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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우씨 문중(禹氏門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XE.1872.4717-20150630.y151001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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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작성주체 권현수, 우씨 문중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2
형태사항 크기: 25 X 34.5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안내정보

1872년 우씨 문중(禹氏門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2년(동치 11), 1월 27일, 권현수가 우씨 문중에 토지를 매도하며 발급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토지를 매도하게 된 사유는 돈을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논으로 구룡방 운평원에 있는 정자 자호의 19지번의 논 5부 1두락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44냥으로, 이 돈을 받고 본문기(=구문기) 1장과 함께 우씨 문중에 영원히 방매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만약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이래에 논의 주인인 권현수가 스스로 이 문서를 작성했음을 밝히고 그 이름과 수결을 남겼다. 이 문서의 특징은 토지의 매수자가 개인이 아닌 문중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에 혈연적 유대를 강화하고 일족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다양한 조직[所]들이 결성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서의 소장처인 전주유씨 삼산종가의 토지매매명문 중에 "1884년 노비 화득(화득) 토지매매명문(토지매매명문)"이 같은 토지를 매매한 또 다른 문서이다. 이 둘을 비교해 보면 10여 년 사이에 토지의 가격은 안정되었거나 조금 하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72년(同治 11), 1월 27일, 權賢秀가 禹氏 門中에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
내용 및 특징
1872년(同治 11), 1월 27일, 權賢秀가 禹氏 門中에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명문이 거래를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서이기는 하나 일정한 書式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습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재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그것으로는 매매가 이루어진 날이 언제이며, 買收者가 누구인가와 賣渡事由를 밝혀야 한다. 이어서 賣渡物의 所在地를 비롯해 結負, 斗落, 배미[夜味] 등과 같은 賣渡物에 대한 情報와 價格, 賣渡에 따라 權利가 移讓되었음을 證言하는 文句, 그리고 賣渡人, 筆執, 證人 등이 기재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사항들 중 일부가 생략되기도 한다. 이 명문을 통해서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年號가 同治 11년이며, 干支가 壬申年이 되는 1872년 1월 27일이며, 買收者는 禹氏 門中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事由는 돈을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논으로 九龍坊雲坪員에 있는 貞字 字號의 19地番의 논 5負 1斗落이다. 이 토지의 賣買價는 동전 44兩으로, 이 돈을 받고 本文記(=舊文記) 1장과 함께 禹氏 門中에 영원히 放賣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 만약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이래에 논의 주인인 權賢秀가 스스로 이 문서를 작성했음을 밝히고 그 이름과 手決을 남겼다. 이 문서의 특징은 토지의 買收者가 개인이 아닌 門中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에 혈연적 유대를 강화하고 일족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다양한 조직[所]들이 결성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각 문중에서는 그 자제들의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 贍學所를, 宗宅이나 祠堂 또는 精舍 등을 수리하기 위해 營建所 등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은 혈족 사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네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조직들도 있었는데, 혼례와 장례 등에 상부상조하기 위해 洞別所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문서의 매수자처럼 단순히 문중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조직이 일족의 화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리고 이 문서의 매수자와 매도자를 보면 이 문서의 所藏處인 全州柳氏 三山宗家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이 문서가 삼산종가에서 토지를 매입할 때 함께 넘겨받은 舊文記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삼산종가의 토지매매명문에는 禹氏의 노비인 貴孫가 노비 和得에게 바로 이 논을 賣渡한 명문, 즉 "1884년 노비 화득(和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있다. 이 두 문서를 비교해 보면 거래한 햇수는 12년의 간격이 나지만 토지의 가격은 오히려 4兩이 하락하였다. 다시 말해서 1872년 禹氏 門中에서 이 토지를 44兩에 구입하였다가, 1884년 노비 和得에게 40兩을 받고 매도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10여 년 사이에 토지의 가격은 안정되었거나 조금 하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토지매매명문은 그 자체로 고문서학, 법제사, 경제사 등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의 토지거래의 문서는 다른 무엇보다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먼저 소유권의 이전과 그 사유를 통해 개인 가문별로 재산의 형성과정이나 그 변동 상황, 또는 토지거래에 있어 가격의 동향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문서에서처럼 매수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결성된 별도의 조직일 경우에는 그의 활동과 운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同治十一年壬申正月二十七日禹氏門中
前明文
右明文爲切有用處傳來畓伏
九龍坊雲坪員貞字十九畓
五負一斗落只庫乙價折錢文
肆拾肆兩乙依數捧用是遣本
文記一丈幷以右前永永放賣
爲去乎日後若有雜談是去等
持此文卞政事
畓主自筆幼學權賢秀[署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