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 3월 2일, 檜淵書院에서 講堂과 祠宇를 重建하면서 경비의 충당을 위해 玉山書院에 배분한 分擔金을 보내줄 것을 독촉하는 通文
1790년 3월 2일, 檜淵書院에서 講堂과 祠宇를 重建하면서 경비의 충당을 위해 玉山書院에 배분한 分擔金을 보내줄 것을 독촉하는 通文이다.
이 통문은 먼저 강당과 사우를 중건하여 임금께서 하사하신 扁額을 새롭게 내거는 일은 바로 유학계의 慶事이니, 어찌 서로 같지 않은 것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말로 시작된다. 이것은 이 통문의 발행처인 회연서원의 일이 그 자신들만의 것이 아닌 유학계 전체의 일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회연서원이 이 일을 하면서 마련했던 經費를 모두 써버렸다고 자신들의 처지를 밝혔다. 그래서 회연서원에서 분담금을 보내줄 것을 옥산서원에 여러 차례 부탁했었다고 했다. 이 말은 지금의 것과 같은 통문을 여러 차례 보냈지만 호응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옥산서원의 이러한 태도에 회연서원으로서는 화가 날만도 하였다. 하지만 회연서원 측으로서는 어디까지나 도움을 받는 처지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화를 내거나 강요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래서 儒生은 道理를 보고들은 사람들이기에 모두들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회적인 말로 다시 한 번 분담금의 납부를 촉구하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자신들의 처지를 너그럽게 이해해주면 참으로 고맙겠다는 말로 통문의 끝을 맺었다.
이 통문에 기재된 발행 연도는 庚子年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의 경자년은 連名한 사람들의 여러 정황들을 볼 때 1790년이 된다. 이때는 회연서원이 創建된 지 200년이 넘었고, 賜額된 지는 100년째가 되는 해였다. 이것을 보면 회연서원이 지어진지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액을 받은 지 10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여 강당과 사우를 중건하기로 계획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게 된다. 이것은 회연서원뿐만 아니라 모든 서원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이었다. 서원들은 서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있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이 통문의 서두에서 회연서원이 자신들의 강당과 사우를 짓는 일이 유학계 전체의 일이라고 한 것은 단순히 동업자 정신에 호소한 것만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慣行처럼 행해져 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특히 옥산서원과 같이 道內에 명망 있는 先賢을 제향 하는 곳은 이러한 요청이 빈번하였다. 그리고 요청을 받으면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에 따라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서로 간에 상부상조한 일은 서원의 각종 都錄, 置簿記, 重修·重建日記, 考往錄 등에 모두 기록된다. 그래서 이것들을 토대로 자신들이 도움을 청할 때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회연서원에서 옥산서원에 분담금을 부과한 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먼저 옥산서원에 도움을 준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그렇기 때문에 회연서원에서는 분담금을 주지 않는 옥산서원에 대해 독촉하는 이런 통문을 보낸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옥산서원이라 해도 돈이 늘 풍족한 것은 아니었기에 쉽사리 분담금을 내놓을 형편이 아니어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적 가치]
일반적으로 서원의 일 가운데 비용이 많이 드는 일, 즉 강당이나 묘우의 중수 및 중건, 또는 문집의 간행은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각종 기록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단순히 주고받은 돈이나 물건만이 기재되어 있어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통문은 바로 그 상호부조의 사례를 단순한 숫자나 물건이 아닌 그 실제의 과정을 엿보게 하는 자료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이라 할 수 있다.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2
「책판 제작의 사회, 문화적 의의」 『대동문화연구』 70집, 柳浚弼,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0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