다고 했다. 그럼에도 험한데다 질퍽거리는 길이 또한 걱정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머지는 바쁘고 정신이 없어 이만 줄인다는 말로 편지의 끝을 맺었다.
이 편지의 피봉에는 "三峴 靜座 下執事"라는 말과 "霞谷謹候狀"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전자는 수신자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발신자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신자는 지금의 안동예안주진리인 三峴에 살고 있으며, 발신자는 지금 그 지명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霞谷이란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발신자는 자신을 "弟服人"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편지의 내용으로 볼 때 발신자가 수신자의 血肉이라기보다는 친한 사이에 나이가 어린 사람이며, 현재 喪中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이 편지는 서로 형과 아우라고 부르는 친한 사이의 사람들이 안부와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全州柳氏大同譜』,
『봉화군사』, 봉화군, 봉화군, 2002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三峴 靜座 下執事
霞谷謹候狀
謹封

省式頃者一宵之穩易致一月之阻
會少別多若是懇絶耶深康悵
恨伏請始夏
靖養啓處冲適
亞庭經几氣體候神旺允舍幃
幔各供職事一體佳休從侄如亦無恙
否適人者認是其家人能去了愼禮貿癡
之態學得大方家壼議耶並切溯仰
區區少弟服人親候以滯祟委?尙未復
幸焦煎何已惟獨庭無添私行而仲
父行旆已是兩等之預料掃萬啓發然
單弱轎丁倘無擾利捷耶預切悶惕
旀季君陪後徒步險路泥濘亦
爲關慮耳餘忙擾不備上
庚子四月十日弟服人李璿弼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