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동치 1) 1월 20일, 柳明欽이 宗稧有司인 族兄 柳宅欽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
내용 및 특징
1862년(동치 1) 1월 20일, 柳明欽가 宗稧有司인 族兄 柳宅欽에게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명문이 거래를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서이기는 하나 일정한 書式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습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재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그것으로는 매매가 이루어진 날이 언제이며, 買收者가 누구인가와 賣渡事由를 밝혀야 한다. 이어서 賣渡物의 所在地를 비롯해 結負, 斗落, 배미[夜味] 등과 같은 賣渡物에 대한 情報와 價格, 賣渡에 따라 權利가 移讓되었음을 證言하는 文句, 그리고 賣渡人, 筆執, 證人 등이 기재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사항들 중 일부가 생략되기도 한다.
이 명문을 통해서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年號가 同治 元年인 1862년 1월 20일이며, 買收者는 宗稧有司를 맡고 있는 일가의 형인 柳宅欽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事由는 돈을 긴요하게 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텃밭 1斗落과 所字 字號의 11地番의 밭 4負이다. 이 토지의 매매가는 동전 15兩으로, 이 돈을 받고 토지를 放賣하지만 몇 년 뒤 원래의 가격을 지불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이 문서를 작성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이 문서로써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밭의 주인으로 柳明欽가 자신의 이름만 남기고, 喪中에 있는 사람이라 "不着"이라는 말로 手決을 대신하였다.
이 문서의 특징은 還退, 즉 토지를 판 사람이 산 사람에게 판값을 치르고 되 물린다는 조건으로 작성된 명문이다. 이러한 매매방식은 買收者가 전답을 되돌려주기 전까지 경작을 통해 수익을 얻고, 賣渡者는 전답을 판돈으로 긴급한 일을 처리하는 한편 기한 동안 賣買價[本價]를 모아 지불하고 토지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문서에 ‘權賣’, ‘限某年還退’, ‘限某年還退次放賣’, ‘退賭地次放賣’ 등의 문구를 기재한다. 그리고 특정한 기한이 명기되지 않은 경우에는 보통 10년까지는 還退가 가능하였다. 문서상으로 보면 이 거래는 賣渡者인 柳明欽가 喪을 당하여 긴급하게 돈을 쓸 일이 생기자 자신의 텃밭과 밭을 일가의 형인 柳宅欽에게 잠시 넘겨 돈을 융통하였다가 나중에 되찾으려는 계획이었으며, 買收者인 柳宅欽는 일가의 동생인 柳明欽의 딱한 사정을 알고 토지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듯이 還退를 수락하였다. 하지만 이 문서가 아직 全州柳氏 三山宗家에 있다는 것은 그러한 의도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료적 가치
토지매매명문은 그 자체로 고문서학, 법제사, 경제사 등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의 토지거래의 문서는 다른 무엇보다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소유권의 이전과 그 사유를 통해 개인이나 가문별로 재산의 형성과정이나 그 변동 상황, 또는 토지거래에 있어 가격의 동향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