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辰年 1월 11일 金昌詩가 全州 柳氏 三山宗家의 사돈인 柳生員에게 喪事를 만난데 대한 慰勞와 자신의 딸이 친정에 다녀가게 해달라는 부탁의 편지
庚辰年 1월 11일, 金昌詩가 全州 柳氏 三山宗家의 사돈인 柳生員에게 喪事를 만난데 대한 慰勞와 자신의 딸이 친정에 다녀가게 해달라는 부탁의 편지이다.
이 편지의 서두는 일전에 서울에서 붙인 위로의 편지를 받아 보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수신자의 숙부가 되는 어르신의 장례는 참으로 뜻밖의 일로 천리 먼 곳에 있는데 이런 끔찍한 변고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말했다. 이것을 보면 앞서 보낸 편지는 이 장례의 소식을 듣고 서둘러 조의를 표한 내용의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래서 이번 편지에서는 좀 더 깊은 조의의 뜻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슬픔에 잠긴 나머지 氣力이 손상되지는 않았는지 물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신자에 대한 인사에 이어 집안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건강과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서 화제를 장례로 옮겨 지금의 세상에서는 신중하게 거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도리 상으로 볼 때 유감이 없는 것이 아니라며 세태에 대한 발신자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그리고 자신은 나태하여 스스로의 생각에도 절실히 필요한 사람 사이의 일을 마치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고. 또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지 않으니 그 회한을 견딜 수가 없다고 토로하였다. 그러기에 세대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情誼이 깊어지니, 평상시에 가르침을 받을 수는 없었어도 訃音을 받았으면 즉시 기어서라도 영전에 나아가 한마디 고별의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추위에 길을 나설 만큼 힘이 되지 않아 부끄러움을 말로 할 수 없다고 미안한 마음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서 允君으로부터 얼마 전에 편지를 받아보니 잘 지내는 것 같았으나, 한번도 그 모친을 보러온 적이 없으니 친정에 다녀가게 해주기를 부탁했다. 이 말을 보면 윤군이라는 사람은 발신자의 사위되는 사람이며, 발신자는 지금 사돈인 수신자에게 시집을 간 자신의 딸을 친정으로 한번 다녀가게 해달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번 달 보름쯤에 보내주면 좋겠지만, 그 사이에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잘 헤아려달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만 줄이며 삼가 편지를 올린다는 끝을 맺었다.
이 편지는 따로 떨어진 피봉이 없는 單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內紙에 글을 쓰고 그것을 접어 봉투형식으로 만든 뒤 거기에 수신자의 이름을 적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피봉이 되는 편지의 뒷면에는 "柳 生員 朞服座前 謹再拜狀上 省式謹封"이라고 적혀 있다. 이것을 보면 이 편지의 수취인인 유생원이 喪中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이름 다음에 상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기복좌전"이라는 말과 상중의 사람에게 쓰는 투식인 "생식"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본문에서 유생원이 숙부의 喪을 치르고 있다는 말은 피봉에 쓰인 "기복"이라는 말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이 편지는 사돈댁의 우환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딸을 친정으로 보내주기를 부탁하는 내용으로 통상적인 생활 속의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古文書集成 四十四』 -安東 全州柳氏篇 1(水谷宗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