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종계(宗稧)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1년(광서 17) 12월 7일, 김문중이 종계에 토지를 매도하며 발급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명문에는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를 연호가 광서 18년이며, 간지가 신묘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광서 18년의 간지는 임진년이고, 간지가 신묘년인 해는 광서 17년이다. 이렇게 연호와 간지가 다를 때는 간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당시 일상생활에서 연도는 통상 간지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이 문서는 연호가 광서 17년이며, 간지가 신묘년이 되는 1891년이 된다. 그리고 이 거래에서 매수자는 종계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사유는 돈을 긴요하게 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스스로 매입하여 얻은 밭으로 전시동에 있는 망자 자호의 29지번의 밭 6부 6속과 남초의 밭 2두락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20냥으로, 이 돈을 받고 본문기(=구문기)와 함께 종계에 영원히 방매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만약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밭의 주인인 김문중의 이름과 수결이 있고, 증인으로 참여한 사람은 수결과 함께 "유"라는 성씨만을 기재하였다.
이 문서의 특징은 매수자가 개인이 아닌 단체인 종계이다. 그런데 이 문서의 소장처가 전주유씨 삼산종가인 것을 감안할 때, 여기에서의 종계는 전주유씨들이 일족의 화목과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한 동족계의 하나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삼산종가에는 이 거래와 관련된 또 한 장의 명문인 "1878년 김문중(金文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있는데, 이 두 거래의 매매가를 비교해 보면 6냥이 하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