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建陽 2) 李氏의 노비 丁石이 金氏의 노비 玉丑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
내용 및 특징
1897년(建陽 2) 李氏의 노비인 丁石가 金氏의 노비인 玉丑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명문이 거래를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서이기는 하나 일정한 書式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습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재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그것으로는 매매가 이루어진 날이 언제이며, 買收者가 누구인가와 賣渡事由를 밝혀야 한다. 이어서 賣渡物의 所在地를 비롯해 結負, 斗落, 배미[夜味] 등과 같은 賣渡物에 대한 情報와 價格, 賣渡에 따라 權利가 移讓되었음을 證言하는 文句, 그리고 賣渡人, 筆執, 證人 등이 기재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사항들 중 일부가 생략되기도 한다.
이 명문을 통해서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年號가 建陽 2년이며, 干支가 丁酉年인 1897년 2월이며, 買收者는 金氏의 노비인 玉丑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事由는 돈을 긴요하게 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스스로 매입하여 얻은 논으로 䓪頭員에 있는 戒字 字號의 48地番의 논 5負 正租 3斗落이다. 이 토지의 賣買價는 동전 40兩으로, 이 돈을 받고 新文記 1장과 함께 玉丑의 上典宅에 영원히 放賣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만약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논의 주인으로 李氏의 노비인 丁石의 이름과 手決이 있고, 證人과 筆執으로 참여한 사람은 手決은 하였으나 신분이 幼學이라는 것과 姓氏가 金이라는 것만 기재하였다.
이 문서에는 거래의 날짜에 달[月]만 기재되어 있고 날[日]이 없다거나, 舊文記에 대한 언급이 없이 新文記 1장을 내어준다거나 하는 소소한 특징을 제외하고는 전형적인 명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점을 제외하고 이 문서가 가지는 특징을 들면, 買收者와 賣渡者가 모두 노비라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 노비들도 토지를 소유하며 매매를 하였기 때문에 이를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서에서는 노비들이 그들의 주인을 대신해서 매매한 것이지 실질적인 토지의 거래자로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이 문서에서 그들의 주인이 李氏와 金氏라는 것을 명기하고 있으며, 명문 가운데 ‘右宅前依數捧用’이라고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시에는 사대부들이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토지거래에 있어 노비들을 그들의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자료적 가치
토지매매명문은 그 자체로 고문서학, 법제사, 경제사 등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의 토지거래의 문서는 다른 무엇보다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먼저 소유권의 이전과 그 사유를 통해 개인 가문별로 재산의 형성과정이나 그 변동 상황, 또는 토지거래에 있어 가격의 동향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문서에서처럼 매수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결성된 별도의 조직일 경우에는 그의 활동과 운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6‧17세기 奴婢의 田畓 所有와 賣買 實態」『朝鮮史硏究』 제9집, 이재수, 조선사연구회, 2000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