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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박개동(朴開東)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XE.1883.4717-20150630.y151001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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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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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작성주체 김학수, 김운락, 박개동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83
형태사항 크기: 30 X 26.5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1883년 박개동(朴開東)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3년(광서 9) 12월 15일, 김학수박개동에게 토지를 매도하며 발급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사유는 돈을 긴요하게 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스스로 매입하여 얻은 논으로 배패원에 있는 대자 자호의 9지번의 논 6부 1속과 12지번의 논 4부 6속, 그리고 16지번의 논 3부 3속 도합 14부 4두락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120냥으로, 이 돈을 받고 본문기(=구문기) 1장과 함께 박개동에게 영원히 방매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혹시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논의 주인인 김학수와 증인인 김운락의 이름과 수결이 있지만, 필집으로 참여한 사람은 수결과 고씨라는 성만을 기재하였다. 이 문서는 매수자와 매도자의 이름을 볼 때 그 소장처인 전주유씨 삼산종가가 이 토지를 매입하면서 넘겨받은 구문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삼산종가에서 이렇게 넘겨받은 구문기로 두 장이 더 있다. 이 세 장의 명문을 비교해 보면 가장 두드러진 차이가 매매가인데, 그 매매가들은 19세기 이후 토지의 가격이 점차 상승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83년(光緖 9) 12월 15일, 金學守가 朴開東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
내용 및 특징
1883년(光緖 9) 12월 15일, 金學守朴開東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명문이 거래를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서이기는 하나 일정한 書式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습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재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그것으로는 매매가 이루어진 날이 언제이며, 買收者가 누구인가와 賣渡事由를 밝혀야 한다. 이어서 賣渡物의 所在地를 비롯해 結負, 斗落, 배미[夜味] 등과 같은 賣渡物에 대한 情報와 價格, 賣渡에 따라 權利가 移讓되었음을 證言하는 文句, 그리고 賣渡人, 筆執, 證人 등이 기재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사항들 중 일부가 생략되기도 한다. 이 명문을 통해서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年號가 光緖 9년이며, 干支가 癸未年이 되는 1883년 12월 15일이며, 買收者는 朴開東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事由는 돈을 긴요하게 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스스로 매입하여 얻은 논으로 排貝員에 있는 大字 字號의 9地番의 논 6負 1束과 12地番의 논 4負 6束, 그리고 16地番의 논 3負 3束 도합 14負 4斗落이다. 이 토지의 賣買價는 동전 120兩으로, 이 돈을 받고 本文記(=舊文記) 1장과 함께 朴開東에게 영원히 放賣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혹시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논의 주인인 金學守와 證人인 金雲樂의 이름과 手決이 있지만, 筆執으로 참여한 사람은 手決과 高氏라는 姓만을 기재하였다. 이 문서는 토지매매명문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당시 관습적으로 토지매매명문에 기재되어야 할 거의 모든 사항들을 빠짐없이 기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서에 기재된 買收者와 賣渡者의 이름을 보면, 이 문서는 所藏處인 全州柳氏 三山宗家가 이 토지를 買入하면서 넘겨받은 舊文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三山宗家에서 이렇게 넘겨받은 舊文記에는 이 명문 외에 두 장이 더 있다. 하나는 "1859년 김준(金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며, 다른 하나는 "1891년 김노(金奴) 복심(卜心)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 셋을 비교해보면 매수자와 매도자를 제외한 가장 큰 차이는 토지의 賣買價이다. 1859년의 매매가는 90兩이고, 이 문서에서는 120兩이며, 1891년에는 165兩이다. 이러한 매매가의 동향을 보면 19세기 이후 안동지역의 토지 가격이 첨차로 상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토지매매명문은 그 자체로 고문서학, 법제사, 경제사 등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의 토지거래의 문서는 다른 무엇보다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먼저 소유권의 이전과 그 사유를 통해 개인 가문별로 재산의 형성과정과 그 변동 상황 등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토지거래에 있어 가격의 동향이나 매매 방식, 또는 문서의 형식 등을 알 수 있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光緖九年癸未十二月十五日朴開東
前明文
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自已買得畓
伏在於排貝員大字九畓六負一束十二
畓四負六束十六畓三負三束合十四
負四斗落庫乙價折錢文壹佰二十
兩乙依數捧用是遣以本文記一丈
右人前幷永永放賣爲去乎日後或
有雜談是去等以此文憑攷事
畓主 金學守[署押]
證人 金雲樂[署押]
筆執 高[署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